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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예서의 태극마크를 응원하라

등록 2008-02-22 00:00 수정 2020-05-03 04:25

귀화한 ‘순수 외국인’ 중 처음으로 올림픽 한국 대표가 된 탁구선수 당예서

▣ 신명철 편집위원

중국에서 귀화한 여자 탁구선수 당예서(唐汭序·27·대한항공)가 논란 속에 치러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3월6~9일·홍콩) 출전 선수 선발전에서 7전 전승의 뛰어난 실력을 뽐내며 1위를 차지했다. 애초 대한탁구협회는 국제탁구연맹(ITTF) 랭킹에 따라 자동출전권을 확보한 김경아(31·대한항공)와 박미영(27·삼성생명) 외에 1명의 선수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이은희(22·단양군청)를 아시아 예선에 내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실질적으로 국내 랭킹 1위인 당예서를 비롯한 우수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게 돼 결국 선발전을 열게 됐다.

선수 선발전 7전 전승 등 절정의 기량

당예서의 베이징올림픽 출전은 사실상 결정됐다.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은 탁구 후진국에 배당하는 와일드 카드 4장 외에 7장의 직행 티켓이 걸려 있어 이변이 없는 한 당예서는 본선에 나설 수 있다. 당예서는 지난 1월에 열린 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식과 단체전 2관왕에 올랐고, 단체전 세계탁구선수권대회(2월24일∼3월2일·중국 광저우) 최종 선발전에서 10전 전승으로 대표로 뽑히는 등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당예서는 한국 스포츠 사상 두 번째로 외국인 귀화 선수가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기록을 쓰게 될 전망이다. 첫 번째 선수는 남자 배구의 후인정(34·현대캐피탈)이다. 후인정은 대만 국적의 화교였지만 한국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귀화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돼 그 꿈을 이뤘다. 후인정은 대만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경우여서, ‘순수 외국인’으로 귀화해 한국 대표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건 당예서가 첫 번째 사례다.

그런데 당예서가 국가대표가 된 데 대한 한국과 중국의 시각이 묘하다. 중국은 왠지 부담스러운 듯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수많은 중국 탁구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해 해당 나라의 국적을 얻은 뒤 중국 선수들과 여러 국제대회에서 맞붙고 있다. 허즈리는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 대표선수로 활약했고, 남미의 한 나라를 경유해 대만으로 건너간 첸징은 1993년 예테보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 한국의 현정화에게 져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진준홍은 싱가포르 대표로 활동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사실 중국의 적수가 못 된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최근 여자대표팀의 전력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중국과 겨룰 만한 나라는 한국 정도다. 특히 이번 베이징대회에서는 남녀 복식이 빠지고 남녀 단체전이 정식 세부 종목으로 들어갔다. 당예서의 활약 여하에 따라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다.

국내 반응은 외국인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해도 귀화한 선수를 진심으로 응원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한 네티즌의 지적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혈통주의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빠르게 국제화하고 있다.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순수 혈통이 아닌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진입했으며 국가대표로 뽑히기까지 했다.

지난해 7월 일본 도쿠시마에서 열린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이동준(28·대구 오리온스)은 그때까지만 해도 ‘다니엘 로버트 산드린’으로 통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동준은 지난해 귀화한 상태였지만 개명 허가가 나지 않아, 국제대회에서 미국 이름을 갖고 있는 한국 선수가 뛰는 일이 벌어졌다.

10년 안에 혼혈 유망주들 등장할 것

운동선수들의 국제적인 교류와 귀화는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됐다. 많은 귀화 선수들이 뛰어난 경기력을 보이며 새로운 조국에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한국도 느린 편이긴 하지만 이같은 흐름에 따라가고 있다. 외국인 선수의 귀화 문제가 나오면 흔히 예로 드는 게 이웃 일본이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미드필더 라모스, 공격수 로페스, 수비수 산토스 등 브라질 출신 귀화 선수가 차례로 일본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 귀화 문제가 잠시 거론됐지만 한국적 정서는 국가대표팀에 외국인이 끼어 있는 게 여전히 불편했다.

그러나 이제 그같은 정서가 서서히 사라질 조짐이 보인다. 외부적인 영향이 아니라 내부적인 상황의 변화다. 최근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늘고 있는 외국인 신부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상당수의 혼혈 운동선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혼혈 2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하지만 외모를 보면 외국인에 가깝다.

이들은 어머니의 나라 또는 아버지의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운동하기에 좋은 신체적인 조건을 갖출 가능성이 크다. 우즈베키스탄 어머니를 둔 아들이라면 강인한 골격을 지녀 유도·복싱·레슬링 등 격투기 종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일 수 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쪽 나라의 어머니가 낳은 2세는 순발력과 유연성이 좋은 체질을 지니고 있어 배드민턴 등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혼혈 2세들의 나이가 이미 초등학교 연령대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2010년대 중반쯤이면 국내 출생 혼혈 2세가 국가대표 선수가 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순수 외국인은 그렇다 치고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계에서도 혼혈인의 활동은 위축돼 있었다. 혼혈인 수가 적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르면 10년 안에 ‘코시안’을 비롯한 적지 않은 혼혈 유망주들이 국내 스포츠 무대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계에서도 혈통주의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된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스포츠도 ‘해외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1964년 도쿄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김의태, 1972년 뮌헨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오승립은 재일동포다. 또 1958년 도쿄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남자 필드하키팀(동메달)은 선수 모두가 재일동포였다. 이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운동을 배웠으니 요즘의 ‘용병’이었던 셈이다.

북한 출신 선수에게도 거부감 버려야

한 핏줄인 북한 출신 선수들에 대한 이질감이나 거부감도 사라져야 한다. 1987년 에센(서독) 세계유도선수권대회 71kg급 동메달리스트 이창수는 1991년 바르셀로나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때까지 북한 대표로 활약한 뒤 탈북했다. 이창수는 국제대회 메달리스트들의 모임인 ‘유맥회’에 참여하는 등 남녘 유도인들과 나름대로 교류를 하며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미묘한 판정의 불이익을 당하며 태극마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02년 이후 한 해 1천 명 시대에 들어선 탈북 행렬에는 축구·아이스하키·리듬체조 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던 이들이 들어 있다. 이들이 북녘에서 갈고닦은 기량을 남녘 후배들에게 전하는 일도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한 핏줄은 물론 외국인과 혼혈인을 아우를 때 한국은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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