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응급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

[생명 OTL] 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 /

응급실에서 거부당하는 노숙인, 병원비가 무서워 진료도 두려운 빈민…

가난할수록 응급실에 더 자주 가고 사망 확률도 더 높은 현장 르포
등록 2011-01-07 09:54 수정 2020-05-03 04:26

글 싣는 순서
① 다섯 빈민의 임종
②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③ 중환자실에서 만난 외상환자들
④ 응급실에 숨어있는 차별

질병과 사고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아파 쓰러질지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집이나 길 위에서 의료진의 손길을 아프게 기다릴 수 있다. 2009년 한 해 온 국민의 응급실 방문 건수가 392만 건을 넘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날마다 5천 대가 넘는 구급차가 전국의 고속도로와 오솔길을 누비고, 전국 500개가 넘는 응급실이 24시간 돌아간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모든 국민은 성별, 연령, 민족,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고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도 응급실에서 이 권리를 보장받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응급실 현장에는 보이지 않는 문턱이 있었다. 그 앞에서 가난한 이들은 때로 주저앉고, 외면당했다.
‘생명 OTL- 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 4회는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과 환자 가족·친지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썼다. _편집자

2010년 11월20일 밤 9시44분, 서울 중구 을지로6가 1층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자동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119 구급대의 이동식 침대가 열린 문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구급대원 2명이 끄는 침대에 누운 강세훈(44)씨의 얼굴은, 아파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두 손은 만삭처럼 부풀어오른 배를 쥐고 있었다. 윗도리가 마저 덮지 못한 솟아오른 배에서 배꼽도 자두 크기만큼 부풀어 있었다. 뱃속 가득 복수가 차올랐다. 그는 카키색 바지에 검은색 양말을 신고 있었다. 원래 색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때로 절었다. 발에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슬리퍼가 신겨져 있었다.

피를 토해야 응급실로 옮겨지는 노숙인

»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의 1층 응급실 입구. 2010년 11월 마지막 주 3일 동안 밤 시간에만 33명의 환자가 이곳 유리 자동문을 열고 실려오거나, 걸어 들어왔다. 환자 33명 가운데 1명은 치료를 거부당했다. 또 7명은 의료급여 대상자였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의 1층 응급실 입구. 2010년 11월 마지막 주 3일 동안 밤 시간에만 33명의 환자가 이곳 유리 자동문을 열고 실려오거나, 걸어 들어왔다. 환자 33명 가운데 1명은 치료를 거부당했다. 또 7명은 의료급여 대상자였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강씨는 일단 응급실의 4번 침대로 옮겨졌다. 그가 몸을 뒤척이며 “숨을 못 쉬겠다”고 말했다. 최고 혈압이 180㎜Hg까지 올랐다. 병력을 물어보는 의료진에게 그는 “간경화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배가 부른 지는 일주일 정도 됐다고 했다. 그는 노숙인이었다. 역 근처에서 쓰러져 있는 그를 보고 다른 노숙인들이 신고했다. 의료진이 질문을 던지는 동안에도 환자는 부풀어오른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했다. 응급실의 연락을 받고 외과에서 당직을 서던 전공의 2명이 뛰어 내려왔다. 환자의 입에서 피가 솟아나왔다. 검붉은 색의 피를 반컵 정도 토한 뒤에도 각혈이 멈추지 않았다. 의료진은 강씨의 입속에 관을 박고 ‘SB튜브’를 설치했다. 식도 쪽의 터진 혈관을 압박해서 출혈을 막는 일종의 고무 튜브였다. 출혈은 일단 멎었다. 환자의 주변에 온갖 링거관과 의료기구 전선들이 그물처럼 연결됐다. 환자가 계속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해서 간호사들이 침대 곁을 떠나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던 신상호 수련의는 “간경화 말기 상태로 보이는데, 환자가 이를 방치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의 상태가 심상찮았다. 강씨는 다음날 새벽 1시22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은 보통 인턴 4명이 2명씩 조를 이뤄 24시간 2교대로 당직을 선다. 간호사는 13명이 3교대로 자리를 지킨다. 응급실 입구에서 자동 유리문을 두 개 지나면 은행 창구처럼 만들어진 공간에서 당직 수련의와 간호사를 마주할 수 있다. 병원에서는 이곳을 흔히 ‘스테이션’이라고 부른다. 스테이션 오른쪽에는 12개의 병상이 나란히 놓여 있다. 12개 병상 양쪽 끝에는 작은 수술실과 격리실이 있다. 격리실에는 주로 냄새가 심한 행려자들이나 술에 취해 실려온 환자들이 눕는다.

