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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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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인가 우왕좌왕인가

등록 2008-01-25 00:00 수정 2020-05-03 04:25

원칙 없는 정책 결정과 성장 지상주의로?

▣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차기 대통령 당선 확정 뒤에 가진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국민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선택했다”고 선언한 이래 매사에 실용을 강조하고 있다. 1월14일에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 정부”라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고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면 어디라도 달려가 일을 해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에 염증이 나서 압도적 표차로 이명박 후보를 뽑아준 국민은 이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정부가 이념을 앞세워 갈등을 야기하고 막말로 국민을 지치게 했으며 무능함 때문에 민생을 곤고히 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념적 주장이나 이상론적인 언설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는 당선자의 모습이나 일요일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희망을 걸어봄직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다수 언론도 이명박 당선자가 표방한 실용주의를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학 자율인데 본고사 금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대개 좌나 우나 이념적 편향을 불식하고 중도 쪽으로 이동하자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이 인기가 떨어져 위기를 맞이했을 때 정동영 당시 당의장이 위기타개책으로 실용주의를 들고 나와 논란이 벌어진 일이 있다. 당이 진보개혁적 정체성을 잃고 민심보다는 청와대를 추종한 것이 지지세력 붕괴의 원인이었다는 시각에서 보면 한심한 처방이었다. 하지만 정동영씨는 당의 좌편향으로 중도파의 지지가 사라지는 데서 위기의 원인을 찾고 당을 우향우시켜서 중도 쪽으로 끌고 가려 했던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실용주의에도 한나라당의 우편향을 탈색시킴으로써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대하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보수 정체성을 내세우며 이명박 후보의 정체성을 공격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구도에서 중원을 점령하려는 노력과 본래의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실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무엇을 위한 실용인지 모호해지고 정치가 지향해야 할 원칙과 가치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도 바로 이러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다면서 원칙까지 무시하고, 실용주의라는 미명하에 자의적인 정책 결정을 마구 함으로써 편의주의적 관치가 횡행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내세우는 정책의 큰 방향이나 원칙에 위배되는 얘기들이나 행태들이 벌써부터 툭툭 튀어나오고 있다. 비근한 예로 대학입시 자율화 정책을 들 수 있다. 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긴다 했고, 이 원칙은 정부조직개편안에도 반영됐다. 그런데 한편으로 당선자는 “앞으로는 교과서만 공부해도 대학을 갈 수 있게 된다”거나 “대입 본고사는 절대 없을 것이다”는 등 대학 자율과는 배치되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취재 선진화 방안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주창해놓고 인수위에서 언론사 경영 현황과 간부들의 성향을 파악해서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마찬가지다.

편의주의적 관치의 위험은 경제정책 분야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말로는 민간 주도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는데 조속히 성과를 내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관치경제적인 행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것 같다. 통신 요금을 20% 인하하라는 인수위의 요구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사기업의 경영 행위에 간섭하는 것이라는 반발을 샀던 것이 좋은 예다. 설익은 신용불량자 구제안도 많은 문제가 제기되면서 꼬리를 내리고 있다. 당선자가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투자를 독려하고, 총수들은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화답하는 것도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모습은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인수위의 지시를 받아 주요 그룹들을 상대로 투자와 고용 계획을 상세히 파악했다는 사실은 관치경제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에서 금융정책과 감독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는 막강한 금융위원회가 탄생한다면 관치금융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금융계의 우려도 있다.

무리한 성장, 혹독한 대가 치를 것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과연 무엇을 위한 실용주의일까? 자유일까, 평등일까? 아니면 박애, 평화, 행복? 앞서 지적한 대로 정책 수단에 대한 실용적 접근을 넘어서서 실용주의를 이념으로 주창하는 경우에는 대개 뚜렷한 이상과 가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가치가 있다면 국익과 경제성장이다. 국익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경제다. 이명박 후보의 선거 슬로건이 ‘국민성공시대’였다. 여기서 성공도 돈 버는 것을 말한다. 당선 뒤에도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는 듯한 모습이다.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는 건 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바다. 문제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성장지상주의’의 함정이다.

우선 연평균 7% 성장이라는 매우 무리한 성장목표를 제시한 것이 맘에 걸린다. 올해는 여건이 안 좋아 6%를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지나치다.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무리수가 동원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성장을 위해 안정이나 형평과 같은 가치들이 마구 희생된다면 나중에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기업의 투자 의욕을 북돋운답시고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금산분리 원칙까지 완화하겠다는데, 그러다가 경제력 집중이나 시스템 리스크 확대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한반도 대운하 등 토목사업을 일으켜 경기를 부양하려는 생각도 자칫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두고두고 재정을 압박할 ‘돈 먹는 하마’를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성장지상주의는 비정규직 문제나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문제들도 성장률을 높이는 것만이 해법이라는 것이다. 성장률이 쉽게 높아지지도 않겠거니와 어떻게 구조적인 문제를 성장으로 해결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최근 와 현대경제연구원이 한국인의 경제적 행복지수(Economic Happiness Index)를 조사했더니 100점 만점에 39.9점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노동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경제성장을 신으로 떠받들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래서 꿈만 같아 보이던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열렸는데,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완전히 낙제점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안정(44.6점), 경제적 우위(45.7점) 등 여러 항목 중에서 경제적 평등(25.9점)과 경제적 불안(24.5점)이 압도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장지상주의는 양극화 확대, 고용불안 심화, 복지 축소를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럴 경우 설사 경제성장이 조금 더 된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은 더욱 불행해질 것이다.

추진력보다는 시스템 확립을

며칠 전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과감하고 대폭인 부처 축소로 나온 것을 두고 ‘실용 정신’을 발휘한 것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당선자에 대한 립서비스인가, 아니면 실용 정신 중에는 밀어붙이기 정신도 있는 건가. 이명박 당선자의 리더십을 흔히 불도저에 비유한다. 저돌적인 추진력을 강조한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70년대 건설신화의 산물이다. 경제개발 초기에 국가 주도의 발전 전략 아래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중요했을지 몰라도 이제 우리는 선진경제의 문턱에 와 있다. 더구나 21세기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다. 합리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의 확립과 원칙 있는 국정 운영,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적인 절차에 입각한 사회적 합의의 형성이 중요하다. 혹시 이명박 정부가 원칙과 과정은 그다지 신경쓸 것 없고 목표와 성과만을 중시하는 것을 실용으로 이해한다면 정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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