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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의 ‘삑사리’에 무너지다

등록 2008-02-1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과 패러디로 에 리듬감 불어넣는 김병만·류담</font>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일반인들이 사소한 듯 보이지만 막상 해내기는 쉽지 않은 자기만의 기술을 선보이는 SBS 을 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와, 컵을 순식간에 정리하다니, 대단해! 그런데… 저런 걸 잘해도 ‘달인’?” “속도가 엄청나네. 그런데… 어쩐지 실수할 것 같아서 불안하네. 실수하면 얼마나 민망하겠어.” 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은 이러한 우려를, 정말 사소한 개인기나 실수를 대놓고 뽐내는 ‘딸랑 이거?’라는 코너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뜨거운 라면 먹기·방귀 연주가 재주

한국방송 의 ‘달인’ 역시 이라는 프로그램을 패러디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느꼈던 이런 우려 내지는 걱정을 웃음으로 반전시킨 코너다. 달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진행자 류담은 매번 독특한 것에 정통한 달인을 소개한다. 물론 달인의 이름은 늘 김병만이다. 대충 종이를 구겨 기린이나 말이라고 우기는 종이접기의 달인 ‘A4 김병만 선생님’부터 16년 동안 단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 결국 녹화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쏘리 김병만 선생님’, 자유자재로 방귀를 컨트롤하지만 방귀 연주 끝에 결국 ‘방귀가 잦으면 큰일(!)을 보게 된다’는 속담을 실천한 방귀의 달인 ‘보옹 김병만 선생님’까지 다양하다. ‘너무 사소한 재주에 정통하고, 또 항상 엉뚱하게 실패하는 달인’이라는 콘셉트 하나로 ‘달인’은 재치 있는 개그를 선보인다.

이 코너에서 웃음점은 3가지다. 처음에 김병만 선생님이 통달했다는 소재를 소개할 때 한 번 웃음이 터지고, 통달했다는 재주가 어이없이 무너질 때 한 번 터진다. 예를 들어 ‘뜨거운 라면 먹기의 달인’이라는 어이없는 소개 문구에서 웃고, 뜨거운 라면을 연방 식히기만 하다가 들어가는 김병만 선생님의 웃음에서 한 번 웃는다. ‘달인’이라는 코너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삑사리가 날 때가 바로 웃음점이라는 얘기다. 마지막 웃음은 김병만 선생님의 수제자(노우진)가 담당한다. 영 어설픈 자태로 김병만 선생님 옆에 서 있다가 ‘수제자’라는 이름값을 반에 반도 못하고 돌아서는 그는 이 코너의 마지막 삑사리다.

김병만과 류담은 ‘달인’ 전에 했던 ‘우리 병만이가 달라졌어요’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개그를 선보였다. 아이들의 고질적인 버릇을 고쳐주는 라는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우리 병만이가 달라졌어요’에서도 병만이는 늘 물을 마시지 않는다든지, 재주만 넘는다든지, 뭐든지 문다든지, 말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엉뚱한 버릇을 가졌다. ‘달인’에서 그렇듯이 이 코너에서도 사소한 문제는 더 사소하게 풀리곤 했다. 아동전문가 류담 선생님은 물을 마시지 않는 병만이에게는 건빵에 삶은 계란을 주고, 뭐든지 무는 병만이에게는 냄새 나는 겨드랑이를 들이미는 방법으로 병만이의 버릇을 고쳐놓았다. 이 코너도 허무 개그에 가까운 삑사리 개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분30초~3분30초동안 치고 빠지는 개그

‘우리 병만이가 달라졌어요’에 이어 ‘달인’에서도 주목해야 하는 점은 한 회에서 평균 2번, 많으면 3번까지도 같은 코너를 시리즈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너 3분의 1 지점에서는 ‘달인1’이 나오고, 중반을 넘어서면 ‘달인2’가, 프로그램 마지막에는 ‘달인3’이 나온다. 같은 형식이지만 소재만 다르다. 그래서 분량도 길지 않다. 짧으면 1분30초, 길어도 3분30초 안에 코너를 끝낸다. ‘달인’은 짧게 여러 번 치고 빠지면서 전체에 리듬감을 불어넣는 구실을 하고 있다. 짧은 순간 반짝이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 하나로 반전의 웃음까지 전해주는 이 코너는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모두 개그의 본질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달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김병만과 류담의 콤비 플레이다. 키 작은 김병만은 늘 얼토당토않은 말과 행동을 일삼고, 키가 큰 류담은 이런 김병만을 시험에 들게 하면서 끝내 그를 좌절시킨다. 이 둘은 부조화 속의 조화에 가까운 연기를 노련하게 해낸다. 아이디어와 연기 면에서 상위 1%라고 할 수 있는 김병만과 류담, ‘달인’은 이 둘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온갖 사소한 문제의 달인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달인’ 코너의 달인 ‘단타’ 김병만 선생님과 ‘장타’ 류담 선생님! 앞으로도 계속 짧고 굵게, 그리고 자주 웃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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