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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와 학자들의 ‘화목사회’

등록 2007-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참석자 기고- 정부의 감싸안기가 성공한 듯 비판적 학자의 태도 달라져

▣ 백승욱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3월17~18일 열린 ‘중국의 개혁·개방: 그 안과 밖’ 국제학술회의는 대륙·대만·미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쪽 전문가들이 한국 쪽 토론자들과 한데 모인 자리였다. 지정 토론자 없이 모든 참석자들이 이틀 내내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참여정부 균형발전 전략’ 성공을 낙관하듯

참석자들의 의견은 서로 조금씩 달랐지만, 전반적인 인상은 후진타오 체제 이후 지식인에 대한 정부의 감싸안기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는 다소 의외였는데,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던 학자들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후진타오 체제 들어 ‘삼농’(농업·농촌·농민)이나 실업, 국유기업 구조조정, 지역 격차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처방들이 체계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과거 심각한 문제들이 다소 해소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처방을 근본적 전환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만큼 많은 문제들이 미해결로 남아 있는데다, 사회·경제 상황에 따라 새롭게 문제들이 터져나올 가능성도 아직 높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정책 수립에 밀접한 관련을 맺는 중국 지식인들의 태도는 중국의 공식 구호인 ‘화목사회’(또는 조화사회)를 잘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마치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의 성공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태도처럼 보인다. 특히 홍콩을 무대로 하고 있는 지식인들에게서 그런 태도가 더 두드러졌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불평등과 정부의 대처능력 감소를 오랫동안 비판해온 왕사오광 교수(홍콩 중문대학)의 경우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사회정책의 성공을 다소 지나치리만큼 높이 평가했다. 중국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 과정’의 불합리성을 비판했던 깐양 교수(홍콩대학)는 사회주의의 유산과 시장의 유산, 그리고 유가적 전통이 잘 조화되는 ‘유교사회주의 공화국’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코포라티즘’(조합주의 국가론)에 대한 전망을 내세우기까지 했다.

대륙 학자의 경우도 그런 시각은 유사하게 나타났다. 10여 년 전 노동권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노동체제의 등장을 비판했던 펑통칭 교수(중국노동관계학원)는 중국식 노사협조주의라고 볼 수 있는 전망을 주장했다. 대중에 대한 일방적 공세만 있던 1990년대에 비해 다소간의 새로운 변화가 보이자, 이것이 지식인들에게는 상당한 정책적 단절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발표자들의 논의에선 자기모순적인 부분이 발견된다. 한편으로 발표자들은 과거 마오쩌둥 시기의 경험이 새로운 시장주의적 사회와 잘 어울려, 새로운 조화로운 사회의 기초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비판적 시야를 견지했던 경력 때문인지, 그 유산이 시장적 변화나 위로부터의 통제와 갈등을 일으키리라는 점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탈집중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거기에 ‘시장’과 ‘향진기업’이라는 상이한 맥락을 한데 섞기도 했다. 또 화목사회의 온정주의를 말하면서도, 그것이 대중적 능동성을 은연중 배제하는 측면에는 눈을 감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추이즈웬 교수처럼 시장사회에서 공유제의 부분적 존재와 또 이와 별도로 제기되는 민주라는 문제를 동시에 지적하면서, 사회주의적 유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공유제의 문제가 소유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처분과 사용이라는 문제로 나아가면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통제하는가의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마오쩌둥 시기 경험이 시장과 잘 어울린다?

결국 ‘자유-평등-공동체’라는 가치들을 어떻게 상이하게 조합하느냐가 또다시 문제가 된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무엇이냐에 대한 해석을 쟁점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중국 사회는 과거의 유산들이 현재의 변화들과 여전히 쉽게 조화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잘 포장된 전망으로 그 현실을 덮어버리기에는 현실이 매우 복잡하고 갈등적이라는 것이, 한국 사회의 경험을 통해서 중국을 보는 중국 연구자들에게 계속 남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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