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5호 장석준의 비판에 대한 김종엽의 반론…보수파의 집권 막을 전략을 고민해야
▣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
2007년 여름호에 실린 내 글(‘87년체제의 궤적과 진보논쟁’)에 대해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장석준씨가 비판적 논평을 해주었다. 그의 비판이 논점을 명료하게 해주고 생각을 발전시킬 기회를 주었기에 우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장석준씨도 그랬겠지만 나에게도 지면이 그리 넉넉지 않기 때문에 곧장 그의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 들어가려 한다.
자유주의 분파의 선거전술과는 다르다
내가 이해한 것이 옳다면, 장석준씨의 나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내가 사용한 민주화 세력이라는 말의 모호성, 그리고 그런 모호성이 유발하는 정치적 함의에 대한 비판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언급한 정치적 다수화 전략이 보수파의 집권을 막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비판이다.
첫 번째 비판은 내가 솜씨 없게 글을 쓴 때문에 유발된 것이지만 장석준씨의 오독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화 세력의 핵심이 민중 부문이며, 거기에 몇몇 집단이 “더해진다”고 서술했다. 이때 민중 부문이 당연히 노동자와 농민을 중핵으로 한다고 읽힐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언급한 다양한 소수자 집단에 오히려 포괄되어야 할 것은 여성이나 장애인, 또는 외국인 노동자와 성적 소수자 집단이라고 여겼다. 민주화 세력의 중핵이 노동자와 농민에 있다는 내 생각이 오독되면 민주화 세력이 느슨한 상징연합으로만 비칠 것이고 전체 논지가 왜곡되어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오독이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를 던져주는 기능도 했다고 생각한다. 장석준씨는 민주주의나 평화 같은 혹은 정권 교체 같은 상징적 연대를 이해관계의 연대로 대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상징과 이해관계를 대립적으로 제시한다. 나는 이런 식의 파악이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스럽다. 이해관계 개념은 장점이 많은 만큼 모호함도 많다. 이해관계는 이해당사자에게조차 그렇게 투명하지도 않고 간명하지도 않다. 장기적 이해관계와 단기적 이해관계는 종종 어긋나며, 직접적 이해관계와 간접적 이해관계의 관계도 복잡하다. 또한 이해관계가 해석과 상징화를 경유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진보정치연구소가 간행한 글 가운데 진보 진영의 헤게모니 프로젝트 같은 논의를 발견하게 되는데, 헤게모니 전략은 이해관계와 상징체계 사이에 펼쳐진 공간에 개입하려는 것이다. 이 공간은 생각보다 많이 넓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정치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이해관계의 연대를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관찰자 시점에서 파악된 이해관계들의 일치로 폭 좁게 해석된다면, 연대를 형성하는 정치라는 차원을 놓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책이 정치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없는 정책, 듣기는 좋은데 실현 가능성의 희망을 불어넣지는 않는 정책으로 후퇴할 수 있다.
두 번째 비판은 첫 번째 비판보다 더 심각한 쟁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서도 나는 독자의 자비로운 독해를 요청할 필요가 없을 만큼 내 생각을 명료하게 진술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글의 기본 목표는 87년 6월항쟁 이후 20년간의 한국 사회의 변동을 서술하려는 것이었고, 87년체제에 대한 애도나 환멸감을 넘어서서 그것의 성과와 한계를 짚으려는 것이었다. 이런 의도에서 지금까지의 비판적 지지론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는데, 이런 재평가가 현재 시점에서 정치적 다수화 전략과 착종된 형태로 읽힐 여지를 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정치적 다수화는 개혁적 자유주의 분파의 선거전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과 가치체계에 입각한 것이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진술했으며, 그런 점에서 내가 보수파의 집권을 막기 위한 정치적 다수화를 주장했다는 것은 오해이다.
민노당은 관망이나 하고있진 않은가
다시 한 번 내 주장을 정리하자면, 우선 현재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파의 승리는 민주화의 역전은 아닐지라도 민주주의의 정체와 일부 후퇴를 가져올 것이며, 이 후퇴가 감수해도 좋은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후퇴를 막고 민주화를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다수화를 모색해야 하는데, 이 정치적 다수화는 자유주의 분파의 선거전술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체계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주장에 대해서 이견이 존재한다. 보수파가 승리해도 민주주의의 후퇴가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보수파의 승리가 가져올 여파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들의 통치 능력을 높이기 위한 보수파의 물질적 양보에서부터 진보개혁 진영의 일패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귀결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양극단은 아니어도 보수파의 승리가 적어도 대중의 생활양식과 정치적 전망을 퇴영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보수파의 집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유주의 분파의 몰락으로 이해하고, 대중의 새로운 각성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인식이다.
그래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에 의한 정치적 다수화 전략이 필요하지만, 다수화의 다양한 전략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 있으며, 실패 가능성이 높으면 그런 시도에 대한 냉소주의가 생겨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에서의 패배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아슬아슬한 패배와 형편없는 패배의 차이는 이후의 정치 행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다수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장석준씨가 속한 민주노동당 또한 다수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다수화 전략은 현재의 정치 과정을 보수파와 자유주의 분파 간의 ‘지저분한’ 경쟁으로 파악하고 그 외부에서 더 많은 득표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대중에 의한 판갈이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판갈이된 정당체제로 대중을 초대하는 정치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보수편향적인 정당체제를 흔들어놓는 대담함,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조차 마다하지 않으며 정당체제 내에서 자기 헤게모니를 확장하려는 ‘집권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주의 분파의 몰락(몰락할지도 확실치 않지만)을 즐겁게 관망하거나 반한나라당 연합이 유발할 비판적 지지론 확산을 차단하는 일에나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해관계가 아닌 가치와 규범
마지막으로 선거전술이 아닌 새로운 정치적 다수화를 위한 가치체계와 내용이 무엇이어야 할지 말할 차례인데, 부끄럽게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보편적 가치체계에 근거한 세력 정렬이 어려운 사회에서 어떤 가치와 규범적 요구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정치적·정책적 슬로건이 정치적 세력연합의 토대가 될 수 있는지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대중이 지닌 ‘마음의 습속’(habits of heart)에 공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대중의 정서와 마음의 행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아직 내 능력을 넘어서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치체계에 대해서 말한 이유만은 이야기할 수 있다. 장석준씨가 지향하는 ‘체제 전환과 신뢰 형성의 이중변주’로 구성되는 이행의 정치를 위해서는 그 이행의 골짜기에서 경험하는 회의와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이해관계 또는 이해관계의 연대라기보다는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확증의 원천인 가치와 규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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