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겹던 노랫소리가 뚝 끊겼다. 응원봉도 깃발도 잠시 내려놓았다. 2024년 12월14일 오후 5시2분,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200만 명(주최 쪽 추산) 시민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내란죄 피의자 대통령 대통령 윤석열의 두 번째 표결 결과도 혹여나 12월7일처럼 재적의원 미달로 투표불성립되거나 부결될까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생방송으로 연결된 우원식 국회의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300표 중 찬성 204표…”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와!”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늘로 수백개의 주황색 풍선이 날아올랐다. 국회 앞을 가로지르는 국회대로에서 서강대교 앞까지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앉았던 시민들은 벌떡 일어나 “우리가 이겼다”, “모두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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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이겼다” 윤석열 탄핵안 가결의 순간 (여의도 집회 현장)https://tv.naver.com/v/66359004
어떤 이는 말없이 깃발을 흔들며 눈물 훔치고 어떤 이는 주변인과 부둥켜 안았다. 사회자가 단상으로 뛰어올라 “이겼습니다, 탄핵 가결 축하파티를 시작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시민들은 새로운 집회 대표 노래가 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고 응원봉을 흔들며 춤을 췄다. 이 떼창은 탄핵으로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의 직무를 정지시키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을 자축하는 노래가 됐다.
“조마조마했거든요, 혹시라도 안 될까봐. 그래도 희망 품고 나왔는데 (가결되어) 너무 기뻤어요.”
가족을 데리고 집회에 온 유진(45)씨가 말했다. “대통령이 그간 해왔던 많은 만행을 버티고 있었는데, 계엄은 정말 너무나 분노스러운 일이었거든요. (그동안엔) 잠을 못 잤는데 이제 편히 잘 수 있겠습니다.”
최용환씨도 현장에서 중계화면을 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국민이 승리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여기까지 오기까지 모두들 너무 고생해서요. 좋은 결과가 있어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한겨레21 tv 영상 바로가기 주소 : 탄핵 가결과 동시에 '다시 만난 세계' (여의도 집회 현장)https://tv.naver.com/v/66361045
이날 집회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기 위한 시민 200만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국회 앞을 가로지르는 국회대로, 국회에서 여의도공원으로 이어지는 의사당대로는 물론이거니와 여의도공원로까지 꽉 들어차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손글씨로 팻말을 만들어 온 남우준(25)씨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되게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기뻤고요.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퇴진 이후 시위는 처음인데 어쩐지 지금은 그때와 되게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정성들여 제 진심을 담아서 국민 여러분을 대변해서 말씀 드리고 싶어서 손글씨로 적어서 (팻말을) 써 왔습니다.”
우준씨는 최근 경남 창원에서 한 남학생이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한 발언을 한 것이 무엇보다 가슴 아팠다고 했다. “제가 창원 출신인데, 거기가 아무리 보수진영이라고 해도 누군가 지켰기에 있을 수 있었던 땅이거든요.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고요. 요즘 김광석의 노래 ‘광야에서’를 들으면서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 팻말을 준비했습니다.” 우준씨가 준비한 손팻말엔 ‘당신이 밟고 자란 땅은 부마, 민주항쟁으로 지킨 땅’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전주희(48)씨는 자녀들과 함께 집회를 찾았다. 그는 “아이들이 추워해서 미안했지만 나중에 컸을 때 오늘을 회상하면서 이 역사적인 장소에 아이들이 있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씨는 다만 국민의힘 의원들의 탄핵 찬성표가 12표에 불과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전씨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많이 참여하진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가결 후에도 서로 핫팩과 커피, 어묵을 나누며 ‘축제’를 이어갔다. 아이돌그룹 에스에프나인(SF9)의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김소연(40)씨도 “여의도에 나왔는데 다들 환희에 차서 소리 질렀다”면서도 “생각보다 가결표가 압도적이지 않아 충격이었다. 오늘 탄핵 가결 안 됐으면 국힘당사는 정말 큰일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번 탄핵안 표결때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현장에 왔는데 (가결) 안 됐으면 그대로 국민의힘 당사로 몰려갔을 거예요. 여의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모였다는 게 뭉클했습니다. 이제 헌법재판소만 남았죠. 2025년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김소연씨의 말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국회 표결은 내란범 윤석열의 대통령직 수행을 하루도 용납할 수 없다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한 당연한 결과”라며 “헌재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심리를 마무리하고 윤석열을 파면하라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성명에서 “탄핵안 가결은 매일 국회 앞에 모여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를 외친 수십만 시민 덕분”이라며 “내란 수괴 윤석열을 바로 체포하고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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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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