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일년간 환상의 호흡 보여줬던 ‘뮤지컬’의 마지막 회를 보며</font>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이 끝났을 때, 오랫동안 시끌벅적하게 살았던 동네를 떠나는 기분이었다. 이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일정 기간 규칙적으로 만나서인지 금세 익숙해지고 또 정이 든다. 마지막 회가 방송되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하고, 캐릭터 한명 한명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눈여겨보게 된다. 그렇지만 개그 프로그램은 그게 쉽지 않다. 코너가 얼마 방송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사라지거나 편집되기도 하고, 이 코너에 나왔던 개그맨들은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코너에서 다른 역할로 출연하기도 한다. 개그 프로그램 속 개그맨들에게 쉽게 빠지거나 정이 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9월 2일 마지막 회를 맞은 ‘뮤지컬’은 그렇지 않았다. ‘뮤지컬’ 마지막 회를 보면서 눈물이 약간 나올 뻔했다. 섭섭해서.
‘벌써 일 년’이 지나갔다. ‘뮤지컬’은 지난해 9월3일 “배추 사이소!”라고 외치는 신봉선의 목소리로 그 시작을 알렸다. 첫 회에서는 여러 가수들이 함께 부른 노래 에 맞춰 배추장사 엄마와 그를 괴롭히는 동네 깡패들의 얘기를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노래를 하는 형식으로 재치 있게 엮어냈다. 마이크는 쟁반이나 술병 등 예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고 잘 짜인 대본과 동선 속에서 기막힌 타이밍에 개그맨들이 돌아가면서 대사 대신 노래를 했다. 노래와 이야기, 개그가 적절한 비율로 잘 어우러진 ‘뮤지컬’은 초기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마이크를 돌려가면서 노래를 하는 형식은 곧 마이크 없이 노래를 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내용은 뮤직비디오에 주로 나오는, 5분 동안 만남부터 사랑에 이별까지 모두 해치우거나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들 이야기를 다뤘다. 뮤직비디오 혹은 드라마를 살짝 패러디하고 개그적으로 비꼬면서 웃음과 눈물을 모두 이끌어냈다.
그런데 중기로 접어들면서 ‘뮤지컬’은 일종의 슬럼프를 맞았다. 늘 애절한 발라드 음악에 맞춰 거의 비슷한 내용이 자주 반복됐고, 개그만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주춤했다. 가끔은 ‘웃기려는 건지, 울리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기본이 되어 있는 코너이다 보니 꾸준히 달려갈 수 있었다. ‘뮤지컬’의 전성기는 다른 코너들과는 다르게 후반기에 찾아왔다. 후반기의 ‘뮤지컬’은 패러디나 풍자를 더 적극적이고 폭넓게 활용했다. 장면의 전환이나 무대의 구성이 더 탄탄해졌다. TV 세트를 무대 위에 세우기도 하고 그 속에서 검은 배경과 보이지 않는 손을 이용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에서부터 반짝이 효과까지 온갖 특수효과를 만들어냈다. ‘뮤지컬’의 백미는 400회 특집에서 보여줬던 ‘거위의 꿈’이었다. 개그맨이 되기까지 과정과 ‘뮤지컬’이라는 코너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고, 무대 뒤편에 스크린을 설치해 개그 코너 이상의 규모와 구성을 선보였다. 멜로부터 코미디, 공포, 사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개그의 감각을 최고로 이끌어내기도 했다.
‘뮤지컬’이 후반기에 더 빛났던 이유 중 하나는 5명이 만들어낸 환상의 호흡이다. 신봉선·김재욱·노우진·이동윤·유민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의 멤버 교체도 없이 이 코너를 이끌어왔다. 유일한 개그우먼인 신봉선은 매회 모든 여자주인공 역할을 독식(!)하며 눈에 띄게 좋아지는 연기력과 노래 실력을 선보였다. 중요한 순간에 참 기막히게 망가져주는 신봉선은 ‘뮤지컬’의 절반을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 실력으로 단연 눈에 띄는 노우진과 항상 살짝 얄미운 역할을 하는 이동윤, ‘뮤지컬’ 속 조폭 연기의 달인 김재욱,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유민상까지 5명의 멤버는 그 어떤 코너의 개그맨보다 손발이 잘 맞았고 아이디어의 시너지 효과도 대단했다.
‘뮤지컬’은 마지막 회에서 드라마 을 패러디했다. 남장 여자 고은찬 역의 신봉선과 나중에 역시 남장 여자로 밝혀지는 공유 역의 유민상, 또 세 명의 프린스 역의 김재욱·노우진·이동윤은 끝까지 척척 맞아들어가는 호흡을 자랑했다.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아무리 불어도 절대 꺼지지 않는 초를 꽂은 케이크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신봉선을 보면서 개그우먼으로서 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신봉선의 얼굴에 케이크를 문지르는 나머지 4명의 개그맨을 보면서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 이들이 또 어떤 코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졌다. 무지 정들었던 ‘뮤지컬’,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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