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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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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위험한 마케팅이 있는가

등록 2007-08-24 00:00 수정 2020-05-03 04:25

손 대면 톡 하고 터지는 민족주의, 심형래를 망치는 길

영화 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이제 지겨울 때가 됐다. 그리고 더 지겨워지기 전에 논란을 차분히 곱씹어볼 때가 됐다. 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 잠복해 있던 여러 문제들을 일거에 ‘환생’시켰기 때문이다. ‘ 현상’은 여러 겹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돌아봐야 할 두 가지 논점에 대한 글을 싣는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애국주의와 대중주의다. 반대하건 찬성하건 입가의 거품을 닦고 차분해지자. 이제 그럴 때가 됐다. 편집자

▣ 강성률 영화평론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이렇게까지 말이 많은 것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심형래 감독의 를 둘러싸고 말들이 참으로 많다. 각 방송사에서는 메인 뉴스에서 이 영화의 놀라운 흥행에 대해 수시로 보고하듯이 방송하고 있고, 한 방송사에서는 대표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로 100분간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방송의 보도는 인터넷에 비하면, 말 그대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인터넷에서 는 전쟁(the war)이다. 서포터스들은 평론가와 충무로를 상대로 더블 전쟁(D(ouble) war)을 치르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들의 놀라운 활약상을 볼 수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애국심 마케팅

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비판한 평론가들을 비판한다. 자신들이 볼 때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를 왜 무지막지하게 비판하냐는 것이다. 그들은 평론가와 영화인을 싸잡아서 ‘충무로’로 통칭하며 충무로가 이제까지 심형래 감독을 배척한, 아주 좋지 않은 집단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그들은 불합리한 구조의 충무로에 대항해 대안을 내세운 심형래를 대단한 감독으로 치켜세운다. 특히 한국 영화의 위기가 불거진 지금 심형래는 한국 영화의 ‘구세주’가 된다.

불행하게도 는 영화 자체로서 이야기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영화로서는 참으로 불행한 경우지만, 마케팅의 차원에서 보면 이것은 대단히 뛰어난 마케팅이다. 영화 자체의 흠을 거론하지 않고 영화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무조건적으로 영화를 봐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잘된 마케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여론의 촉수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에는 온통 를 ‘둘러싼’ 이야기가 오가고 있고, 이것이 결국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 탁월한 마케팅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이 영화를 둘러싼 환경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충무로에서 철저하게 배척된 영화제작자 심형래가 고독하게 걸어온 승리의 길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다 아는, 가장 잘나가던 개그맨에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로 변신해 충무로의 푸대접을 이겨내고 결국에는 성공한 감독이 되었다는 이야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한국에서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디지털 기술에 참으로 끈기 있게 도전해서 결국에는 해냈다는 디지털 전쟁(D(igital) war)의 승리가 들어 있다. 그리고 영화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적어도 1500개, 많으면 2천 개 이상의 스크린을 통해 개봉한다는 ‘용들의 전쟁’(D(ragon) war) 이야기가 있다. 외국 영화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대규모로 개봉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기적인 것이다.

의 마케팅은 영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영화를 둘러싼 이런 이야기에 집중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강조한 마케팅은 ‘애국심 마케팅’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일상어가 될 정도로 이 영화의 마케팅은 성공적(?)이다. 심지어 애국심 마케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이 글 역시, 역설적이게도 의 흥행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마케팅의 탁월함을 알 수 있다. 이제 를 언급하는 것은 의 마케팅을 도와주는 것에서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

를 옹호하는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모든 영화가 홍보하고자 하는 영화에 맞는 마케팅을 하듯이 도 영화에 맞는 애국심 마케팅을 했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일견은 맞는 말이다. 모든 영화는 마케팅을 한다. 게다가 애국심 마케팅이 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애국심 마케팅을 구사하는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당장 보더라도 심형래의 전작 는 한국 영화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출 실적을 근거로 애국심 마케팅을 벌였지만 처참한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는 성공을 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황우석과 금 모으기

애국심 마케팅이 등장한 것이 가 처음은 아니었다. 영화를 넘어 우리에게 애국심 마케팅이 일상화됐다고 할 수 있었던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였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제품에서 애국심 마케팅을 벌였다. 외국 브랜드도 한국에서 만들기 때문에 한국에 폐를 끼치지 않고 이익을 준다는 것이 당시 마케팅의 전략이었다. 혹시 ‘콜라독립 815’를 기억하는가? 철저하게 애국심에 기대어 마케팅한 제품이다. 그런데 이 마케팅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지금 슈퍼에 가면 콜라독립 815를 찾으려고 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결국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은 제품의 질이다. 애국심 마케팅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영화에서도 그런 것은 많았다. 먼저 기억나는 것은 칸영화제를 비롯한 해외의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을 두고 벌이는 마케팅이다. 처럼 국내에서 흥행을 마친 뒤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경우는 다르지만, 국내에 개봉하기 전에 수상한 은 애국심 마케팅에 기댄 영화였다.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했기 때문에 우리가 밀어줘야 한다는, 철저하게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이었다. 그런데 는 과 조금 다르다. 이 해외에서 인정받은 영화를 국내에 상영한 경우라면, 는 그렇지 않다. 미국 개봉 일정만으로 국내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해외에서 아직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역으로 이 상황을 이용해서 마케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애국심 마케팅이 개입된다. 미국에서 의 흥행은 한국 영화, 더 나아가 한국의 승리이기 때문에, 를 한국에서 많이 봐줘서 미국 시장에서 흥행하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버린다. 갑자기 한국과 미국의 대결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대표선수인 심형래를 응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바뀌어버린다.

