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권법 전국인민대표대회 통과를 계기로 살펴본 중국의 ‘제3차 개혁논쟁’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때는 21세기 초. 파란만장한 20세기의 치부 과정을 거쳐 유사 이래 고향이 낳은 최대의 거부가 된 리광터우. 어린 시절 여자 화장실이나 훔쳐보는 ‘싹수 노란’ 망나니였던 그는 지금 황금으로 도금된 변기 위에 앉아 2천만달러짜리 우주여행을 상상하고 있다. 우주선에 올라타고 떠돌아다니는 상상을 하자니, 사방에서 느껴질 싸늘한 냉기에 그만 마음이 울컥해진다. 더군다나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지구에는 더 이상 한 점 혈육도 남아 있지 않다. 황금 변기 위에 앉아 볼일을 보는 리광터우도 그제야 문득 고독하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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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의 지팡이와 부자의 자동차가 같은가
때는 20세기 후반. 1995년쯤이다. 개혁·개방 이후 역시 파란만장한 치부 과정을 통해 성공한 기업가가 된 자오지우. 그는 마오쩌둥이 사상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한창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 1950년대 후반 ‘우파분자’로 찍혀 1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다시 자진해서 감옥으로 들어간다. 예전에 미처 다 채우지 못한 형기를 채우기 위해서다. 다소 정신 나간 짓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는 어느 날 형기를 다 마치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깥세상에는 온통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만세” “우리는 사회주의를 원한다. 자본주의를 타도하자!” 등의 구호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다시 시작된 것으로 안 그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앞의 이야기는 지난해 중국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된 위화의 소설 의 한 토막이다. 뒤에 소개한 이야기는 1995년 발표돼 화제를 불러일으킨 장센량의 소설 (无法蘇醒)의 줄거리다. 두 소설은 21세기 초엽의 중국 사회와 20세기 후반의 중국 사회를 각각 풍자했다. 개혁·개방 3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2007년 봄, 중국 사회에는 황금 변기 위에 앉아서 2천만달러짜리 우주여행을 꿈꾸는 리광터우와 같은 졸부들이 지천에 널린 세상이 됐다. 하지만 자오지우를 기절케 한 복고 사상과 사상 논쟁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개혁·개방 뒤 약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중국 지식사회는 80년대와 90년대의 개혁 논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논쟁의 내용이 조금 ‘버전 업’됐을 뿐이다.
지난 2005년, 한 법학교수의 공개서한이 중국을 발칵 뒤집어놨다. 이 서한을 쓴 이는 궁셴톈 베이징대 법학과 교수다. 2005년 8월12일, 그는 인터넷에 ‘우방궈 전인대 위원장과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상무위원들에 드리는 공개서한’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의 글은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모든 사유재산에 대한 평등한 보호를 뼈대로 하는 법안인 ‘물권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법안은 “사회주의 기본원칙에 위배되고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는 “빈부격차가 날로 커가는 상황에서 거지의 지팡이(구걸을 할 때 쓰는 도구)와 소수 부자들의 자동차를 평등하게 보호하겠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낡고 위험한 주택과 부자들의 고급 별장을 똑같이 보호하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며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통박했다.
