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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위대한 전환 중

등록 2007-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제학술회의 ‘중국의 개혁·개방: 그 안과 밖’ 지상중계

▣ 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개혁·개방 30년여, 중국이 또 한 차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과연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이 가져온 부패와 빈부 격차 등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하고, ‘화평’의 새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3월17~18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중국의 개혁·개방: 그 안과 밖’을 주제로 연 국제학술회의는 ‘조화사회’를 내걸고 후진타오 체제가 만들어가는 21세기 새로운 중국의 미래에 대한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른바 ‘신좌파’의 대표주자 격인 추이즈위안 교수(미국 코넬대)를 비롯해 간양(홍콩대)·왕사오광(홍콩 중문대)·원톄쥔(중국 인민대) 등 내로라하는 학자들은 물론 린옌즈 지린성위원회 부서기 등 공산당 핵심간부까지 참석한 이번 학술회의에선 예상 밖으로 중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주류를 이뤘다. 학술회의에 참석한 간양·린옌즈·왕사오광·추이즈위안 등 4명의 발표문을 통해 중국의 미래에 대한 당대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과 전망을 살펴본다.

성공 비결은 ‘이전 30년’에 있다

#1. 중국의 길, 30년과 60년: 간양 홍콩대 교수

지난 60년여 중화인민공화국 역사를 총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 이전 30년과 이후 30년을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개혁·개방의 성공 비결을 ‘이전 30년’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은행 총재는 “지구촌 빈곤 해결 문제에 있어 67%의 성공은 중국에 달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중국 노동자·농민의 생활이 어렵지만, 수많은 사람의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도 분명 대단한 일이다.

물론 사회적 평등을 중시해야 하고, 일방적으로 효율만 추구해선 안 된다. 국내총생산(GDP)의 양적 성장만 좇아서도 안 된다. 최근 들어 중국 공산당의 개혁 노선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후진타오가 정권을 잡은 이후 ‘조화사회’ 건설을 논의하고 있다. 개혁 과정에서 더욱 사회적 평등을 중시해야 하고, 국민들이 개혁의 성과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는 게다. 이런 새로운 개혁에 대해 많은 이익집단들이 서로 다른 생각과 견해를 가지고 있다.

개혁·개방이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유가 사회주의 공화국을 지향할 수 있다. 중국 문명에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은 유가는 다른 제자백가를 포괄한다. 노동자·농민을 포함한 모든 계층을 모아 유가 사회주의 국가를 형성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마오쩌둥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 전통 중국과 현대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마오 시대에서 덩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중국은 계급투쟁 사회에서 경제건설 사회로 옮겨갔다. 동유럽에서도 중국과 같은 노선을 걸었다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게다. 서구 사회는 중국이 개혁에 나설 수 있었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자면 옛 소련보다 중국에서 개혁이 더욱 어려워야 한다. 옛 소련과 동구권의 산업화 정도나 인구, 교육 수준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이 뒤처져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그들이 더욱 개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혁은 중국에서 성공했다. 이유가 뭘까? 바로 마오 시대에서 점진적으로 덩 시대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점진적인 이행이 이뤄졌기 때문에 개혁정책의 성공이 가능했다.

마오 시대엔 창조적 파괴, 파괴적 창조가 이뤄졌다. 이미 1958년 중국 중앙정부는 국영기업 공장 관리권의 88%를 지방정부로 넘겼다. 각 현마다 어느 정도 공업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마오는 이를 두고 “참새가 아무리 작더라도, 모든 장기를 다 갖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런 분권화를 통해 덩 시대의 개혁·개방이 가능했다. 옛 소련의 국영기업 분권화는 급격한 정치개혁을 동반했지만, 중국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프리카-유럽, 그 터널을 통과하는 역사적 순간

#2. 중국 개혁·개방의 미래: 린옌즈 지린성위원회 부서기

중국 경제는 향후 30~50년 동안 고도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연평균 GDP 성장률 8~10%를 유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중국 언론에선 최근 ‘태평성세’란 말을 많이 쓰는데, 별로 맞지 않는 말인 듯싶다. 유럽의 학자와 정부 쪽 인사들이 중국을 방문한 뒤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중국엔 유럽과 아프리카가 혼재돼 있다고 말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등지에선 유럽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만, 베이징에서 100km만 벗어나도 아프리카와 비슷하다는 얘기였다.

과거 중국의 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따른 것이었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들어설 때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도 그런 경험 때문이다. 계획경제 체제는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30년과 1979년 개혁·개방 이후 30년을 횡적으로 비교해선 곤란하다. 마오 주석 당시의 성과가 오늘날 경제발전의 근간이 됐음은 물론이다.