의 마케팅이 위험한 것은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애국심 마케팅을 넘어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민족주의의 아주 위험한 함정인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에는 한국 소재인 이무기가 등장하고, 500년 전의 조선이 영화 속의 짧은 배경이 되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이 엔딩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이뿐인가. 이 영화는 순 우리 기술로 완성되었다. 여기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심형래의 발언이 이어졌다. TV 쇼 프로그램에 나온 그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두 번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영화 속 인물이 이무기 설화를 설명하면서 “This is Korean legend”, 즉 이것은 한국의 전설이라고 말하는 부분과, 영화 마지막의 이 울려퍼지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덧붙이기를 서구의 클래식이 훌륭한 음악이라면, 우리의 도 훌륭한 음악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모든 스태프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을 삽입했다고 했다. 이런 영화가 미국에서 대규모로 개봉되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민족주의가 등장한다. 이것은 마치 IMF 시절의 금모으기 광풍을 보는 것 같다.

나는 를 둘러싼 일련의 이런 움직임이 한국의 민족주의가 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황우석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흥미롭게도 거의 유사하다. 심형래가 순 우리의 기술로 만든 영화, 그것도 한국의 설화를 소재로 한 영화로 세계 최고 시장인 미국에서 15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것과, 황우석이 순 우리 기술로 만든 복제 기술로 의료 기술이 최고로 발단된 미국에서 인정받은 것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황우석이 “맞춤형 줄기세포는 대한민국의 기술”이라고 말한 것과, “미국의 심장부에서 생명공학의 고지 위에 태극기를 꽂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한 것을 심형래에게 적용하면 너무도 잘 들어맞는다. 게다가 줄기세포가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주장과,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엄청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동일하다. 두 사람이 구사한 전술은 건드리면 똑 하고 터지는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적절하게 건드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심형래는 참으로 영리한 사람이다. 에서 못다 이룬 꿈을 에서는 결국 이룩한 것이다.

약소국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민족주의를 대하는 태도가 보수건 진보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독도 문제를 대하면서 진보와 보수는 별반 다르지 않게 반응한다. 그런데 민족주의 자체가 반역일 수는 없지만, 민족주의가 이기적 국수주의, 획일적 전체주의로 흐를 때에는 어떡해야 하나? 민족주의가 국수주의나 전체주의, 더 나아가 또 다른 제국주의로 나아갈 때 필연적으로 파시즘과 만나게 된다. 그럴 때 국익에 반대되는 것은 그 어떤 의견이라도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 를 둘러싼 인터넷의 상황을 보면 그런 전조를 느낀다. 어떤 논리적인 비판이나 생산적인 토론도 불가능한 가운데 오로지 를 옹호해야만 하는 분위기다. 국익이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익인가? 국익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박정희가 떠오른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결국 국민을 착취하지 않았던가? 체력까지 국력이라면서 인간을 수출 병기로 삼았던 시대가 떠오른다.

심형래의 발전을 기대하며

의 마케팅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다. 한국인이 가장 쉽게 현혹되는 민족주의의 주술로 대중을 마취시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에 대해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비판을 가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만약 비판이 있으면 거의 테러에 가까운 인신공격과 비판, 심지어 협박이 있기 때문에 평론가들이 어떤 비판도 하지 못한다. 아예 평론가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지금의 이 사태에서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일까?

이런 애국심 마케팅은 영화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도, 마치 멀쩡하게 존재하는 영구가 “영구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화 자체를 논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분명 이것은 광풍이다. 이것은 서포터스들이 그토록 아끼는 를 망치는 길이고, 심형래 감독을 망치는 길이다. 이런 자세는 심형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형래의 영화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마케팅이 위험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마케팅이 위험하다는 말인가!

심형래가 걸어온, 고독한 영화의 길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비웃을 때,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단지 개그맨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또는 아동용 영화만 연출했다는 점 때문에 수준이 낮은 감독으로 평가받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충무로에서 평가받지 못한 감독은 숱하다. 심형래는 이런 평가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정작 그가 고민하고 괴로워해야 것은 이 폭풍을 내면화해서 더 좋은 차기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의 흥행을 통해 충무로의 자본으로 차기작을 제작하더라도, 지금 같은 영화로는 평단의 냉대를 결코 피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나는 그의 발전을 진정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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