12월20일 저녁 격리실에서는 노숙인인 이재복(42)씨가 머리에 난 상처를 치료받고 있었다. 최재성 수련의가 그의 머리에 식염수를 뿌렸다. 이씨의 상의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의 옆에 보안요원인 송민석씨가 서 있었다. 보통 응급실에는 소란을 피우는 취객 때문에 송씨 같은 보안요원이 대기하고 있다. 이씨의 감지 않은 머리 속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양말도 없이 누운 그의 발은 시커멓다. “동상 때문에 발, 발이 이래.” 이씨가 말했다. 술에서 덜 깬 그의 말은 어눌했다. 그에게 물었다. “머리를 왜 다치셨어요?” 그의 머리에는 찢어진 상처가 4cm 남짓 그어져 있었다. “술 먹고… 자, 자빠졌어요.” 수술실에서 머리의 상처를 꿰맨 이재복씨가 격리실에서 걸어나와 천천히 응급실 출구로 향했다. 상처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청구역”이라고 말했다. 서울역으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응급실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엉거주춤했다. 응급실 문이 열리자, 찬바람이 몰아쳤다.

 

의료보험에서 쫓겨난 사람의 고통

이재복씨가 응급실 문을 나설 때, 9번 침상 옆에는 김정철(84)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침대에는 아내 이수자(78)씨가 누워 있었다. 이씨는 이날 낮에 이웃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과음했다. 계단을 오르다가 굴러버렸다. 머리에서 출혈이 심했다. “그나마 피가 흐르지 않았으면 죽을 뻔했다”고 남편 김씨는 말했다. 부부에게는 2남2녀가 있지만, 아무도 병원으로 부르지 않았다. “자식들에게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서 받을 것도 없다”고 낯빛이 거무스름한 김씨가 말했다. “손자·손녀들이 대학을 다녀서 자식들도 여유가 없다”고 80대의 김씨는 굳이 덧붙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씨의 혈압이나 맥박 등이 정상 수준을 유지했다. 그래도 신상호 수련의는 불안했다. 이씨에게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라고 권유했다.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20만원 정도 되는 촬영비를 낼 여력이 없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온 이유도 “고려대 병원보다 싸서”였다. 부부의 수입은 없다. 이씨가 ‘취로사업’에 나가서 버는 돈 20만원이 유일한 벌이였다. 자녀가 있어서 기초생활수급권자도 될 수 없었다. 병원비 8만원도 부담이었다. “의사 선생님”이라고 자꾸 부르기에 기자 신분을 밝히자, “나쁘게 쓰지 말아달라”고 계속 부탁했다.

4시간 남짓 침대에 누워 있던 이씨가 밤11시30분을 넘어 일어났다. 이 부부와 동행했다. 서울 성동구 응봉근린공원 옆에 위치한 김씨의 집은 오르막길 끝에 있었다. 그가 사는 집의 1층 쌀집 간판은 낡았다. 유리문은 닦지 않아 죄다 흐렸다. 부부가 사는 2층으로 올라가는 철문에는 녹이 곳곳에 슬었다. 차를 태워줘 고맙다며, 그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천원짜리 지폐 몇 개를 내밀었다. 사양했다. 80대 노인은 계속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12월21일 저녁 7시, 응급실의 한쪽 침대에서 9개월 남자아이인 수현이가 울고 있었다. 그 옆에 엄마 이혜지(19)씨가 아들을 달래고 있었다. 이씨는 10대 미혼모인 이른바 ‘리틀맘’이다. 이날 아침부터 아이의 눈이 충혈되고 눈곱이 많이 껴서 아이를 안고 달려왔다. 아기는 폐렴을 한 차례 앓았다. 박향미 전공의는 “수족구병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어린 엄마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병원은 수현이를 이날 밤 9시21분에 입원시켰다. 모자는 의료급여 1종이었다. 비싼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면 의료비는 무료였다. 입원비도 무료지만, 걱정은 있었다. 아이와 엄마는 경기도 북부의 한 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빠는 모자를 돌볼 형편이 되지 않았다. 평일에 어린 엄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전에는 검정고시학원에 다녔다. 아이 때문에 고등학교를 자퇴했기 때문이다. 친정집에서는 어린 딸이 낳은 손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를 간호하려면 학원을 빠져야 할 것 같다”고 어린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급실 5번 침대에서는 신우준(34)씨가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몸집이 작은 신씨는 숨 쉴 때마다 가슴에서 통증이 심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의료진은 신씨에게 CT 촬영을 권유했지만, 신씨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건강보험 가입자가 아니었다. 보험금을 체납해서 보험 혜택 자격을 상실했다. 그와 동행한 친구인 한경숙씨는 “친구가 빚을 많이 져서 건강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면 병원비는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른다. 신씨는 CT 촬영을 안 했지만, 이날 내야 할 병원비만 해도 버거웠다. 그가 받은 링거액과 다른 검사 때문에 병원비는 38만3461원이나 됐다.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21만5403원만 내면 됐다. 의료진은 신씨의 신장 쪽에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끝내 검사를 포기했다. 침대에서 4시간 정도 누워 있던 그는 이날 밤 10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씨는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한 뒤 병원에 와야겠다”고 말했다.

