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 딸(11) 살해사건을 수사 중이던 강원도경 수사과는 사건 발생 13일 만인 10일 오전 춘천시 우두동 만화가게 주인 정원섭씨를 범인으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유류품으로 보이는 빗과 연필 등을 단서로 수사를 벌이는 한편 우두동 일대 우범자, 폭력배, 변태성욕자 등 30여 명의 용의자를 연행 조사한 끝에 이 중 정씨가 자기 집 만화가게 점원으로 고용한 10대 소녀들을 욕보여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지난 3일 정씨의 신병을 확보, 9일 밤 만화가게 점원으로 있었던 김모양으로부터 ‘문제의 빗과 연필’이 정씨 것이라는 것을 확인, 정씨를 추궁 끝에 10일 새벽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밝혔다.”( 1972년 10월10일치)
일반 형사사건에서 이례적으로 재심에서 무죄범인의 자백은 한 달 뒤 번복됐다. 정씨는 검사 피의자신문조서에서 “(경찰에 자백한 것은) 고문 때문이었고, 번복하여도 검사님이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 허위 자백했다. 자백을 번복하면 경찰에게 보복을 받을까 두렵고 그냥 형을 살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법정에서도 강간치상·살인 혐의 등 공소사실을 부인했지만,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5년 옥살이 끝에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된다. 감옥안에서도 형사소송법이 적힌 책장을 찢어 삼킬 정도로 법을 공부한 그는 1999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그러나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사건이 조작됐다’며 재심을 권고했다. 당시 조사에서 경찰에 ‘문제의 빗과 연필’이 정씨 것이라는 확인을 해준 김아무개씨, 정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한 10대 소녀는 경찰의 고문 및 강압으로 허위 진술을 했다고 증언했다. 2008년 두 번째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졌고 2011년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간첩·시국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파란만장한 삶의 터널을 지나온 정원섭 원로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충절교회)는 이제 일흔아홉 노인이 됐다. 3월12일 전북 남원에 위치한 한 복사 가게에서 그를 만났다. 명예회복을 고대하며 사건 자료를 복사하려고 수없이 들렀던 곳이다. 그에게 물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목사님 같은 피해자는 없지 않겠느냐고. “아니, 있어요. 무죄판결 받아 내 이름이 언론에 나가고 하니까 억울한 사람들이 전부 다 나한테 전화를 해요. 지금은 고문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경찰이) 주장하는 대로 순순히 시인하지 않을 때 때리면 고문이에요. 그런데 ‘미친놈이냐’ 이렇게 위압적인 말을 하면 합법적 고문인 거죠.”
특별히 심신미약자나 사회적 약자들만 허위 자백의 덫에 걸리는 것일까. 사건 발생 당시 정 목사는 네 아이를 둔 여섯 식구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한신대를 졸업한 뒤 목회자의 길로 향하던 그의 인생이 바뀐 건 끔찍이 아끼던 큰아들이 뇌척수막염에 걸리면서부터였다. 아이를 살리려고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아이를 잃었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정신적인 방황도 이어졌다. 경북 청송에서 고향인 강원도 춘천으로 이주해 만화가게를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발표하기 직전으로, 경찰은 범인 검거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내무부 장관은 이 사건의 범인을 사건 발생 13일 뒤인 10월10일까지 검거하지 못하면 관계자들을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총 5차례 신문조서에서 모두 자백“교도소로 접견을 온 변호사한테서 ‘자백을 하지 않을 경우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집행유예로라도 석방되려면 자백을 검토해보라’는 충격적인 조언을 듣고….”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 중
수사기관에서는 범인일 확률이 높은 사람에게 자백 압박을 하고 신문은 장시간 이어진다. 유죄를 인정하면 힘든 신문이 끝난다고 설득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다른 허위 자백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1992년 11월29일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던 중 진범이 자수해, 1994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 극적으로 누명을 벗은 김기웅 순경 사건을 들여다보자. 경찰이던 김씨도 수사 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 그는 사건 당일 새벽 3시30분~7시께 피해자와 함께 있었다. 사건 다음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새벽 5시께 피해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내놓자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찰의 5차례 피의자신문조서에서 김씨는 모두 자백을 한다. 이 가운데 네 번째 피의자신문에서는 범행을 부인하다 다시 번복하기도 했는데 신병이 검찰에 인계된 이후에 다시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석방 뒤 자신을 조사한 경찰들이 가혹행위·협박·회유를 했다고 폭로한다.
현직 경찰서장도 허위 자백을 피해가지 못했다.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은 2001년 부하 직원이 오락실 업주들에게서 받은 뇌물 중 일부를 상납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02년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고 대전고법도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기각한다. 박씨가 옥살이를 한 배경에는 뇌물을 상납했다는 구아무개 경사의 허위 자백이 있었다. 구씨는 재판 과정에서 4일간 이어진 검찰의 밤샘 조사 및 회유와 협박에 의한 자백이라며 이를 번복했고, 대법원에서는 그의 자백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검찰 조사에서도 범행을 부인하던 박씨가 돌연 항소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가 무죄판결을 받은 뒤 발간한 저서 에 실린 상고이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변호사가 무죄 변론을 계속하던 중, 결심 공판기일 며칠 전에 교도소로 접견을 와서 ‘자백을 하지 않을 경우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집행유예로라도 석방되려면 자백을 검토해보라’는 충격적인 조언을 듣고는 다시 한번 경악한 채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심에서 구씨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 증거는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에 범죄를 부인할 경우 오히려 죄질이 불량한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피고인 말을 듣지 않는 재판은 독재”지난해 말, 정 목사와 가족들은 서울중앙지법에 ‘수사기관은 없는 죄를 만들어내고 사법기관은 수사상 위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등 국가기관이 총체적 불법행위를 가해 한 가정을 고통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는 피고의 소송수행자인 춘천경찰서가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여주며 노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답변서에는 “법원은 원고 정원섭에 대한 유죄의 증거가 부족하거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며, 수사 당시 경찰관들에 대하여 가혹행위 등 불법행위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의심 내지 가능성이 있음을 설시한 것일 뿐 불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분명하고 충분하게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적혀 있다. 40년 전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정 목사는 재판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재판이란 피고인의 주장과 공소를 제기한 검사 양쪽 주장을 똑같이 듣고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서 판결하는 거예요. 피고인 입을 틀어막고 검사 이야기만 들어, 옛날엔 피고인 말 듣지도 않았어요. 그것이 독재예요. 그것이.”
남원=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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