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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로 모여 노니 좋지 아니한가

등록 2007-10-04 15:00 수정 2020-05-02 19:25

남자끼리·여자끼리 모여 중·고등학교 교실 재현한 21세기 예능 프로그램들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여자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는 고랫적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을 21세기 엔터테인먼트 및 버라이어티형으로 고치면 다음과 같다. ‘웃길 줄 아는 자가 떼로 모이면 시청률이 올라간다.’ 한 가지 옵션이 있다면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모여야 그 효과가 더 좋다’는 것. 을 비롯해 은 남자들이 떼로 모여 있는 프로그램이고, 와 최근 신설된 는 여자들이 떼로 모여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시청률 목록 상위에 올라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그야말로 ‘떼로 모여야’ 뭐가 되도 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오호, (출연자들) 통제(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겠구…)랴!

보다 보면 어느새…

부터 까지 쭉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넋을 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일종의 타임머신 효과다. 타임머신은 어느 평범한 학교 교실에 나를 내려준다. 고만고만한 또래 친구들이 모여서 농담 따먹기나 말장난으로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중·고등학교 교실 말이다. 멤버들은 공부는 잘 못하지만 성격 하나는 진짜 좋은, 또 만사가 그저 재미있기만 한 중학교 2학년생들 같다. 는 유난히 국어 시간을 좋아하는 ‘인기 많고 잘나가는’ 고3 오빠들 모임, 는 모든 게 불만투성이인 반항기 학생들 모임을 보는 기분이다. 은 수학여행 하나에 목맨, 몸 하나만큼은 무척이나 튼튼하고 건강한 학생들이 생각난다. 멤버들은 직업 준비에 열심인 직업학교(?) 여고생 언니들 같고, 멤버들은 어설픈 화장과 다이어트에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여고생들과 똑 닮았다.

중·고등학생들의 특징은 다음 사자성어(!)로 요약할 수 있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우왕좌왕, 좌충우돌, 티격태격, 무한산만. 이들의 개그 역시 마찬가지다. 정신없이 떠들어대고, 서로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그렇게 부산스러운 와중에 개그가 꽃을 피운다. 개그의 코드는 단순하다. 멀쩡히 걸어가다가 넘어지면 웃고, 누군가를 골탕 먹이면 웃고, 옆에 있는 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는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났던 학창시절, 학교 다닐 때 친구에게 장난치면서 즐거워했던 그 마음가짐 그대로 보면 여러 번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든 키득키득 소리내 웃을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몸 개그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이틴 본능’에 가까운 개그 코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다.

19살 이하로 돌아가면 더 재미있나니

또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게임을 하든, 도전을 하든, 사건이 일어나든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 게임이나 사건 자체의 재미보다 출연자들의 반응이다. 그래서 출연자들끼리의 관계 맺음은 이런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한 개그 포인트다. 유재석과 박명수, 정형돈과 하하, 윤종신과 김구라, 이휘재와 탁재훈, 강호동과 이수근, 신봉선과 김현숙 등 제각기 다른 캐릭터의 인물들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재미는 시트콤을 볼 때 느끼는 재미와 비슷하다. 시청자는 그들의 관계 자체에 웃기도 하고 ‘저들 중에 나는 누구에 가까울까?’를 생각하면서 웃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출연자들이 얼마만큼 탄탄한 자기 캐릭터를 갖느냐에 달렸다. 캐릭터만 확실하면 공 하나를 던져줘도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고, 그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도 함께 놀 수 있으니까. 이렇게 편집되거나 대본에 있지 않은, 출연자들 사이에서 즉석에서 생겨나 자가 발전하고 자체 발광하는 자연산 개그는 21세기 예능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키워드 아니던가.

이런 프로그램의 원활한 시청을 돕기 위해 TV 화면 오른쪽 상단에 ‘19’ 숫자를 띄워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19살 이상 시청 가능’이 아니라 ‘19살 이하로 돌아가면 더 재미있는 시청 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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