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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 논쟁] ‘사악한 재벌’이라 타협이 필요하다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저투자의 주범인 금융화, 대타협으로 막자

▣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드디어 ‘괴물’ 삼성의 실체가 드러났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의 비자금 로비 및 변칙 상속의 실태는 극소수 특권 집단이 민주주의 제도를 어느 정도까지 훼손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제국 해체를 위한 특검제”나 “삼성가의 족벌경영 체제… 종식” 등의 주장(철학앙가주망네트워크)이 나오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그런데 ‘저런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이하 타협)을 주장해왔다니! 일단 면구하다.

기업은 사고파는 상품?

그러나 필자는 사회적 대타협론은 여전히 학문적 담론으로 그리고 정치적 기획으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첫 번째, 사회적 대타협론의 대상은 애당초 ‘착한 재벌’이 아니라 현실 속의 ‘저 사악한 재벌’이었다. 김수행 교수는 와의 인터뷰에서 “(재벌은) 외국 자본과 경쟁해서 한국 경제와 민중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며 장하준 교수를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은 애당초 재벌을 그런 ‘선한’ 존재로 가정한 적이 없다. 재벌 가문 그 자체는 ‘자신의 사회경제적 부와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하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다만 이런 ‘이기적 동기’가 때와 사회적 역관계에 따라 선(조선, 자동차, 반도체 육성)이나 악(정경유착, 비자금 로비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재벌이 선한 존재라면 타협을 주장할 필요도 없었다. 알아서 국민경제에 이로운 경영을 할 터이니까.

두 번째, 인천대 이찬근 교수가 사회적 대타협론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2002~2003년 즈음은, 경영권에 대한 재벌 가문의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대타협론자들은 민주적이며 강력한 정부의 집권, 노동운동의 단결, 시민단체의 호응 등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경영권 문제를 매개로 재벌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의미에서 대타협론은 재벌에 대한 온정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면서 공세적인 슬로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이후 LG, SK 등 재벌 가문들은 각종 금융적 기법을 활용해 그룹 체계를 바꾸면서 산하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을 대폭 상승시켰다. ‘사회’와의 대타협이 지체되는 동안 재벌들은 ‘금융화’와 타협해버렸다.

세 번째, 앞으로 더욱 거세게 진행될 ‘금융화’ 경향 때문에라도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슬로건은 유효해야 한다. 그렇다면 금융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전의 한국인에게 금융은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영역, 혹은 실물 부문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10년은 금융 부문이 실물경제를 재조직하는 주인으로 등장한 ‘압축적 금융화’의 시기였다. 즉, 국내외 투자자들이 금융적 수익을 (얼마나) 취할 수 있는지에 따라 자본 이동의 양과 방향이 좌우되는 체제가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를 금융화라고 부를 수 있다.

비현실성, 숙명적 조건인가

금융화 과정의 핵심은 기업(은행)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는 김대중 개혁 당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8%와 부채 비율 200% 규제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필자는 이를 ‘신자유주의의 원시적 축적’으로 명명한 바 있다.) IMF 사태 이전처럼 기업(은행)이 복잡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거나 사실상 국유 상태라면, 금융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 이런 기업의 주식을 사서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기업(은행)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꿔버리면 훨씬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주주들은 경영자를 압박해 주가 상승을 기업 경영의 제1목표로 등극시켰고, 때에 따라서는 경영권을 인수해서 구조조정을 한 뒤 매각하는 짜릿한 장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시장의 규율’엔 시설과 인력에 대한 장기 투자를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등뼈라 할 수 있는 재벌이 과거의 모험적 투자자에서 보수적 투자자로 변하면서 저투자-저성장-고실업 기조가 나타난다. “대기업은 투자를 엄청나게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초토화”됐기 때문에 투자증가율이 낮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설비투자가 정보기술(IT) 산업 부문에 몰리고 5대 주력산업은 저조하며, “전체 연구개발비 중 IT 산업 및 자동차 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이 62.6%”(2005년 기준, 산업은행 자료)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기업 부문 내에서도 투자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IT(와 자동차) 이외의 기존 산업 혁신이나 미래 성장 동력 산업에 대한 국민경제 차원의 투자가 매우 저조하다는 뜻이다.

이런 경향을 최대한 억제하거나 국민경제에 조금이라도 더 이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방법 중 하나로 제기된 것이 바로 ‘재벌과의 타협’이었다. 그 핵심적 내용은 재벌에 안정적 지배구조를 허용해, 기존 산업의 혁신과 미래 성장 동력 산업에 대한 투자를 유인하는 한편, 경영과 관련된 권리·책임 관계 역시 확실히 하는 지배구조를 강제하는 것이었다. 노동 부문에서는 노동조합 설립 등 당연한 시민적 권리와 함께 정규직 고용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를 구상할 수도 있다. 이후 끊임없이 이어질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고 이에 노동자 대표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이를 위한 필요조건이 바로 복지제도이다). 중소기업 부문에 대해서는 원·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과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특허법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그 ‘비현실성’을 따지는 비판들이 있다. (1) 재벌들이 타협을 받아들일 만한 정치적 상황이 부재하고, (2) 고율의 세금이나 경영 투명성을 수용할 리 없으며, (3) 노동자들이 조직돼 있지 않고, (4) ‘비합리적이고 무능한 관료조직’으로 인해 경제 부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재비판하자면, 우선 (1)은 사실이 아니다. 경영권 문제야말로 재벌의 최대 ‘약한 고리’이다. LG와 SK가 어떤 방식으로 총수 가문의 지분율을 높였는지, 또 삼성이 경영권 상속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무리수를 두고 있는지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2) 또한 마찬가지이다. 재벌이 고율의 세금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경영권으로 강제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3)과 (4)는 사회운동이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할 과제를 일종의 ‘숙명적 조건’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태도로는 어떤 정치·경제적 개혁도 제기할 수 없다.

예컨대 에서 김상조 교수는 지식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동력으로 “위로는 개혁의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 “밑으로는 성숙하고 능동적인 주권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조건이 충족돼 있는가. 또한 저자들은 복지재정을 위한 예산의 효율화를 주장하는데, ‘비합리적이고 무능한 관료조직’(저자들의 주장)이라는 조건에서 이런 과제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자신과 타인 간에 비판의 기준을 달리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재벌이 오히려 금융화 주도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재벌과의 대타협’이 가능할 것인지 필자는 정말 의심스럽다. 재벌 가문들은 그동안 각종 금융적 기법을 통해 계열사 지배권을 오히려 강화하고 이제 은행까지 삼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가문이 이후의 금융화를 주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대타협론은 원래 국가의 역할, 기업 지배구조, 노동시장, 복지제도 등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었고, 최근엔 이에 복지국가나 사회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을 접맥시키려는 연구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재벌을 포함한 한국의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에 사회적 대타협론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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