GDP 규모로만 따져 중국은 과거 수십위권 밖에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세계 4위로 뛰어올랐다. 앞으로 2~3년 뒤엔 독일을 앞서 3위로 올라설 것이다. 20년 전에는 중국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아 미국의 슈퍼마켓에 진열조차 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중국은 지금 역사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그 터널의 한쪽 끝은 여전히 원시적인 모습이고, 다른 한 끝은 선진사회의 모습이다. 지금으로선 이 두 가지 모습이 중국에 혼재돼 있다.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면, 30년이 지나면 지금보다 약 30배, 50년이 지나면 약 100배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게다. 30년간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룬다면, 중국의 1인당 GDP는 세계 평균 수준에 이를 것이다. 고도성장은 사회적 문제를 대두시킬 것이다. 시장경제는 사회 분할도 가속화할 것이다. 경쟁을 통해 사회적 분화가 다양하게 일어날 것이다. 사회 양극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탄탄한 재정수입이 사회정책으로

#3. 경제정책에서 사회정책으로의 역사적 전화: 왕사오광 홍콩 중문대 교수

작금의 중국 상황을 두고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다만 이 시대가 더 좋은 시대로 이어질지, 더 나쁜 시대로 이어질지가 더욱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5년 전만 해도 비관적이었지만, 2~3년 전부터 상황이 호전됐다. 이런 문제는 원래 동태적이다. 경제정책에서 사회정책으로 넘어가는 ‘위대한 전환’이 중요하다.

1978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중국은 경제정책만 있었지, 사회정책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개혁을 이끈 사상은 ‘효율 우선, 공평 고려’였다. ‘고려’는 사실상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효율을 우선한 결과는 다양한 불평등 현상으로 이어졌다. 농촌 내부의 불평등, 전 사회적 불평등 등이 90년대 이후 심각해졌다.

이런 경향은 2002년 이후 각종 사회정책이 나오면서 바뀌게 된다. 지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정부 예산보고서를 보면, 2001년까지는 예산 투여 우선순위 1~3항까지가 모두 경제건설과 인프라 구축에 모아졌다. 하지만 2002년 이후 사회정책 부문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지난 몇 년간 ‘삼농’(농업·농촌·농민) 문제, 지역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작한 서부대개발 사업, 도시민 최저생계비 보장 정책 등에 대한 예산 지출이 늘고 있다. 이런 경향은 2006년과 2007년 들어 더욱 확대됐다. 중앙정부 재정 지출의 지방 이전도 크게 늘면서 2004년 처음으로 지역 간 격차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보건·의료 관련 비용도 80~90년대 계속 줄어들던 정부 지출이 최근 다시 늘고 있다. 교육비용은 정부 예산 내 교육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년대 말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그 결과는 1인당 교육·의료비용 도농 간 격차의 감소로 이어졌다. 도시 내부나 농촌 내부에서도 격차를 지속적으로 줄여야 한다. 이런 게 가능해진 것은 중앙정부가 (경제성장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재정수입을 충분히 확보한 덕이다. 현재 중국 정부의 재정수입은 GDP 대비 25%까지 늘었다. 1994년엔 15%에 불과했다. 탄탄한 재정수입이 사회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다.

정부의 의지도 바뀌었고, 사회주의의 유산으로 국민들 사이에서도 평등사회 구현을 바라는 의지가 크다. 공평을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층 인민을 중시해야 한다.

민주적 창의성을 발휘하라

#4.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상상력: 추이즈위안 미 코넬대 교수

중국에는 굉장히 독특한 어휘들이 있다. 예를 들어 ‘노사관계’는 ‘노동관계’로, ‘단체협상’은 ‘집체협상’으로 표현한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말도 마찬가지다. 올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도 여러 논쟁이 있었지만, 그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사회주의를 강조할 것인가, 시장경제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인가. 새로운 사회주의를 위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인대에서 ‘물권법’이 통과됐다. 사유화와 공유화 사이 혼합경제 체제에서 우리가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공유자본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공유자산이 더욱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체제인 홍콩은 소득세와 자본세가 대단히 낮다. 홍콩은 또한 자유롭고 복지 수준도 높다. 병원비도 무료다. 세금은 낮으면서도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토지를 중심으로 한 막대한 공유자산 덕분이다.

국가 공유자산이 없으면, 복지 재정 확보를 위해 대량 국채를 발행하고 세수도 높여야 한다. 국채 발행이 금리 통제의 수단이란 점을 감안할 때, 과도한 국채 발행은 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 투자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반대로 공유자산이 많으면 국채 발행을 줄이는 한편, 세금도 줄일 수 있다. 이번 전인대에서 감세 가능성이 언급된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공유토지의 수익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종의 ‘사회배당제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는 러시아에서 광대한 땅을 사들인 뒤, 주 헌법에 따라 토지를 주민에 귀속시켰다. 이를 통해 얻는 수익으로 일종의 ‘영구 신탁기금’을 만들었다. ‘상상력’을 발휘한 예가 될 수 있다. 중국에서도 국영기업기금이나 토지기금 등을 공유자산 개념과 결합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혼합경제 아래서 공유경제는 더욱 중요시해야 한다. 공공성 있는 자산에 대해 개인이 관심이 없다고 해서 비민주적으로 운영해선 안 된다. 민주적 창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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