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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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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불 켜진 구급차 시스템

[생명 OTL] 생명과 죽음의 이중나선/

구급차 내 응급처지 60%가 부적절, 이송 과정에서 한 해 2353명 사망 추정…

규제 사각지대 놓인 민간 구급차는 더 위험해
등록 2011-01-07 08:44 수정 2020-05-03 04:26

우종례(72·여·가명)씨는 2010년 4월 오후 길을 걷다가 차에 치였다. 구급차는 사고 현장에 빨리 왔다. 그는 사고가 난 뒤 10분 만에 현장에서 가까운 중소 규모 A병원의 응급실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받던 우씨의 혈압이 갑자기 떨어졌다. 의료진은 환자에게 말초 정맥주사와 수액만을 주고 치료를 35분 만에 마무리했다. 환자는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운전사뿐인 구급차로 이송된 뒤 숨져

» 119구급차 한 대가 서울 성동소방서를 나서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전국 6천여 명의 구급대원 가운데 1급 응급구조사 혹은 간호사의 비율이 31%라고 밝혔다. 한겨레 박종식

» 119구급차 한 대가 서울 성동소방서를 나서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전국 6천여 명의 구급대원 가운데 1급 응급구조사 혹은 간호사의 비율이 31%라고 밝혔다. 한겨레 박종식

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험했지만 구급차에 동승한 의료진은 아무도 없었다. 구급차에는 운전자와 환자뿐이었다. 대학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5분 뒤였다. 환자의 심장은 이미 멈춰 있었다. 심폐소생술이 10분 남짓 이뤄진 뒤, 환자의 심장박동이 되살아났다. 그렇지만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뇌허혈 손상이 남았다. 뇌로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뇌조직에 손상이 생긴 것이다. 심장박동이 살아난 환자를 검진해보니, 환자는 자동차 사고로 늑막강에 혈액이 고이고, 골반 골절이 있었다.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는 사고를 당한 뒤 4시간30분이 지나 다시 심장박동이 멈췄다.

서울 시내 한 의료기관으로부터 넘겨받은 사례다. 이 의료기관은 사망자의 나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신원 정보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우씨는 사고가 난 뒤 대학병원으로 바로 이송됐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혹은 A병원 응급실에서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의료진의 관리만 제대로 받았어도 생존할 수 있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보면 “구급차 등의 운용자는 응급환자를 이송하거나 이송하기 위하여 출동하는 때… 응급구조사 1인 이상이 포함된 2인 이상의 인원이 항상 탑승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탈법적인 구급 관행이 우씨를 ‘살해’한 셈이다.

우씨 사례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다. 정구영 이화여대 교수(응급의학)가 2008년에 내놓은 ‘응급의료체계 성과지표에 관한 연구’를 보면, 우씨와 비슷한 운명을 걸어 사망에 이른 이들의 통계를 접할 수 있다. 정 교수 등 연구진은 2006년 8월부터 1년 동안 전국 20개 대형 응급실에서 외상으로 사망한 551명의 의무기록을 분석한 뒤, 이들 가운데 179명(32.6%)은 적절한 구조 및 치료 과정을 거쳤다면 살릴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뒤집어 말하면, 구조 및 치료 단계에서 부적절한 대응이 그만큼 환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는 뜻이다. 논문은 또 179명 가운데 129명(24.3%)은 병원에 도착한 뒤 치료 과정에서, 나머지 50명(8.3%)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풀이했다. 우씨는 후자에 속한 경우였다.

2007년 건강보험 자료를 보면, 교통사고·추락 등 사고로 사망한 환자는 2만8359명이었다. 여기에 정 교수의 연구 결과를 대입하면, 이 가운데 2353명(8.3%)이 이송 단계의 문제 때문에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을 맞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중증 외상환자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 다른 응급환자 수까지 더하면 구급차로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는 이의 수는 더욱 불어난다. 이런 수치 속에서 하나씩 사라져갔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통계를 담담하게 대하기 힘들어진다.

