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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아, 세계 1등을 향해 덤벼라!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28년째 한국 육상 100m 신기록 보유자로 살아온 서말구 해군사관학교 교수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 dmzsong@hani.co.kr

“거참 답답한 일이죠.”

그러더니 그는 “당장 깨질 줄 알았지. 이렇게 시간이 길어질 줄 몰랐죠. 세계 기록이 깨지지 않으면 이야깃거리가 될지 몰라도 그냥 한국 기록 아닌가? 이까짓 것 왜 못 깨는가”라고 후배들에게 물었다.

막내여서 ‘끝 말’(末) 한자가 들어갔다는 서말구(52) 해군사관학교 교수. 무려 28년째 한국 육상 100m 신기록 보유자로 살아왔다. 최근 그 기록을 3명이 무더기로 깼다는 발표가 나왔다가, 측정 오류로 판명돼 난리법석을 떤 일이 있었다. 그렇게 한국 육상은 또 ‘서말구’란 이름을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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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를 시속 35.15km로 달리다

1979년 9월. 동아대 학생이던 그는 18시간이나 걸려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리는 멕시코로 떠났다. “나이도 젊었고 몸 상태가 정말 괜찮을 때였죠. 내가 원래 시차 적응도 잘하고, 음식을 양식, 한식 가리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됐을 겁니다. 날씨도 덥지 않았고.” 9월9일, 182.5cm의 키와 77kg의 몸무게를 가졌던 그는 100m를 시속 35.15km로 달렸다. 후배들이 허물지 못한 ‘10초34’의 난공불락이 기록표에 찍혔다. “내가 속한 준결승 조에서 3위로 들어왔죠.” 아시아 신기록이었다. “누구는 (공기 저항이 적은) 고지대여서 그런 기록이 나왔다고 하는데…. 난 대회가 열리는 곳이니까 갔을 뿐이고, 몸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 기록도 세우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100m는 아주 예민한 종목이거든요.”

그는 8명이 겨루는 결선까지 오르지 못했다. 세계 육상은 1930년 퍼시 윌리엄스(캐나다)가 이미 10초3에 들어왔고, 짐 하인스(미국)가 68년에 9초95로 10초 벽까지 허물며 한국이 쫓아갈 수 없는 곳으로 내뺀 상태였다. 그는 “끝나고도 더 잘 뛸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런 배짱을 가질 만했다. 그는 200m에서도 20초91로 한국에서 처음 21초 경계선을 넘었다. 이 대회가 끝난 뒤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컵육상경기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했을 때도 그는 한국 육상을 잠시 흥분 속으로 몰아넣었다. 타이, 일본,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의 서말구가 400m 계주 아시아 대표였다. “4명 중 가장 잘 달리는 선수를 100m에 내보내기로 하고, 몬트리올 경기장 옆 보조운동장에서 심판 2명을 배석시킨 채 기록을 쟀죠. 제가 1등이었고, 두 심판 모두 10초00을 판정했죠.” 당시 심판 3명이 있어야만 공식 기록으로 인정될 수 있었기에 비공인으로 처리됐다.

고등학교 1학년 체력검정에서 12초1로 덜컥 전교 1등을 하며 뒤늦게 육상에 입문한 ‘스프린터’치고는 엄청난 반란이었다. 그는 “40분 걸리는 초등학교, 1시간 걸리는 중학교를 걸어다니는 게 전부였고, 형제들 중에도 잘 뛰는 사람이 없는데 참 이상한 일”이라며 웃었다. “당시 학교 육상부는 중장거리가 전문이었는데, 첫날 15km인가를 뛰었더니 너무 힘들었죠. 그래서 단거리를 하게 된 거죠. 고등학교 3학년 때 11초를 뛰어 전국에서 처음 100m를 우승했습니다. 150m·300m 등 단거리 선수로선 긴 거리도 반복해서 훈련한 게 기록 향상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두고두고 아쉬운 모스크바올림픽 출전 무산

그는 냉전시대의 이해관계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걸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다. 당시 올림픽 육상 출전 기준기록을 통과한 아시아 선수는 그를 포함해 2명밖에 없었다.

“올림픽 앞두고 미국 남가주대에서 전지훈련을 했어요. 100m 세계랭킹 1위와 같이 훈련했거든요. 그를 이기면 나도 세계 1위가 되지 않겠나 싶었죠. 물론 훈련 때 이기지 못했지만 두려움은 없어졌는데.” 의욕이 앞선 나머지 훈련 도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대수술을 받은 것도 불운이었다. 은퇴해 동아대 육상 코치로 있다가 1984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 들어가는 이색 변신도 감행했다. “강병철 감독님의 추천이 있었거든요. 롯데에선 발이 빠르니 해태 선수(김일권)와 도루를 겨루는 대주자용으로 쓰려고 영입했다고 대외적으로 알렸지만, 한 번도 경기에 나간 적은 없었죠. 달리는 기술을 가르치는 트레이닝을 담당했죠.”

1987년 야구단을 나온 그는 해군사관학교 교수 임용에 지원해 19년째 생도들에게 ‘트레이닝 방법론’을 강의하고 있다.

“배도 좀 나왔고. 이제 달리면 14초 정도 안 뛰겠습니까?” 그가 이마 넓은 ‘중년의 남자’가 돼버렸지만, 한국의 100m는 걸음마를 하고 있다. 육상경기연맹은 지난해 한국 기록 1억원, 10초 벽 돌파 5억원, 세계 기록에 10억원을 주겠다고 발표해 선수들을 독려했다. ‘일본 단거리의 사부’ 미야카와 지아키(60) 도카이대 교수도 초빙해 대표팀 ‘쪽집게 과외’도 시켰다. 미야카와 코치는 아시아 최고기록(10초00) 보유자인 일본의 이토 고지를 키워냈다. 그러나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단 1명도 결선에 오르지 못해 속성 과외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최근 끝난 전국육상종별선수권에서도 이준우(한체대)가 10초60으로 우승했고, 일반부 정상에 오른 국가대표 임희남도 10초68에 그쳤다. 단거리의 희망인 전덕형(충남대)은 레이스 도중 포기했다.

“육상 훈련 체계적이지 못해 문제”

“부모들이 육상을 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체계적인 훈련이 이어지지 않는 탓도 크다. 자질이 있는 단거리 선수가 능력 있는 단거리 전문 코치가 있는 학교로 가 배워야 하는데, 전국체전 등 시·도의 얽힌 이해관계 탓에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비전문 코치 학교로 들어가니 훈련의 연계성이 떨어진다.”(황규훈 육상연맹 전무이사)

서말구 교수는 “내 기록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좋은 자원을 골라 충실히 키우면 할 수 있다. 자, 뒷산 오를 생각만 하면 뒷산밖에 못 가는 법 아닌가? 고작 내 기록을 깨서 뭐하려고 하나? 한국 기록 깨면 1억원?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후배들아! 세계 1등을 하겠다는 포부로 덤벼야지. 목표를 세계 기록(9초77)으로 크게 잡아야 아시아 기록도 깨고 내 기록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는 거다. 단거리는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뒷산이 아니라 에베레스트에 오를 생각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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