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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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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률도 유전되는 더러운 세상


노동직 사고 사망률이 사무직보다 25% 높아…
저학력 아버지 둔 어린이 사망율이 2배 이상 높고 그 원인의 절반은 사고
등록 2010-12-28 15:33 수정 2020-05-03 04:26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만난 환자 18명 가운데 사무직 혹은 관리직 노동자는 단 1명뿐이었다. 65살 이하 환자 3명을 제외한 환자 15명은 대부분 서비스직·생산직 등의 일을 했다. 무직도 2명이었다. 이들의 상당수가 계층구조에서 ‘아래쪽’으로 몰려 있었다. 이들의 직업과 이들이 겪었던 사고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몇 가지 통계와 연구는 멀어 보이는 두 사실 사이를 잇는 실마리다.

» 2007년 11월26일 제주시 애월읍 도로변에서 버스와 화물트럭이 충돌했다. 이 사고로 버스 운전사 김아무개(44)씨와 트럭 운전사 한아무개(35)씨, 그리고 버스 승객 16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한겨레 자료

» 2007년 11월26일 제주시 애월읍 도로변에서 버스와 화물트럭이 충돌했다. 이 사고로 버스 운전사 김아무개(44)씨와 트럭 운전사 한아무개(35)씨, 그리고 버스 승객 16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한겨레 자료

우선 ‘2009 표본병원 손상유형 및 원인통계’를 살펴봤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만든 이 보고서는 서울대병원 등 전국 주요 8개 병원 응급실을 찾은 외상환자 8만8162명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 이들의 직업 분포를 보면, 전체 중증 외상환자 가운데 33.6%가 노동직이었고, 17.3%가 사무직이었다. 노동직의 비율이 사무직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물론, 노동직의 사고 비율이 사무직의 2배라고 단정할 순 없다. 두 집단의 인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통계청 누리집에서 두 집단의 인구를 비교하니, 노동직이 사무직보다 56.7% 정도 많았다. 두 가지 통계를 종합하면, 노동직 노동자가 외상을 입을 확률은 사무직보다 25% 정도 높게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의 직업 분류 기준은 같았다. 사무직은 의회의원, 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 전문가, 기술공 및 준전문가, 사무종사자 등이었다. 노동직은 서비스·판매 종사자와 기능·기계조작·단순노무자 등이었다.

성인도 사고사가 차이를 벌인다

그렇다면 외상 발생 비율이 실제 사망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정최경희 이화여대 교수(예방의학)가 인구주택총조사와 사망신고 자료 등을 분석해 세대별 사망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한 자료를 넘겨받았다. 정최 교수가 2008년에 쓴 논문 ‘사회·경제적 사망 불평등에 대한 사망 원인별 기여도’의 내용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정리한 내용이었다.

자료는 1~4살부터 노년층까지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와 그 원인을 분석했다. 우선 1~4살 남자 어린이의 사망위험 수준을 아버지의 학력에 따라 나눴더니, 아버지가 중졸 이하의 학력인 어린이는 대졸 이상의 아버지를 둔 어린이보다 사망위험비가 2.59배 높았다. 같은 조건에서 대졸 이상 학력의 아버지를 가진 남자아이가 100명 죽을 때, 다른 쪽 끝에 있는 어린이는 259명이 죽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도 살펴봤다. 원인은 교통사고를 포함한 사고(49.4%)가 절반을 차지했다. 그 밖에 신경계 질환(13.9%), 선천성 기형 혹은 염색체 이상(11.9%) 등이 학력이 낮은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생명을 많이 앗아갔다. 여자아이는 아버지의 학력에 따른 사망비 격차(2.41배)가 남자아이보다 적었지만, 사망 불평등의 원인 가운데 교통사고 등 사고로 인한 비중이 53.3%로 절반을 넘었다.

» 세대별로 사회계층 간 사망률 차이를 낳는 주요 원인의 비중

» 세대별로 사회계층 간 사망률 차이를 낳는 주요 원인의 비중

아동의 사고로 생기는 사망률과 아버지의 직업을 분석한 연구도 있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이 2007년에 내놓은 논문을 보면, 노동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둔 5살 이하 어린이는 직업이 사무직인 아버지를 둔 또래보다 사망위험비가 1.4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정최 교수의 분석 자료로 돌아가보자. 5~9살 남녀 어린이의 통계를 보면, 아버지의 학력이 낮은 여자 어린이의 사망률이 눈길을 끈다. 계층별 사망률이 차이 나는 원인에서 90% 이상이 교통사고 등 사고였다. 내용을 보면, 아버지가 중졸 이하 학력인 여자 아이는 아버지가 대졸 학력인 또래보다 사망할 위험이 3배 정도 높았다. 그렇게 차이가 난 원인의 92.5%는 사고였다. 신경계 질환이 나머지 4.2%의 사망 원인이었다. 두 통계를 종합하면, 아버지의 학력이 낮은 아이일수록 어린 나이에 사망할 확률이 높고, 그 원인의 절반 이상은 교통사고·추락 등 사고라는 것이다.

계층은 어른들의 죽음도 갈랐다. 계층별 차이는 더 선명했다. 25~44살 성인들의 기록을 보니, 초등학교 졸업 학력을 가진 남성들의 사망위험비가 대학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 이들보다 무려 9.5배 높았다. 두 집단의 인구가 같다고 가정할 때, 대졸자가 1명 죽을 때, 초등학교 졸업자가 9.5명 죽는다는 뜻이다. 차이가 난 이유는 어린이들보다 복잡했지만, 여전히 교통사고를 포함한 사고가 18.3%로 가장 비중이 높았다. 그다음으로 간질환(16.2%), 자살(1.9%), 뇌혈관 질환(5.2%)이 저학력 남성을 괴롭혔다. 같은 연령대의 여성 집단에서는 학력에 따른 사망위험비(5.8배)가 남성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또 사망 원인 가운데서는 자살(11.4%)이 오히려 교통사고 등을 포함한 사고(10.4%)보다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45살 이상 인구로 넘어가면 학력에 따른 사망 불평등도 점차 줄어들고, 사망 원인에서 사고의 비중도 눈에 띄게 줄었다. ‘나이 앞에 장사 없는’ 탓이다. 초등학교 졸업자와 대졸자의 학력에 따른 사망위험비는 45~64살 남성이 2.9배, 여성이 2.2배였다. 또 사망위험비 격차가 생기는 원인 가운데 사고의 비중은 남성의 경우 13.5%였다. 이 세대로 들어서면 간질환(17.0%)이 가장 크게 사망비 격차를 벌렸다. 여성의 경우 사고의 비중은 9.1%로 더 줄어들었고, 당뇨(9.4%)가 사망비 차이를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65~79살 인구로 가면, 사망위험비는 남녀 모두 1.2배로 줄어들었고, 사고로 생기는 외상은 사망위험비를 벌리는 데 4.5~9.0% 정도 작용했다.

사망 불평등의 한국적 원인

정최경희 교수는 “북미나 유럽의 연구에서는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같은 허혈성 심질환 등이 계층별 사망위험비 차이를 만드는 주요한 요소로 보고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남녀 모두 3% 정도로 비중이 낮았다. 오히려 44살 이하 연령대에서 대체로 운수사고를 포함한 사고성 손상이 총사망 불평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의 2009년 사망 통계를 보면, 전국 사망자 24만6942명 가운데 외상으로 사망한 인구는 3만2661명(13.2%)이었다. 그 가운데 교통사고로 사망한 수만 7141명이었고, 그 밖에 추락사고 사망자도 2144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교육 수준과 직업에 따른 사망의 무늬는 보이지 않게 새겨져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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