119구급대원 중 1급 응급구조사는 31%뿐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큰 문제는 ‘움직이는 응급실’인 구급차 안에서 의료행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구영 교수가 2006년 119구급대가 기록한 170건의 환자 기록지를 분석한 결과, 이송 과정에서 환자의 혈압·맥박·호흡 등 생체징후와 병력 등 6가지 기본 기록이 모두 작성된 경우는 전체의 25.9%(44건)에 불과했다. 구급차 안에서 환자의 수축기 혈압이 한 번도 측정되지 않은 경우도 81건(47.6%)이었고, 환자의 증상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은 경우도 17건(10.0%)에 이르렀다.

이근 가천의대 교수(응급의학)도 2009년 4~7월 전국 2906건의 이송 단계 응급처치가 적정했는지를 분석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1070건(36.8%)의 치료만 적정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구급차를 10번 타면 6번은 차 안에서 제대로 처치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발성 외상환자에 대한 처치가 적정했던 확률은 77.8%로 높았지만, 천식 의심(0%), 심인성 흉통(1.9%), 저혈량성 쇼크(2.8%) 환자들은 구급차 안에서 사실상 ‘방치’됐다. 정구영 교수는 “구조사들이 구급차 안에서 의료인으로서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직업의식과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19구급대를 운용하는 소방방재청은 2010년 6월 ‘구조구급서비스 선진화 계획’을 내놓고 2012년까지 전국의 구급차 1283대에 최소한 1명의 1급 응급구조사가 탑승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은 6천여 명의 구급대원 가운데 간호사나 1급 응급구조사의 비율이 3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소방방재청에 현재 1급 응급구조사가 탑승한 구급차 출동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그 비율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황 파악이 안 됐는데, 목표부터 정한 꼴이었다.

그나마 119구급대는 ‘선진국형 모델’이다. 119구급차나 병원이 운행하는 구급차와 달리 민간업체에서 운행하는 구급차는 오랫동안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2010년 3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내용을 보면, 45개 민간 이송업체가 680대의 구급차로 해마다 13만여 차례 환자를 이송했다. 차량 수만 놓고 보면, 119구급대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민간 구급차들은 무료인 119구급차가 잘 운행하지 않는 병원 간 환자 이송 작업을 주로 한다.

문제는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민간 구급차들이 질 낮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수도권 지역 민간 구급차의 차령을 조사해보니, 차령이 10년 넘은 구급차가 14.9%를 차지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는 사업용 차량의 운행 한도를 9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구급차의 차령에 대한 규제는 없다. 2010년 1월에는 서울 강서구에서 응급환자를 옮기던 구급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안에 탑승한 산모가 사망하는 사건도 생겼다.

15년째 그대로인 민간업체 이송료

또 민간 구급차들은 법규상 이송요금표를 구급차 내부에 부착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환자나 보호자가 경황이 없는 상황을 이용해 민간업체들은 바가지 요금을 청구하기 일쑤였다. 불합리한 관행의 배경에는 낡은 제도도 있었다. 민간업체의 이송료는 1995년 기준이 만들어진 뒤 15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민간업체로서는 이송요금표를 달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민간 구급차에서는 응급구조사 없이 운전사 혼자 환자를 이송하는 사례도 빈발했다. 법규에서는 이송업자가 특수구급차 한 대마다 운전사와 응급구조사를 각각 2.4명씩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송업체의 구급차 한 대당 한 달 500만원 내외의 수입을 올린다고 보면, 4.8명의 구급인력 인건비에도 못 미친다”고 밝혔다.

복잡하게 얽힌 관청의 권한도 풀어야 할 숙제다. 구급차 전반에 관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119구급대를 운용하는 소방방재청은 행정안전부 소속이다. 또 민간 이송업체에 대해서는 시·도지사가 허가·감독 기능을 쥐고 있고, 시·군·구청장은 병·의원 소속 구급차의 지도 점검을 담당하고 있다. 시·도지사가 실제 민간 구급업체에 감독 권한을 활용한 사례를 살펴보니, 2007~2009년 전국에서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가 57건에 불과했다. 관리·감독의 공백을 가르며 구급차는 오늘도 위태롭게 거리를 달린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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