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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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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바늘의 찔리는 역사

등록 2007-01-05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인류의 유서 깊고 고약스런 발명품으로 창이 있습니다. 뾰족한 꼬챙이가 휩쓴 살육의 기록이 쌓여 세계사를 구성한 건 유감 그 자체입니다. 목표물을 관통해 치명타를 남긴다는 점과 외관상 흡사하다는 점에서 바늘은 창의 축소판입니다. 꿰매고 여미는 봉재용 바늘마저 실용과 동반되는 ‘찔림의’ 아픔이 따른다는 점에서 피의 역사를 기술한 창의 서자 격입니다. 동일하게 선의의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나 더 큰 아픔과 공포를 수반하는 바늘도 있으니 의료 기구로 분류되는 주삿바늘입니다. 검사와 치료의 일환으로 일련의 내용물을 반입 내지 반출하기 위해 이 따끔한 철침은 몸통 안에 0.5밀리 내외의 구멍이 있고, 이로써 신체와 ‘통’합니다. 주사는 별 의심 없이 특단의 처방전으로 숭앙됩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존재란 신자에게 늘 자비와 잔인의 양가감정을 유발하지요. 만병통치라는 투철한 신앙심조차 주삿바늘만큼은 기피하고픈 환자의 간절함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무통증 주사는 없냐는 난센스한 질문이 속절없이 쏟아지는 까닭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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