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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값, KBO 동반 폭락?

등록 2008-01-11 00:00 수정 2020-05-03 04:25

권리금 문제로 총재에 대든 구단, 현대 유니콘스 매각 과정에서 들춰진 프로야구의 문제들

▣ 신명철 편집위원

2007년 정해년을 보내면서 국내 스포츠계의 가장 큰 화제 가운데 하나는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의 매각 문제였다. 지난해 시즌 내내 이어진 현대 매각 과정을 통해 그동안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던 프로야구의 여러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먼저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기구인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다. 1981년 12월11일 창립총회를 연 사단법인 KBO의 초대 총재는 국방부 장관을 지낸 4성장군 출신의 서종철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 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 거물급 인사가 프로야구의 수장 물망에 올랐다. 는 이 두 인사 외에 김정렬 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과 서 총재가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전두환 대통령이 서 총재의 이름 옆에 낙점의 ○표를 했다고 전하고 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취임 초기의 전두환이 ‘황표정사’를 할 정도로 프로야구는 당시 정권의 관심사였다.

같은 ‘낙하산 총재’지만 달라진 위상

전두환은 역대 어느 대통령 못지않게 스포츠에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그의 재임 기간 프로야구를 비롯한 많은 종목이 융성했던 게 사실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을 자유직업 소득자로 분류해 세금을 비교적 적게 내게 한 일, 방위병이 위수 지역 안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한 일, 기업의 프로야구단 지원금을 손비 처리하도록 한 일 등은 그같은 분위기에서 프로야구계가 얻은 달콤한 열매였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구단에 실질적인 도움을 줬기에, KBO 총재의 권위와 위상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런데 프로야구는 총재의 권위 문제와 관련해 출범 초기부터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KBO는 커미셔너(감독관) 사무국과 리그 사무국이 합쳐져 있는 형태다. 단일 리그로 펼쳐지는 국내 프로야구의 한계 때문에 두 기구를 나눠 운용하기 힘든 실정이다. 커미셔너 사무국은 프로야구의 최고 권력자인 총재가 일하는 곳으로, 야구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과 관련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리그 사무국은 말 그대로 리그의 사무를 보는 곳이다. 구단의 뒷바라지를 하기 때문에 구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중적인 구조인 게다.

권위주의 시대를 벗어나며 KBO는 위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신상우 현 총재에 이르기까지 ‘낙하산 총재’에 대한 시비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총재와 KBO의 위상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프로야구 초기에는 KBO의 실무기구인 이사회에 KBO 사무국의 사무차장까지 참여했다. 사무국의 2인자가 구단 사장과 동급일 만큼 위세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무국의 1인자인 사무총장이 이사회에는 참여하지만 투표권은 행사할 수 없다.

가입금으로 도곡동 빌딩 지어주기도

새로운 시대를 맞아 KBO도 바뀌어야 하지만 총재의 권위가 떨어지는 데는 문제가 있다. 프로야구는 어차피 이익을 추구하는 스포츠 산업이므로 구단 사이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맞설 수밖에 없다. 이때 이를 중재하고 프로야구를 유망한 스포츠 산업으로 이끌기 위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게 총재다. 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었지만, 신상우 KBO 총재는 이번 현대 매각 과정에서 산하 구단의 공격을 받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신상우 총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야구 수장의 권위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두 번째로 그동안 수없이 거론됐던 프로야구의 거품이 적나라하게 벗겨진 것이다. 1990년대 한때 프로야구계에서는 “캐치볼만 할 줄 알아도 투수라면 억대 계약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실제로 이 무렵에는 수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소리 없이 사라진 ‘거품 투수’들이 꽤 있었다. 이때를 계기로 선수들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같은 거품에 휩쓸려 프로야구 구단의 값어치까지 뛰었다.

1985년 4월 원년 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는 70억원에 청보식품에 팔렸다. 프로야구 원년 형편없는 성적으로 ‘삼미 슬퍼스타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삼미 구단은 1983년 재일동포 장명부를 앞세워 돌풍을 일으키는 등 초창기 프로야구가 자리를 잡는 데 나름대로 이바지했다. 그렇기에 구단 매각 소식은 야구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삼미그룹은 그 무렵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아 속병을 앓고 있었다. 당시 삼미구단은 3년 사이에 45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적자를 보전할 만한 돈을 받고 구단을 매각할 수 있었다.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청보식품이 인수해 창단한 청보 핀토스는 불과 2년 만에 다시 50억원에 태평양그룹에 팔렸다. 매입 대금과 두 시즌 동안 기록한 적자액을 따지면 적지 않은 손해요 대금 지불 방식도 5년 거치 5년 분할 상환 조건이었지만, 그래도 청보식품은 상당한 돈을 건질 수 있었다.

국내 프로야구의 세 번째 매각 사례는 1990년 럭키금성그룹이 MBC 청룡을 산 것이다. 이때 매각 대금은 100억원이었다. 이외에 광고협찬금 형식으로 30억원을 지원하기로 해 총 매각 대금은 130억원에 이르렀다. 인천 구단의 네 번째 주인인 현대 유니콘스가 1995년 9월 태평양을 인수할 때 매입 대금은 470억원이었다. 현금 400억원과 부채 70억원을 인수하는 형태였다. 주력기업인 태평양화학이 화장품 시장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내린 매각 결정이었다. 그 뒤 쌍방울이 SK에, 해태가 기아에 팔렸지만 태평양 구단의 매각액인 470억원은 국내 프로야구단 매매가 가운데 최고액으로, 앞으로 프로야구가 극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 ‘전설적인 매매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현대 매각 과정에서 KT는 현대구단이 해체된 뒤 재창단하는 형식을 밟고자 해 매각 대금이 있을 수 없었다. 구단을 매입해 프로야구에 참여하는 방법 외에 구단을 창단해 리그에서 뛰는 방법도 있다.

1986년 한국화약그룹은 프로야구 제7구단으로 참여하면서 30억원의 가입금을 냈다. 1989년 창단이 결정된 쌍방울은 50억원의 가입금을 냈다. 한국화약그룹은 가입금 문제로 기존 구단들과 오랜 기간 신경전을 벌였지만 결국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야구회관 건물을 지어 가입금에 대신했다. 이 건물은 애초 예정보다 2년 정도 늦은 1988년 완공됐다. 대지 구입비와 건설비는 설계 당시 25억원 정도로 KBO가 내세운 가입금을 밑돌았지만 건물이 완공됐을 때는 지가 상승 등으로 이미 30억원을 넘었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조금 못 미친 대로변에 있는 빌딩이니 요즘 시세는 당시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것이다.

근원적 과제는 ‘스포츠 산업 되기’

그런데 이번 현대의 매각 과정에서는 매각 대금 없이 가입금만 60억원이 거론됐다. 지난해 KBO가 지급 보증을 서 현대구단 운영에 들어간 돈이 131억원이니 KBO가 대출은행에 갚아야 할 돈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번 매각 과정에서 서울을 연고지로 하겠다는 KT는 지역 연고권을 갖고 있는 LG와 두산의 ‘권리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구단이 총재의 결정에 대든 사태의 발단은 바로 ‘권리금’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내 프로야구판의 가치는 ‘권리금’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폭락한 것이다.

이번 사태로 국내 프로야구계는 프로야구를 스포츠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근원적인 과제를 다시금 실감하게 됐다.

사진 연합 최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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