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집중토론’식 우기기, ‘띠리띠리’를 뛰어넘은 SF 개그… ‘허경영 개그’ 집중 분석</font>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실력이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개그 무림에 모든 개그맨들을 긴장시킬 만한 고수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허경영. 제17대 대선에서 ‘8번 찍으면 팔자가 핀다’는, 제법 말장난 개그스러운 구호를 들고 나왔던 경제공화당 총재다. 정치 쪽에서 언급돼야 할 허 총재가 ‘개그쟁이’ 칼럼에 등장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최근 한국방송 개그 프로그램 ‘응급시사’에 출연해 개그맨의 생계를 위협할 만큼 충만한 개그적 감성으로 시청자에게 (박명수식 표현을 빌려) ‘빅 웃음’을 줬기 때문이다. 비로소 허 총재가 인정받을 무대를 찾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스스로 “연예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정치인과 연예인 ‘투잡’에 대한 욕심을 은근히 내비친 그의 개그 스타일을 집중 분석해보자.
온화한 미소로 “압구정서 UFO 봤다”
“14살, 15살인 청소년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합니다. 투표권이 없으니까 정부에서 최저 가격으로 급식을 먹이고 있습니다. 우리(성인)는 1만원짜리 밥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청소년들에게는 200원짜리(?) 싼 밥을 먹이는 것은 그들에게 투표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투표권이 없어서 급식을 제대로 못 먹고 있다는 허 총재의 주장은 ‘집중토론’식 개그 스타일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자꾸 처벌 처벌 하시는데, 혹시 땡벌 아십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나 “문 닫고 어떻게 나가라니? 입 다물고 어떻게 얘기해?”처럼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쨌든 그의 이러한 ‘집중토론’식 논리에는 그나마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여기까지는 개그라기보다는 ‘투표권이 있는 이들만을 위한 정책은 옳지 않다’라는 정도로 폭넓게, 매우 폭넓게 그 행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진짜 개그는 여기서부터다. 김학도가 허 총재에게 물었다. “UFO를 보셨습니까?” “예, 봤습니다. 압구정동에서 봤습니다. 한 개가 서른 개가 되고, 서른 개가 한 개가 되는 데 0.1초가 걸립니다. 크기는 잠실체육관 크기와 똑같았습니다. 은하계까지 날아가는 속도가 0.1초 걸립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는 좀 어렵죠.”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 얘기를 하는 허 총재는 타고난 개그맨이 틀림없어 보였다. 여기서 그가 참고한 개그는 의 ‘띠리띠리’가 틀림없다. 지구에 사는 외계인 띠리띠리는 검지를 콧구멍에 넣으면 외계와 교신이 가능하고, 알약을 두고 외계에서 데려온 부하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잠실에서 택시 타고 30분 거리인 압구정동에서 잠실체육관 크기의 미확인 비행물체 UFO를 봤다는 허 총재는 ‘띠리띠리’보다 한 수 높은 한국형 SF개그를 구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허 총재의 얘기에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 UFO 얘기만 해도 그렇다. 한 개가 서른 개가 되는 데 0.1초가 걸린다는 매우 구체적인(?) 증언은 그의 얘기를 뒷받침해준다. 게다가 그의 아이큐는 430이 아닌가. 그는 “아이큐 100보다 뇌가 4천 배 정도 좋다. 환자를 보면 눈빛으로 고치는 데 0.1초 걸린다”고 얘기한다. 허 총재는 높은 지능지수의 소유자답게 대단한 ‘하이 개그’를 구사한다. UFO 한 개가 서른 개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 0.1초와 UFO가 은하계까지 날아가는 데 걸리는 0.1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그가 눈빛으로 환자를 고치는 데 0.1초가 걸린다는 얘기에 무릎을 치며 웃을 수밖에 없다. ‘0.1초’라는 하나의 숫자를 개그의 주요 코드로 삼아, 이를 반복하면서 구사하는 지능적인 개그가 바로 허 총재식 ‘하이 개그’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이 소련처럼 해체가 되고 나면 중국은 6개 민주공화국으로 나눠지고, 그러면 몽골과 우리가 먼저 통일을 한 다음, 중국을 차례대로 통일하고, 마지막으로 북한과 통일하겠습니다. 잃어버렸던 옛 영토를 모두 되찾고 일본까지 합친 다음, 유엔본부를 판문점에 갖다놓겠습니다.” 중국 해체에서 시작해 유엔본부의 판문점 입성으로 끝나는 허 총재의 ‘연쇄도미노과장개그’는 와 등 수많은 개그 프로그램의 개그맨들이 밤새워 머리 싸고 고민하는 개그의 발전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3차원에서 4차원으로, 4차원에서 5차원으로 넘어가는 개그의 최신 트렌드를 이미 꿰뚫고 있다 하겠다.
이렇게 허 총재의 개그 스타일을 심층 분석한 결과, 그는 나 등 그 어떤 개그 프로그램에 나와도 무난히 합격점을 받을 만큼 노련하고 지능적인 개그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가 다시 한 번 (제18대 대선이 아닌)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를 웃겨주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단, 허 총재의 개그적 감성에 이성까지 빼앗기려고 한다면 잊지 말고 꼭 외쳐야 할 구호가 있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 개그는 개그일 뿐, 웃고 넘기자!”)
▶세금 먹는 하마, 거대한 놈이 온다
▶민노당, 혁신이냐 분당이냐
▶당신의 일상을 탐닉하라
▶나는 비주류, 최선을 다해 부딪히기
▶쉽게 눈 못 뗄 대장정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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