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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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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법인 허용이 과잉진료 키웠다


병원에 투자·배당 허용하는 영리화 정책, 참여정부 시작하고 MB정부 이어받아 의료 시장화 부채질
등록 2012-05-02 16:22 수정 2020-05-03 04:26

“의료 같은 지식산업도 집중 육성하겠다.”
2004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을 발표했다. 금융·법률·컨설팅 등 지식산업과 함께 의료 분야도 미래 산업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는 자동차·반도체 같은 제조업의 뒤를 이을 성장 엔진으로 의료 등 이른바 서비스산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3월 ‘서비스산업 관계장관회의’가 처음 열렸고, 그해 두 차례 더 이어진 회의에서는 의료영리법인을 도입하자는 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 국가 차원의 의료 민영화 기획은 참여정부 때 시작됐다. 의료는 공공서비스에서 점차 성장‘산업’으로 이동했다. 2005년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국가 차원의 의료 민영화 기획은 참여정부 때 시작됐다. 의료는 공공서비스에서 점차 성장‘산업’으로 이동했다. 2005년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제주도부터 열리기 시작한 빗장

의료영리법인이란 한마디로 투자와 배당이 가능한 병원 모델을 가리킨다. 따라서 외부의 민간자본이 병원에 유입될 수 있고, 결산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이윤을 배당할 수 있다. 의료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의사 혹은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여기서 비영리법인은 수익사업으로 돈을 벌어도 배당을 해선 안 되고, 인건비·시설투자·연구비 등 병원의 설립 목적에 맞도록 써야 한다. 이른바 재벌 병원인 삼성의료원도 비영리법인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의료시장의 ‘파이’를 늘리기로 결심한 정부는 병원을 통제하는 규제의 덫을 풀어주겠다는 복안이었다. 2005년 10월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설립됐다. 위원회는 의료기관에 대한 민간자본의 투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병원 채권을 도입하고, 의료산업펀드를 구축하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특히 노무현 정권 말기 경제정책을 주도한 관료 그룹은 병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조처를 잇달아 내놓았다. 2006년 2월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법에도 경제자유구역법의 외국인 영리병원 허용 조항이 준용됐다. 제주도에서는 영리법인에 대한 빗장이 일부 풀린 셈이었다. 2007년 12월 경제자유구역 안에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는 주체를 외국인에서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상법상 법인’으로 확대했다.

2008년에 등장한 이명박 정권도 노무현 정권의 바통을 착실히 이어받았다. 2008년 기획재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영리의료법인의 도입을 검토하고, 해외 환자 유치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2009년 정부가 내놓은 ‘미래 한국을 이끌 3대 분야, 17개 신성장동력’ 가운데 고부가 서비스산업으로 ‘글로벌 헬스케어’ 분야가 선정됐다. 물론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시민단체와 진보적인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샀다. 정부 정책은 보건의료 분야의 공공적 성격을 무시한 결과라는 지적이었다. 2009년에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7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4개 야당이 모여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서서히 무력화된 시민사회 저항

지난 10년은 의료 민영화를 계속 추진해온 정부·관료·기업과 이에 맞서 의료 공공성을 강조하는 시민단체 사이의 지루한 공방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사회의 저항 속에서도 병원 관련 규제가 하나둘 풀리는 등 의료 민영화가 후퇴 없이 진행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크고 작은 병원들이 모두 돈벌이에 매달리는 모습은 이런 뒷배경 없이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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