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유기농으로 재배한 작물을 수확해 전교생 80여 명이 나눠 먹는다. 또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거나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등의 여러 이유로 채식을 하고 밀가루를 끊는 친구도 있다. 이런 환경 속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하다.
그래서 지난 7월 초 GMO(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해 함께 공부해보고자 저녁 조회 시간에 의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를 전교생에게 소개했다. 나는 시민법안을 정하는 첫 투표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후 시민법안으로 정해진 GMO완전표시제법 통과를 위한 온라인 프로젝트 정당 ‘나는 알아야겠당’의 당원으로도 가입했다. 내 친구들 중에도 당원이 여러 명 있다.
‘아차’ 싶은 순간이 있어도마침 ‘녹색평론독자모임’ 동아리에서 GMO에 대해 공부하고 ‘일주일간 GMO 안 먹기’ 활동을 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공연동아리 회원인 나는 녹색평론독자모임 동아리에서 활동하지는 않지만 고기·밀가루를 끊는 친구들처럼 자발적으로 GMO를 끊어보았다! 기간은 일주일이 아닌, 되는 때까지.
시작은 7월 초였다. 최대한 내가 아는 선에서 GMO와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을 나눠보았다. 내 기준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쉬운 비GMO는 가공되지 않은 식품이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파는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 냉동식품 등 가공식품을 사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냥 마트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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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학교 밖으로 간식을 사러 나갈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도 않았고 평소 과자를 즐겨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 7시10분, 오후 12시50분, 저녁 6시30분. 학교에서 밥 먹을 시간만 기다리는 게 조금 괴롭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사실 무척 배가 고팠지만 무조건 참았다.
원래 시험기간에는 ‘시험 간식’이라며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왔지만 이번 기말고사에는 생활협동조합에서 파는 유기농 빵과 학교에서 나눠주는 감자, 토마토, 떡 등을 먹으며 잘 넘겼다.
하지만 고비는 학기 말에 찾아왔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생활관(기숙사) 생활을 한다. 한 방에서 1학년, 2학년, 3학년 한 명씩 함께 지내는데 학기마다 방을 바꾼다. 방학 이틀 전, 1학기 방식구들과 마지막 밤을 보낼 때는 이야기하면서 먹을 간식을 사오는 친구가 많다. 우리 방은 요구르트와 빵, 석류차를 먹으며 마지막 밤을 지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비장의 카드를 꺼내놓았다. 전에 사놓고 먹지 않은 (내가 좋아하는) 과자 예*이었다. 마지막 밤과 아쉬움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결국 2개를 먹었다. 먹는 순간에도 ‘이거 GMO 덩어리일 텐데…’ 하는 찜찜한 마음이 들어 방과후 작물밭에서 따온 방울토마토를 집어먹었다.
‘GMO를 먹지 않는다’는 다짐을 하니 내 의지로 자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먹을 게 없었다. 일주일간 GMO를 먹지 않는 활동을 한 녹색평론독자모임 친구들 몇 명도 내 말에 동의했다. 또, 확실히 덜 먹게 되긴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 친구는 방식구의 생일을 챙겨주려 마트에서 빵을 사왔는데 녹색평론독자모임 동아리원인 2명의 방식구가 GMO를 먹지 않아 난감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 더운 날씨에 실습을 하고 나서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면, 나도 모르게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말았다. ‘아차’ 싶어도 이미 입 댄 거 어쩔 수 없으니 먹고. 그런 날에는 매일 밤 자기 전에 하는 스트레칭을 더 열심히 하곤 했다.
불편해도 알고 싶고, 노력한다녹색평론독자모임 친구들은 무엇이 GMO이고 비GMO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또 내가 무엇을 먹는지 모르니까 답답하다고 했다. 심지어 고기마저 먹기가 꺼려진다는 친구도 있었다. 가축 사료의 80~90%는 GMO라고 한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또 다른 큰 고민도 있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 가공식품뿐만이 아니라 참치캔의 기름, 마요네즈, 식용유, 간장 등 알게 모르게 먹는 GMO가 너무나 많다. 이것들을 아예 안 먹을 수도 없다. 이런 고민 덕분에 ‘나중에 조그만 텃밭이라도 만들어서 내가 먹을 건 내가 길러야지’라는 평소 생각이 이제는 ‘반드시 해야 해’로 바뀌었다. 나뿐 아니라 나의 두 동생, 나중에 결혼해서 낳을 아이, 그리고 땅과 환경을 위해서 말이다.
친구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녹색평론독자모임은 전교생에게 GMO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기도 하고 ‘내 밥상의 GMO’라는 작은 책자를 공동구매해 나눠 읽기도 했다. 책자가 도착한 날에는 꽤 많은 친구들의 손에 파란 책자가 들려 있었다. GMO와 먹거리에 대해 다른 친구들의 관심과 고민도 한층 깊어진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지금(8월5일)은 방학이라 집에서 지내고 있다.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GMO에 노출돼 있다. 며칠 전, 초등학생인 두 동생이 “핫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마트에 갔다. ‘우리밀’이라고 쓰인 제품을 골라서 샀다. 그래도 여전히 찜찜했다. 핫케이크를 다 만든 뒤 위에 뿌릴 올리고당을 꺼냈다. 자연스레 뒷면에 눈길이 갔다. ‘옥수수(수입산)’라고 적혀 있었다. ‘GM옥수수겠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올리고당만큼 맛있는 시럽을 직접 만들 재주가 없었기 때문에 꺼림칙하고 이상한 기분을 뒤로하고 핫케이크 위에 뿌렸다.
귀찮을 때 밥 대신 먹는 빵과 라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불편한 것투성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먹을 것 하나 없고, 입을 것 하나 없고, 심지어 살고 있는 이 아파트 건물마저 불편하다. 하지만 불편하더라도 알고 싶고, 또 조금은 불편하고 싶다.
아직은 크게 불편하지 않다집에 와서 느꼈다. GMO 안 먹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덜 먹고 자제하는 건 가능하다. 일상생활에서 불편하고 예민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차라리 나는 이게 더 좋다. 어릴 적부터 아토피와 알레르기, 비염이 심했던 나는 함부로 먹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거나 생활 패턴이 깨지면 증상이 생긴다. 정말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된다는 것’을 느껴보았기에 조금이라도 건강한 것을 지향하고 싶다.
힘든 점도 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이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찜찜하고 불안하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알고 싶고, 마냥 편하게만 살고 싶진 않다. GMO를 언제까지 안 먹을지는 모르겠다. 아니, 이게 가능하긴 한 건가?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다. 아직은 내가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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