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와 희망의 역사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하승우 지음, 그린비 펴냄)은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다. 말하자면, 아나키즘을 위한 변명이다. 지은이는 아나키즘을 둘러싼 다양한 오해에 반격을 가하고, 아나키즘의 현재적 가능성을 쥐어짜내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아나키즘과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인식의 장벽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것은 현실로 전화되기 힘든 공상적 사회주의 아닌가. 다시 말해, 온갖 아름다운 말들로 가득 찬 잠꼬대 아닌가. 둘째, 그것의 실천적 전략은 테러리즘 아닌가. 당신이 이렇게 믿고 있다면, 당과 국가의 독재를 합리화했던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전세계에 신자유주의의 깃발이 펄럭이는 세계를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얘기되는 생태주의, 공동체, 풀뿌리 민주주의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 대안들의 출발점은 아나키즘이었다.
아나키즘은 무수한 사상적 갈래와 실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은 러시아 사상가 크로포트킨의 을 통해 아나키즘이 ‘백일몽’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하려 한다. 아나키즘엔 과학적·이론적 토대가 있으며, 역사적 방향성을 갖고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온갖 ‘사이비 사회주의’에 칼침을 날린 마르크스의 을 거꾸로 세우면서 시작된다. 책은 에 대한 본격적 논의로 들어가기 전에 근대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의 대립을 살펴본다. 마르크스주의가 당의 지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방향을 정리할 때, 아나키즘은 민중의 연대와 권위에 대한 거부를 주장했다. 따라서 레닌과 스탈린의 제3인터내셔널은 물론이고 제1, 제2 인터내셔널에서도 충돌의 역사를 밟았고, 때로는 공산주의자들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그렇다면 대표적 아나코-코뮌주의자로 분류되는 크로포트킨의 은 무엇인가. 은 적자생존을 내세운 다윈과 헉슬리의 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진화의 가장 큰 동력은 경쟁보다 협력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존에서도 ‘사회성’이 중요하다. 자발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 사회는 원시 씨족사회에서부터 다양한 형태로 찾아볼 수 있고, 중세 도시들로 이어진다. 국가라는 괴물이 모두를 집어삼키기 전까지 길드나 노동조합에서도 협력적 공동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상호부조의 원리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온 것이다.
크로포트킨의 코뮌주의는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유럽과 러시아에서 마르크시즘과 충돌하며 다양한 결실을 맺었다. 지은이는 ‘68혁명’이나 21세기 반신자유주의운동에서도 아나키즘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아나키즘 운동은 소수의 역사고, 기나긴 패배의 역사다. 그러나 단절되지 않은, 지금-여기서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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