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보란 듯 돌아오라 반지의 제왕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프로 데뷔 10돌 맞아 친정팀 부산에 복귀한 안정환, K리그에서 부활할까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우린 그 눈물을 보았다. 왠지 곱게 자란 외동아들 같은 그가, 눈물이라곤 전혀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그가 흘린 눈물.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연장 후반 12분. 골든골을 넣고 반지에 입을 맞춘 뒤 운동장에 누운 그 위로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겹치고 또 겹쳐 올라갔던가. 한참 만에 일어난 그에겐 마치 무대 위 홀로 선 배우처럼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졌고, 골든골만으로도 충분히 울컥해진 사람들에게 그는 눈물까지 보이더니, “경기 내내 울면서 뛰었다”는 벅찬 대사를 던지지 않았던가. 전반 5분 그의 페널티킥 실축은 결국 골든골을 향한 극적인 복선 장치였으나, 결말을 모르던 우린 실축 순간 또 얼마나 탄식을 내뱉고 가슴 졸였던지.

‘2군’ ‘관중석 돌진’ 시즌을 뒤로하고

기억은 늘 망각을 동반하는 것이라, 그날의 감흥도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되었나? 실은 그때 우린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난 그가 어머니의 성을 따라야 했고, 뭐 하나 배불리 먹이지 못한 할머니는 배 꺼진다고 축구를 그만두라고 했으며, 사실은 사장님댁 아들이 아니라 굿판에서 몰래 떡을 주워먹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저 말쑥한 얼굴과 휴먼스토리를 도대체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난감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아주대 4학년 시절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귀국하자마자 전국추계대학연맹전 결승전 후반전에 바로 투입돼 2골 1도움으로 지던 경기를 뒤집었다는 그의 숨겨진 일화까지 찾아내 열광했으며, 이탈리아와의 골든골 탓에 당시 소속팀(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 회장이 “배은망덕한 선수”라는 독설을 퍼부었을 땐 그 못지않게 마음 아파했던 기억도 갖고 있다.

그렇게 그는 어렵지 않게 ‘영웅’이란 칭호까지 달았는데, 대중의 평가와 관심은 냉정하게도, 또 가혹하게도 한결같지 않다는 것이다. 한-일 월드컵 때 “안정환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는 이탈리아 페루자 회장의 말에 같이 흥분했던 일은 지난 추억이 됐고, 어느새 “몸값 거품이 많다” “시장에서 그의 가치는 떨어졌다” “해외에서 누가 그를 선뜻 데려가려고 하겠느냐” “한물갔다”는 지적이 꼬리를 물었다. 그건 그동안 안정환(32·부산 아이파크)이 듣곤 했던 비판의 수위를 훨씬 넘어선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2군’ ‘관중석 돌진’으로 요약되는 그의 지난 시즌 잔상 때문일 것이다. 안정환은 지난해 수원 삼성에서 25경기에 나와 5골을 넣었다. 대부분 교체 출전이었으며, 5골도 컵대회에서 넣은 것일 뿐 정규리그에선 ‘0점’에 그쳤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난 뒤 6개월여간 팀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낸 공백 후유증 탓이다. 2군들과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와 관중석에서 1군 후배들의 경기를 보는 일도 잦아졌다. 차범근 수원 감독은 안정환을 꾸준히 출전시키며 감각을 끌어올리게 하는 대신 그를 벤치 또는 2군에 남겨두었다. 그는 관중이 거의 없는 2군 경기 도중 상대 서포터의 욕설에 분을 참지 못하고 관중석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결국 징계를 받을 만큼 적절하지 못했으나, “네가 월드컵 스타냐?” “비싼 돈 받고 2군에서 뛰냐” 같은 상대팬의 비아냥은 팬들의 기대치와의 간극 사이에서 조급해진 그의 마음을 자극할 만도 했다.

4kg 감량, 훈련 뒤 모래주머니 차고 다녀

그로선 더없이 아쉬운 시즌이 끝났고, “안정환이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속에 새 시즌을 맞았다. 3월8일 개막한 K리그의 최대 관심사는 부산에 둥지를 튼, 정확히 말하자면 대표팀 시절 ‘형’이라 불렀고, 공격수의 모델로 여겨지는 황선홍 신임 감독에게 찾아간 안정환의 부활 여부다.

안정환이 올 초 부산 입단식을 하고 바로 팀훈련에 합류했을 때, 참석한 사람들은 “부산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겠다”는 그의 당찬 결의와 “부활의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돕겠다”는 황선홍 감독의 격려보다 불어난 안정환의 몸에 더 깊은 시선을 보냈다. 수원과 결별을 선언한 뒤 해외 진출을 시도하느라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후유증을 올해 또 반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그 시선에 섞여 있었다.

그러나 겨울 훈련을 통해 4kg을 감량하고 “밑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그의 각오는 그 우려를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 다리 뒷근육을 보강하기 위해 훈련이 끝난 뒤에도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시즌 개막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팬들의 혹독한 평가에 대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진한 시즌이 있다면 좋은 활약을 하는 시즌도 있다. 올해 정말 열심히 뛸 것이다. 부산팬들이 열광하는 경기를 하겠다”고 했다. 팬들의 평가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자극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거기에 발목을 붙잡혀 힘들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마음고생은 이미 젊었을 때 다 해봤다”는 말도 했다.

올 시즌 안정환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말수가 적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가 털어놓은 세 가지 얘기 때문이다. “이곳 부산에서 선수 생활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심리적인 배수의 진을 친 것,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장점들을 다시 채우고 있다”며 자신의 무기들을 다시 수집해가고 있는 것, “마음이 편하다. 감독님이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기 때문”이라며 황선홍 감독을 믿고 있는 것.

골키퍼의 템포까지 뺏는 그의 슈팅 박자, 골 지역에서 상대를 제치는 몸놀림, 강한 중거리슛은 그의 장점인데, 지금 황선홍 감독과 함께 그것들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맥없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팬들

올해가 안정환에겐 프로 데뷔 10돌이다. 그는 이 의미 깊은 해에 돌고 돌아 친정팀 부산에 복귀했다. 이탈리아-일본-프랑스-독일 등 누구는 한 곳도 가지 못하는 해외 리그를 여럿 거쳐 10년 전 출발선에 다시 선 것이다. 부산은 그가 1998년 입단한 첫 팀이고, 13골(1998년)·21골(1999년)·10골(2000년) 등 매해 10골 이상을 넣었던 팀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이전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고 반지 키스를 해 ‘반지의 제왕’ 별명을 처음 얻은 곳도 부산이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팬들을 몰고 다녔던 부산 시절 등번호 8번도 다시 그의 등에 새겨졌다.

그를 향한 뼈아픈 비난은 그에 대한 애정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실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를 행복하게, 뭉클하게 만들었던 어떤 사람을 내내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그렇게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이제 끝났다고 얘기할 때 “무슨 소리냐”며 보란 듯이 일어서주기를 바라는. 팬들은 지금 안정환에게 그걸 해줄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