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애드리브 같기도 대본 같기도

등록 2007-08-31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애드리브라더스’ ‘바라바라’ 등 애드리브를 전면에 내세운 개그 코너들</font>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대본에 없는 즉흥적인 대사, 애드리브는 21세기 예능인의 필수 조건이다. 버라이어티쇼 등 온갖 예능 프로그램의 뼈대는 대본을 기초로 한 진행자의 진행이지만, 시청률을 올려주는 것은 출연자들의 애드리브다. 짧은 순간 재치와 유머를 발휘해 예상치 못한 웃음을 던져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방송사에서 박수치며 ‘좋아라’ 하는 예능인의 올바른 태도다. 방송 3사 및 케이블 TV에 비싼 몸값으로 ‘모셔지는’ 예능인은 대부분 애드리브의 달인이다. 문화방송 이나 한국방송 , SBS 등 각 방송사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애드리브의 폭발력에 대해 실감하게 된다.

반면, 개그 프로그램은 그렇지 않다. 촘촘히 짜인 스웨터처럼, 동선부터 짧은 대사 하나까지 수차례 연습과 수정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공개 개그 프로그램 무대에 선 개그맨은 연습한 대사를 완벽하게 연기하고 소화해내려고 노력한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말이 아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에 충실한 대사가 개그의 생명이다. 그러나 TV 모니터의 벽은 점점 더 얇아지고 시청자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주는 즐거움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거기에 발이라도 맞추듯 개그 역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물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애드리브가 있다.

‘컬투’는 ‘그때그때 달라요’에서 이제까지 봐왔던 개그와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여줬다. 해바라기를 머리에 꽂은 미친소 정찬우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엉터리 영어 해석으로 사람들의 배꼽을 빼놓다가 갑자기 ‘내가 하고는 있지만 참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부터 정찬우의 웃음과 이어지는 김태균의 즉흥 대사는 이 코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됐다. 의 ‘마빡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100% 실제 상황, 50% 애드리브 정도로 꾸며진 이 코너는 개그 역사에 길이 남을 코너가 됐다. 이렇게 애드리브가 가미된 코너가 여러 개 성공하면서 애드리브는 대중화가 됐다.

대본+애드리브+시청자 참여=웃음

최근 이 애드리브를 전면에 내세운 코너가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코너로 이제 막 시작한 리얼 쌍방향 개그 프로젝트 ‘애드리브라더스’와 ‘바라바라’가 있다. 제목에서부터 애드리브가 느껴지는 ‘애드리브라더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코너다. 방청객이 아무 말이나 써서 무대로 던진 종이를 바탕으로 개그를 이어나간다. 이런 식이다. “저는 화가 날 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어요. 포장마차 이름이 뭐냐구요? (무대 위의 종이를 펴보면서) ‘군인은 아이비를 좋아해’예요.”(김현기) “저희 가게에서는요, 건배를 할 때 ‘섬바디 두 잇’ 이렇게 건배를 하곤 하죠.”(박성호) 종이에 어떤 말이 쓰여 있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 이미 짜여 있는 대본 외에는 모두 애드리브로 진행하는 이 코너에서 이들은 ‘대본+애드리브+시청자 참여’라는 세 요소를 적절히 버무렸다.

‘바라바라’는 선생님이 학생 3명을 한명 한명 불러세워 성적이 나쁘다고 잔소리하는 내용이다. 애드리브가 들어가는 부분은 바로 잔소리다. “참, 연기 어색하네. 연기에 발전이 없어. 개그한 지 몇 년 됐어?”(허동환) “7년 됐습니다.”(김한배) “슬프다 이 자슥아. 웃음을 줘야 하는데, 감동을 주네.”(허동환) 허동환은 이 코너 내내 대사를 하다 말고 계속 웃음을 터뜨리는 개그맨 차민준을 타박한다. “관객도 안 웃는데 뭐하는 짓이야. 개그맨이야, 관객이야? 슬픈 생각을 해라. 가장 어려울 때를 생각해. 방청석으로 들어가!” 연기를 해야 하는 개그맨이 웃어버리면서 코너가 무너진다는 돌발 상황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때그때 달라요’에서 정찬우가 웃어버렸던 그 부분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짠 대사같은 애드리브는 불안해

이 코너들은 애드리브라는 요소를 더해 코너에 긴장감과 즉흥성을 준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과하다 싶고, 코너 속 애드리브가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애드리브라더스’에서는 어떤 말이 쓰여 있는지 모른다는 상황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도 하지만 종이를 펴고 읽는 상황이 반복되고,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 말이 쓰여 있으면 분위기가 확 다운된다. ‘바라바라’에서는 애드리브를 만들어내기 위한 상황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미친 듯이 웃는 개그맨이 정말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다소 애매한 상황은 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허동환의 대사 역시 애드리브라기보다는 애드리브를 위해 짠 대사라는 인상이 강하다.

애드리브의 즉흥성도 좋지만, 개그의 진짜 맛은 여러 날 고민해서 나온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애드리브, 이쯤에서 살짝 브레이크 밟아보는 것은 어떨까.

<li>이번호 주요기사</li>

▶여론조사가 정치를 잡아먹는 나라
▶헤딘은 조선에서 무엇을 보았나
▶‘봉’ 잡았네, 인천공항고속도로
▶비정규직 차별 시정의 쟁점은 무엇인가
▶햇빛 에너지 찬란한 나라 바람 불어 좋은 나라
▶굶는다, 원조식량 때문에…
▶휠체어석 관객은 외롭고 힘들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