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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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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줄무늬 중독

등록 2007-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동일 패턴의 선들이 평행 배치되거나 반복되는 것. 이 단순한 조형 원리가 시선을 장악합니다. 호랑이의 위협도 결국 호피 줄무늬 덕에 증폭되는지도 모릅니다. 패션계에서 스트라이프의 군림은 거의 장기 집권 수준인데, 이는 지지자의 불변하는 집착에 기인합니다. 어떤 학자는 줄무늬의 매력을 ‘악마의 옷’에 빗댑니다. 용이한 제작 원리와 시각적 호소력이 수요를 촉발합니다. 적지 않은 나라의 국기 디자인은 줄무늬입니다. 예술도 예외는 아닙니다. 일군의 추상회화는 줄무늬로 일관합니다. 온통 줄무늬로 가득 찬 대형 화면 앞에 선 관객은 어떤 서사적 단서도 얻지 못한 채 다만 심각한 메시지가 있으리라 그럴싸한 단정을 내리고는 근거 없는 숭배에 몰입합니다. 진실도 사기도 그 작동 원리는 단조롭습니다. 줄무늬가 주입하는 무한 반복은 안락합니다. 때론 줄무늬 같은 일상의 지루함을 박차고 나선 이가 드물게 등장하나, 정부는 이들을 감옥에 가둬 줄무늬 수의를 입힙니다. 그런 핍박에도, 줄무늬 중독에서 탈출해 새 길을 떠나야 합니다.

*‘반이정의 사물보기’는 이번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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