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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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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과 경전의 기묘한 권위

등록 2007-01-26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용어 사전과 종교 경전은 부피와 모양새, 효과까지 닮은꼴입니다. 거북스런 검정색 가죽 장정과 깨알 같은 글씨로 채워진 수천 쪽 분량의 두툼함은 보는 이를 기선 제압합니다. 이들 앞에 우리는 한없이 초라한 존재랄까요. 엄청난 분량에 담긴 정보의 총량은 무시 못하지만, 보통의 독자에게 이 둘은 탐독 도서가 아니며, 필요한 용어와 지문을 이따금 제공하는 데 쓰입니다. 사전 수록 용어를 전부 암기하거나 경전의 잠언 모두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통독과 완독 비율이 낮다는 건 일상에서 이들의 용도가 두께에 값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위안보다는 불안과 위압을 표상하는 사전과 경전의 무게와 두께는 결국엔 권위와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사전과 경전은 축적된 권위입니다. 게다가 둘은 특정 언어 혹은 종교에 입문하려면 필히 거쳐야 하는 통과제의의 성격까지 갖춰, 가가호호 두 녀석의 존재는 어디서건 발견됩니다. 늘 가까이 영접하지만 실체에 대해선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 바로 이들과 소장자가 맺는 관계의 기묘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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