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가 보여주는 미의식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참는 거야.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냐.”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던 날 사내는 하루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하며 ‘새신랑’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젖는다(). “한줄의 애국시도 쓰지 못한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토해낸 말은 모양 사납게도 ‘만세! 죽어버리자’였다.” 전선에서 보내온 병사들의 작품은 형편없었지만 소설가는 ‘비굴하게도’ 그것들을 출판사에 추천한다. 그리고 자신이 ‘병종’이라고, 벙어리 갈매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소설가의 집을 드나들며 문학을 배우던 학생이 전선에서 옥쇄(전장을 사수하다 전원이 사망하는 것)했다. 평소 학생의 시를 신통찮게 생각해왔던 소설가는 그가 보내온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건강하신지요./ 먼 하늘에서 문안드립니다./ 무사히 임지에 도착했습니다./ 위대한 문학을 위하여/ 죽어주십시오./ 저도 죽습니다./ 이 전쟁을 위하여.”()
일본 근대의 폐허를 헤맨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선 (김욱 옮김, 책이있는마을 펴냄)가 나왔다. 다자이 오사무의 마니아라면 싱거울 테고, 세계문학 코너에서 우연히 정도를 구경한 독자라면 단편의 현란한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단편‘선’이란 늘 그런 것이다. 오사무의 인생은 그 자체가 소설처럼 유통된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보다 더 끔찍한 ‘자살 중독증’을 앓았다. 열아홉에 처음 자살 시도를 했고, 동경대학 시절 술집여자와 함께 바다에 투신했다가 혼자 살아남았고, 알코올과 진통제 중독에 빠져들었으며, 마침내 39살의 나이로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투신해 생을 마쳤다. 가해자의 나라에 살았던 이 피해자의 생은 자신의 주인공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그들은 세계가 모조리 추악한 거짓이라는 무서운 진실 앞에서, 도피한다. 그들은 자신 앞에 펼쳐진 세계를 무서워하고, 이렇게 무서워하는 자신을 병신, 비굴한 인간이라 질책하면서 내면 속으로 숨는다. 그것은 더 이상 파고들어갈 곳이 없을 때까지 계속되는 삽질이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그는 악의적인 만담가다. 그의 소설은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내뱉는 1인칭 독백, 즉 ‘타자’를 의식하며 주절거리는 고백이다. 소설의 화자는 부끄러움에 떨며, 소곤소곤 우리에게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다가, 돌연 심술궂은 웃음을 띠고 우리를 조롱하기도 한다. 여기에 오사무 소설의 현란함이 있다. 의 사내는 “터놓고 말해서 이 소설은 우리 부부싸움 얘기인 것이다”라고 운을 뗀 뒤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아이들과 젖가슴 사이를 ‘눈물의 골짜기’라고 말하는 아내의 비루한 삶을 늘어놓는다. 그러곤 아내가 아이를 들쳐업고 배식 줄을 서는 사이 술집으로 달려가 귀한 앵두를 씹어대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자식보다 부모가 소중하다, 자식보다 부모가 약하다.”
의 상실감과 슬픔과 불안을 거쳐 오사무는 마지막 작품 에서 더 이상 파고들어갈 곳 없는 절망에 이른다. 그가 시종일관 우리에게 한 가지 ‘근대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의 비참 속에 던져진 인간에게 구원은 있는가. 물론 장렬히 ‘옥쇄’한 병사들의 참호 속에는 없다. 오사무가 뛰어든 시퍼런 물에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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