궁 교수가 위헌이라고 주장한 ‘물권법 초안’은 애초 지난해 3월 열린 제10기 4차 전인대에 상정될 예정이었다. 명색이 공유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유재산 보호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법안을 상정하기 전에 먼저 공개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궁 교수의 공개서한은 지식인 사회와 인터넷 등에서 대대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물권법 초안’ 은 지난해 전인대에 상정되지 못하고, 올해 3월 열린 전인대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물권법 논쟁이 가열되면서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姓資姓社)라는 해묵은 이데올로기 논쟁과, 지나온 개혁·개방 정책을 재고찰해야 한다는 ‘개혁 논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의료도 실패, 주택·교육도 실패…
물권법 논쟁이 있기 전인 지난 2004년,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80년대와 90년대 이후 재점화된 ‘제3차 개혁 논쟁’이 시작됐다. 논쟁의 시발점은 국유기업 재산권 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진 ‘랑구 논쟁’이다. ‘랑구 논쟁’이란 랑셴핑 홍콩 중문대학 교수와 구추쥔 중국 ‘그린쿨’ 회장 간의 논쟁을 일컫는다. 랑 교수는 구 회장이 국유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회계 조작 등의 방법으로 기업을 헐값에 인수한 예를 들어, “현재 중국 국유기업 재산권 개혁은 ‘부자들의 향연’이며, 이로 인해 국가 자산이 심각하게 유실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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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 교수의 주장은 곧바로 시장화 개혁을 지지하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이를 비판하는 (신)좌파 비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 개혁 논쟁을 불러왔다. ‘랑구 논쟁’ 이후 다시 점화된 ‘제3차 개혁 논쟁’은 2005년 7월,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사회연구부가 보고서를 통해 중국 의료개혁이 실패했다는 발표를 하면서 다시 격화했다. 보고서는 의료개혁의 실패 원인을 시장화 개혁 탓이라고 분석해, 신좌파 경제학자들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주택·교육 등 다른 분야의 시장화 개혁정책도 마찬가지로 실패를 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로 인해 개혁 논쟁은 해를 거듭해 가열됐다.
대표적 신좌파 경제학자인 한더치앙 베이징항공대학 교수는 “중앙 지도자들은 개혁·개방 정책이 심화한 90년대 이후 왜 중국 인민들 사이에서 오히려 마오쩌둥 시절에 대한 향수가 붐을 이루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는 개혁정책이 망각하고 있는 사회주의 이상정신과 평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주의’에 더 방점을 둔 개혁을 진행하라는 충고였다.
한편, 이 좌파들의 주장 중 가장 ‘좌’에 가까운 논리는 2005년 6월9일자 에 실린 저우신청 중국 인민대학교 교수의 글이 대표적이다. 저우 교수는 ‘미국이 조정하는 벨벳 혁명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사회주의 대국으로서 미국은 이런 중국을 항상 주시하면서 중국의 서방화를 가속화하고 분화하는 전략을 추진하며, 중국에서도 벨벳 혁명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우 교수는 또 “미국의 21세기판 ‘화평연변’(和平演變·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벨벳 혁명’을 예방하려면 당의 ‘계급적 기초’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파들의 이념공세와 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좌·우파의 대립으로 번져가자 ‘범개혁파’들도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반격’으로 지난해 1월26일 중국의 유명 경제 주간잡지 에 실린 전 논설위원 황푸핑(필명)의 글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개혁은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은 또다시 역사적인 전환점에 서 있으며, 지금 중국 사회에는 개혁을 부정하고 반대하는 새로운 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심지어 다시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라는 논쟁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라며 “어떤 사람은 개혁 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모순을 시장화 개혁 자체의 문제로 돌리면서 개혁을 흔들고 부정하지만, 시장화 과정에서 권력에 빌붙어 치부하고 약자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구체제의 폐단이 빚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장화-사상 좌경화, 어정쩡한 타협책
지식인들과 인터넷에서 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이데올로기전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자 당과 정부 관계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딱히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과 정부는 “그럼에도 개혁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3월 양회(전인대와 정치협상회의) 기간 중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한목소리로 “개혁은 흔들림 없이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두 최고 지도자의 ‘발언’은 개혁 논쟁에 대한 당과 정부의 ‘화답’이었다. 1992년 덩샤오핑이 남순강화를 통해 ‘사회주의-자본주의 논쟁’을 종식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좌파들의 비판을 무조건 배격할 수만도 없는 처지다. 