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번 지면에 김소영 작가가 ‘어떤 어른’ 출간을 기념해 진행한 북토크에 다녀와 느낀 것을 쓰려고 했다. “어떤 어른이 돼야 할까?”를 질문하는 이 책은 비양육자 시민인 내가 어린이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일깨우며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린이 청중과 함께한 다정한 북토크에서 큰 감동을 받았기에 기쁘게 그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곧장 국회로 달려간 시민과 국회의원 덕분에 아침이 오기 전 비상계엄이 해제됐고, 그 후로 경악스러운 내란 음모가 실시간으로 파헤쳐지고 있다. 뉴스를 보다 지치면 해야 할 일에 잠깐씩 집중할 수 있었다. 쓰던 글, 연말 모임들, 중요하거나 사사로운 고민들이 일단 멈춰 섰다. 다시 광장에서의 겨울이 시작됐다.
대통령 탄핵안 첫 표결 전날인 12월6일, 2024 한국기본소득포럼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 세션의 발표자로 참석했다. 기후위기 시대의 사회안전망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논의하려 했지만, 솔직히 말해 집중하기 힘들었다.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승준 이사장은 탈성장과 기본소득에 대해 얘기하다가 다급히 덧붙였다. “물론 기본소득은 민주주의 질서가 작동하는 상태에서 주장하는 거지, 군부가 지휘 통제하는 시스템하에서 주장하는 건 이상하다.” 그 말 덕에 집중이 어려웠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은행이 비상계엄 후폭풍을 잠재우려고 시장에 하루 10조원가량씩 14일간 공급하기로 한 자금의 규모(총 151조3400억원)를 실감해보려 애썼다. 당장 전 국민에게 1인당 약 300만원씩 지급할 수 있는 액수였다. 불평등과 빈곤 문제의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기본소득은 늘 재원 문제로 실현 가능성을 비판받아왔는데, 잘못된 정치적 판단 결과 치르게 된 대가에 분노가 일었다.
금융당국이 직접적으로 투입한 최소한의 자금이 이렇다는 것이고, 이 일이 초래한 총체적 위기는 숫자로 셈해지기도 어렵다. 계엄을 시도한 이들에게 형법상의 내란죄는 물론이고, 반헌법적 계엄 시도로 인해 소진해버린 사회적 가치와 변화의 기회까지도 모두 죄로써 묻고 싶다. 2024년 현재의 계엄을 상상하게 하고, 시민과 대치하는 군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 정신적 피해도 따지고 싶다.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귀한 노력과 고민, 현장의 구호를 ‘대통령 탄핵’ 뒤로 감춰지게 한 잘못 또한 묻고 싶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광장에서 자신의 의제를 발화하는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시민, 장애인 활동가와 이주노동자, 해고노동자와 하청노동자,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들께는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
이 글이 발행되기까지는 일주일의 시차가 있다. 그사이 탄핵안 의결이 다시 시도될 테고 정세도 변화하겠지만 어떤 새로운 뉴스가 나와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며칠간 우리를 돌본 존재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국회 안팎에서 군인들의 총구와 버스를 막아선 시민들, 계엄령이 철회된 아침에 밤새워 만든 수업 자료를 공유한 전국역사교사모임,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담아 디자인한 손팻말을 나눠준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 “성별·성적지향·성별정체성·장애·연령·국적 등과 관계없이 모두가 동등한 참여자”임을 말하는 ‘평등한 집회를 위한 약속’으로 시작한 집회, 국회 근처의 카페와 식당에 선결제를 해둔 사람들, 다회용기에 먹거리를 담아준 5·18민주광장의 오월어머니회, 스웨덴 한림원에서 사랑이란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라고 말해준 한강 작가, 그 금실이 일렁이듯 아름다웠던 응원봉의 무지개 물결을 만든 여성들. 내게 시민들의 연대와 민주주의 그 자체로 다가온 장면들이다.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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