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부잣집’· ‘경호 엄마’· ‘대화가 필요해’ 등의 가족 개그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제아무리 세상이 점점 더 삭막해진다고 해도, 연말이라면 며칠쯤은 훈훈해질 필요가 있다. ‘훈훈’ 하면 또 가족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지난 1년 동안 방송 3사 개그 프로그램에는 다채로운 가족이 등장했다. 가족 개그의 ‘뽀인뜨’는 1. 어떻게 ‘화목한 가정’에 대한 오래된 신화와 편견을 재미있게 깨뜨릴 수 있을까 2. 어떻게 우리 사회의 가족 문제를 신나게 풍자할 수 있을까 3. 어떻게 무조건 웃길 수 있을까. 그럼 1번부터 3번까지 염두에 두고 가족 개그 코너를 하나씩 거들떠보자.
먼저 ‘딸부잣집’은 ‘모든 아빠는 딸들을 예뻐한다’는 공식을 와르르 깨뜨린다. 그도 그럴 법하다. 첫째딸은 ‘행님아’ 김신영이고 둘째와 셋째는 유난히 거구 개그맨들로 구성된 여장 남자 자매니까. 아빠 김태현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딸들에게 직언을 한다. “니 얼굴은 개떡이야” “뚱녀 아냐” 등등. 아빠는 무조건 예뻐 보여야 하는 세 손가락을 보기만 해도 얼굴을 찡그린다. 지나치게 외모에 대한 비난으로 코너를 이끌어가는 감이 있지만, 매번 마지막에는 이런 얘기로 급마무리한다. “아빠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다 너희를 강하게 키우려고 하는 거야.” ‘아버지와 아들’ 역시 ‘모든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는 공식을 부숴버린다. 이 코너에선 부자가 나란히 앉아 낚시를 하지만 아들이 지난 추억 얘기를 꺼낼 때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에피소드만 줄줄이 ‘커밍아웃’ 당한다. 아버지는 아들 첫사랑의 전화번호를 따 일촌 신청을 하고, 아픈 아들을 업고 뛰어가다가 힘들면 중간에 포기하고, 아들이 썰매를 타다가 웅덩이에 빠지자 자기만 살겠다고 줄을 놓는다. 철딱서니 없기가 상상을 뛰어넘는 이기적인 아버지의 전형이다.
평범한 가족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가족들도 있다. 방송국 리포터가 가족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만나는 가족을 다룬 ‘요상한 가족’이 그렇다. 할아버지 김준호와 엄마 김병만, 아들 유세윤으로 이뤄진 이 가족은 매번 코너 제목 그대로 요상한 가족이 된다. ‘무서운 가족’이나 ‘귀여운 가족’ ‘궁상맞은 가족’ 등 매회 가족의 콘셉트에 따라 극단적인 가족으로 변신하는 이들은, ‘개개인은 개성이 있어도 가족은 다 엇비슷하다’는 편견을 깬다. 첫 회에서 하필 ‘응큼한 가족’으로 나와 성희롱 논란에 휩싸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 가족은 단합과 협심만큼은 그 어떤 가족보다 강하다. 이 가족의 약점이라면 생각보다 콘셉트의 변화가 빨리 식상해지고 있다는 것. 의 코믹 휴먼 다큐멘터리 ‘웅이 아버지’는 가족은 물론 인간에 대한 편견마저 거부한다. 웅이 아버지는 골백번 죽고 환생하며, 묘한 중독성 목소리의 웅이 어머니는 알고 보면 ‘남자 사냥꾼’이다. 웅이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웅이가 어떤 아이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웅이네는 안드로메다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난도 가족임이 틀림없다.
‘우리 아들이 최고’라면서 생일도 몰라
가족 문제를 꼬집은 코너도 있다. 의 ‘경호 엄마’는 자기 이름 석 자를 버리고 ‘누구 엄마’ 이름 네 자로 다시 태어나는 극성 엄마를 풍자하고 있다. 경호는 담임 선생님에게 혼날 때마다 “엄마!”를 외친다. 그러면 “누가 우리 아들 인생에 관여해? 아들 무슨 일이야?”를 부르짖는 경호 엄마가 등장한다. 경호의 경호원에 가까운 경호 엄마는 담임 선생님에게는 우선 말을 반쯤 놓고, 무조건 아들을 감싸고 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경호 엄마는 경호 생일도 모르고, 경호가 뭐하고 다니는지 관심도 없다. 그저 ‘우리 아들이 우주에서 최고’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사모님’과 ‘앞집女’의 캐릭터가 많이 비치는 엄마 캐릭터만 조금 업그레이드하면 더 강력한 웃음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대화가 필요해’는 가족 개그의 지존이다. 동민이네 가족은 애써 화목한 가정에 대한 편견을 깨지도 않고, 애써 가족을 풍자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매번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뿐이다. 그런데 동민이네의 내공이 대단한 것은, 평범한 가족의 모습에서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훈훈하고 때로는 비범한 웃음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다른 가족들처럼 극단적인 설정을 하지 않고도 우리가 늘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날카롭게 웃음점을 골라낸다. 두 바퀴 중 한쪽은 삐걱거리지만, 또 다른 한쪽은 그래도 굴러가는 어설픈 동민이네를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대화가 필요해’는 가족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어떻게 위대한 가족 개그를 만들어내는지를 증명한다. 이 코너가 장기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에서 이 코너만은 꼭 가족들과 함께 보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말연시, 가족끼리 모여 심심하게 TV를 보는 상황이 생긴다면 꼭 ‘대화가 필요해’를 챙겨보라. 동민이네 가족은 가족끼리 얘기할 무언가를 던져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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