개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비단 좌파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지식인들이나 주류 경제학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또 많은 국민들도 개혁·개방 비판 여론에 동조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현재 어정쩡한 ‘타협책’을 쓰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선 여전히 시장화를 밀고 나가면서, 정치·사상적인 면에선 ‘좌경화’로 가는 분위기다. 언론통제 강화와 마르크스주의 사상 재강조,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산당원 선진성 교육과 최근 후진타오 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팔영팔치’(八榮八恥·8가지 영예로운 일과 8가지 수치스러운 일. 일종의 범국민 도덕계몽운동) 등은 모두 사회주의 이념무장을 목표로 하는 것들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매년 9%대를 넘고 있다. 20년 이상 이렇게 초고속 경제성장을 한 것은 전례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1997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15년 동안 소득격차가 중국만큼 크게 벌어진 나라도 없다. 중국에서 또다시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는 이념 논쟁이 전개되고, 다각적인 개혁 논쟁이 벌어지는 이면에는 이처럼 불평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흐르고 있다. 어쩌면 지금 중국은 개혁의 ‘함정’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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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중국은 미국과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대약진 정책 등을 통해 15년 만에 영국을 따라잡고 미국을 추월하겠다던 마오쩌둥의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토록 열망하던 사회주의 방식이 아닌 덩샤오핑의 자본주의적 경제 방식을 통해 달성됐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개혁 혁명’도 결코 성공한 것은 아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를 전후로 중국에서 벌어진 개혁 논쟁과 이념 논쟁은 개혁의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개혁 논쟁은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꼬리표를 고수하는 한 그 ‘명색’을 둘러싼 논쟁은 아마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나온 (황핑·야오양·한슈민 공저·중앙편역출판사 펴냄)는 지난 20세기와 21세기 서두에 중국에서 쟁점이 된 모든 ‘화두’들을 정치·경제·사회적인 맥락에서 풀어가고 있다. 제목과 부제에서도 풍겨나지만 이 책은 중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연구 분야와 관점을 지닌 3명의 중국 학자가 마치 소규모 그룹 세미나를 하듯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일종의 대담집이다. 경제학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세 학자는 개혁·개방 30여 년의 중국이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해, 20세기 후반 중국 사회를 휩쓸었던 백가쟁명식의 다양한 사상 논쟁과 각종 사회 현안·논쟁을 정리하면서, 21세기 중국 사회주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성찰하고 있다. 공유제나 국유제가 사회주의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기존 구좌파들의 ‘소유제 중심형’ 사회주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게 지은이들의 공통 인식이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방향 역시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여전히 ‘중국적’이고 여전히 ‘시회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게 대략적인 결론이다. 도대체 무엇이 ‘중국적’이고 무엇이 ‘사회주의적’인 걸까?
반면 같은 해 나온 (위커핑 지음·사회과학문헌출판사 펴냄)은 훨씬 더 ‘화끈’하다. 가 ‘중국적’ ‘사회주의적’인 수사 속에 슬그머니 중국의 미래를 회피하고 있지만, 지은이는 분명한 언어로 중국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중앙편역국에 딸린 당대 마르크스연구소 소장인 지은이는 지난 2005년 홍콩 기자와의 대담에서 ‘민주는 좋은 것’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그동안 중국에선 ‘민주는 서방 미신’이란 식의 목소리는 아무런 여과 없이 나올 수 있었지만, 위커핑 소장 식의 대담한 ‘민주예찬론’은 감히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민주’라는 단어는 중국에서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위 소장의 책이 나오기 전 중국에선 개혁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면서 셰타오 전 인민대 부총장 같은 사람은 “21세기에는 사회주의를 버리고 민주사회주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다소 ‘놀라운’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 뒤 촉발된 민주사회주의 논쟁은 의 발표와 더불어 중국에서 민주주의 논쟁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21세기 중국은 여전히 멀고도 먼 장정의 길을 남겨두고 있다. 마오쩌둥이 2만5천 리 대장정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다면, 21세기 중국의 또 다른 개혁 대장정의 길 위에는 ‘민주’와 ‘인권’이라는 새로운 ‘혁명 목표’가 부여돼 있다. 과연 그 길로 내달릴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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