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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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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 가라사대

등록 2007-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개밥이 사료로 불리게 사정은 개의 처우 변화와도 유관합니다. 일그러진 놋쇠 그릇이나 이빨 빠진 도기에 사람이 남긴 밥과 찬을 뒤섞어 던져준 것이 개밥의 원형입니다. 그러나 개밥은 다만 개의 끼니라는 의미 외에도 질 낮은 음식을 비하할 때 쓰는 보편적 비유였습니다. 즉, 개밥은 사람이 먹을 게 못 되는 것이지요. 개와 인간 사이의 유대감과 개의 일방적인 충성심을 감안할 때, 야박하고 비열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개밥의 운명도 다국적 기업이 시장에 가세하면서 맛·영양·소화는 물론 씹었을 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까지 배려되는 꽤나 신경쓴 균형식품으로 가공되었으며, 의학적 신뢰를 얻기 위해 수의사가 광고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개밥의 위상 변화로 항간에선 조폭이 근육을 배가하기 위해 개 사료를 먹는다는, 확인 안 된 풍문마저 나돕니다. 한편 먼저 곁을 떠난 개의 텅 빈 자리를 수북이 그리고 허전하게 채우고 있는 개밥은 생전 개가 인간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가를 가슴 아프게 웅변하는 유품이 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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