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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에 가니 기분 ‘정주리’하군

등록 2007-12-14 00:00 수정 2020-05-03 04:25

어른의 ‘베이비’ 코드와 삑사리 ‘섹시’ 코드가 뒤섞인 의 ‘안 팔아’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SBS 에 진짜 ‘웃찾사다운’ 코너가 또 하나 문을 열었다. 태백산 속 산장(보다는 산장 매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안 팔아’다. ‘정 주나 안 정 주나 늘 정 주는’ 정주리와 ‘장남 아니고 막내인’ 한현민, 이 개성 만점 남녀 개그맨의 기묘한 조합부터가 심상치 않은 이 코너는 첫 회부터 범상치 않은 아우라로 시청자의 오감을 자극했다.

포털 사이트에 이 코너 제목을 넣고 검색해보면 이런 소개 문구가 나온다. ‘특별한 내용은 없지만 시청자의 허를 찌르는 재치를 무기로 한 코너.’ 맞다. 아무리 돌려봐도 산장에 먹을 것을 사러 온 등산객에게 산장 매점 주인 정주리와 한현민은 아무것도 팔지 않는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러나 이 코너에는 특별한 내용 대신 특별한 코드가 있다.

“왜 안팔아요?” “내가 먹을거야”

에서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는 4차원 개그 코드가 이 코너의 기본 설정이다. 4차원 개그의 대표적인 형식은 대사의 무한 반복. 정주리와 한현민은 기본적으로 모든 대사를 적어도 3번씩 반복한다. 정주리는 자신의 인기 유행어 “따라와” 보다 조금 더 느린 박자와 농염한 목소리로 “안 팔아”를, 한현민은 무작정 난로 앞에 앉아 “뜨거워”를 목이 터져라 외친다. 이 코너는 내용이 전무한 상황에서 뜬금없는 대사를 반복해 던지며 기본적으로 4차원 개그의 소통 불능 코드를 따라간다.

이 코너의 특별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산장 주인 정주리는 김밥도, 호빵도, 율무차도 팔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한다. “내가 먹을 거야!” 물건을 팔아야 돈을 버는 곳에서 물건을 팔지 않는다니, 그것도 자기가 먹으려고. 무척이나 ‘베이비’스러운 발상이다. 어린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배고파”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자기 배가 고프면 친구 손에 들려 있던 음식에 입이 먼저 간다. 하고 싶은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당장 해야 하는 정주리와 한현민의 모습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다. 이 코너의 ‘베이비’적 코드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배가 고프면 → (팔아야 하는 음식도) 먹는다.’ ‘기분이 강감찬 하면 → (‘띠띠띠띠’ 통화대기음에 맞춰) 춤을 춘다.’ ‘기분이 대조영 하면→ (‘냐냐느냐’ 하며) 노래를 한다.’ 바보 연기를 보면 웃음이 무조건반사로 터지는 것처럼 어른이 아이처럼 행동할 때 우리는 무조건 웃게 된다.

이 코너에서 ‘베이비’ 코드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코드는 ‘성인’ 코드다. 정주리는 ‘섹시함’의 상징인 빨간색으로 도배를 하고 등장한다. 빨간색 산타 모자에 빨간색 가죽 재킷을 입고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다. 목소리 역시 뇌쇄적이다. 반면 한현민은 허름한 점퍼와 배바지를 입고 있다. 화려한 여자와 허름한 남자, 이 둘의 관계는 ‘성인’ 코드의 대표적인 설정인 주종 관계에 가깝다. 정주리는 번번히 한현민에게 명령을 한다. “난로 쬐”라고 하면 한현민은 난로에 손을 갖다 댄다. 또 정주리는 차를 빼달라고 전화한 최씨 아저씨와 닮았다는 이유로 한현민에게 주먹을 날린다.

이 코너에서 무한 반복되는 “뜨거워”라는 대사에서도 어딘가 ‘성인’스러운 뉘앙스가 풍긴다. 이 둘의 관계에 의심을 하게 될 즈음, 정주리는 갑자기 한현민에게 달려들어 진한 키스(?)를 나눈다. “우리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서. 전체적으로 심하게 빨간색인 정주리와 바보에 가까워 보이는 한현민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순간, 콩나물국을 끓이는 냄비에서 물이 넘치듯 ‘성인’ 코드가 삑사리와 함께 과도하게 넘치면서 또 한 번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심하게 빨간색인 여자와 배바지 남자

이 코너는 소통 불능의 4차원 개그 코드에 어른이 연기하는 어린아이 ‘베이비’ 코드, 삑사리 ‘성인’ 코드가 뒤섞이면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개그의 맛을 보여준다. ‘안 팔아’는 유일무이한 산장 개그로 남아 있던 ‘귀곡산장’의 이홍렬·임하룡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시간이 흐르고 개그 코드가 변하면서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는 산장 주인은 무조건 팔지 않는다고 외치는 산장 주인으로 바뀌었고, “밤에 피는 장미”를 노래하던 산장 여주인은 말도 없이 기습 키스를 시도하는 붉은 립스틱의 여주인으로 바뀌었다.

‘안 팔아’가 ‘귀곡산장’의 전설을 다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산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귀곡산장’과 ‘안 팔아 산장’ 중 한 곳에서 자야 한다면 나는 ‘안 팔아 산장’을 선택하겠다. 이유는? 그냥, 기분이 ‘정주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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