 

“침대가 찼다”, 노숙인 거부하는 국립의료원

밤 11시를 넘자마자 8분 사이에 환자 3명이 한꺼번에 응급실을 찾았다. 막노동을 하는 최종원(47)씨는 응급실에 걸어 들어왔다. 숨 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5일 연속 일하고 나니 가슴 쪽이 아프다고 했다. 최씨는 아파트 현장에서 쓰레기를 모아 담는 일을 하고 있다. 최씨는 “가슴이 계속 아파 겁이 나서 왔다”고 말했다. 수련의 한 명이 최씨의 기록을 봤다. 어깨너머로 보니 컴퓨터 모니터에 메시지가 떴다. “본 환자는 노숙인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MRI(자기공명영상) 등 고액의 처방은 가능한 한 자제해주시기 바라며, 특진비는 전액 받을 수 없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최씨가 모르는 사이, 보이지 않는 문턱이 그와 병원 의료진들 사이에서 높이 올라갔다.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에게 치료할 때 참고하도록 하기 위해 이런 내용을 미리 알린다”고 말했다.

최씨가 응급실을 찾은 8분 뒤, 조재권(47)씨가 구급차에 실려왔다. 택배기사인 조씨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묘 앞 사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직진하다가 좌회전하는 자동차에 치였다. 오른쪽 이마가 부풀어올랐고, 왼쪽 정강이가 긁혔다. 응급실에 누워서도 그의 휴대전화는 계속 울렸다. 마저 옮겨야 할 짐 때문이었다. 두려움으로 사색이 돼서 누운 그는 수련의가 상처를 살펴보는 중에도 전화를 받았다. 나머지 짐을 어떻게 나를지 회사 쪽과 상의했다. 택배기사에게는 다친 몸보다 ‘돈암동으로 옮길 짐’이 먼저였다. 상한 몸과 마저 못한 일 때문에 그는 극도로 예민했다. 의사를 제외하고는 간호사에게도 신경질적으로 대했다. 검사를 해보니, 일단은 가벼운 타박상 정도만을 입은 것으로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다음날 새벽 1시41분에 병원을 떠났다.

부산한 응급실에서는 때때로 고성도 오간다. 11월26일 저녁의 일이었다. 이날 실려온 노숙인 이한일(48)씨 때문이었다. 시작은 이랬다. 이씨는 이날 서울 서부역 앞 버스정류장 맨바닥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영하 3℃까지 떨어진 날이었다. 한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남대문경찰서 서울역 지구대에서 나왔고, 서대문 소방서에서 구급대가 출동했다. 경찰차 한 대와 구급차 한 대가 이날 저녁 7시26분에 병원 응급실 앞에 나란히 섰다. 병원 쪽에서 김재성(가명) 수련의가 막아섰다. “침대가 찼다”고 말했다. 노숙인을 위한 격리실에는 2명의 노숙인이 이미 누워 있었다. 격리실이 가득 찼다는 뜻이었고, 일반 병상에는 노숙인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경찰차에서 달려나온 김종선 경위가 일반 병상을 가리키며 “이 침대들은 뭐에 쓰려고 있냐”고 따졌다. ‘일반’ 병상은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스테이션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의사와 경찰이 마주 섰다. 김 수련의가 “빈 병상은 일반인을 위한 것이고, 행려자는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거부하는 환자를 들여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 경위는 김 수련의의 인적 사항을 적은 뒤 응급실을 나섰다. 응급실 앞에서 경찰과 구급대 사이에 작은 ‘회의’가 열렸다. 오갈 곳 없는 환자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시립동부병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공공의료기관이었다.

 

응급구조사 없는 응급차도 있다
» 지난 12월27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서 당직 의사들이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 지난 12월27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서 당직 의사들이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경찰차 뒷좌석에 얹어 타보았다. 앞자리에 앉은 김 경위가 목소리를 높였다. “남대문 지구대가 서울역이랑 가까워서 하루에도 1~2건은 노숙자들을 병원으로 데려갑니다. 오늘같이 추운 날은 더 많고요. 노숙자가 술을 마시고 쓰러져서 다치기도 하고, 배에 복수가 가득 차서 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근처 병원으로 데려갑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원래 노숙자들을 잘 받았는데, 지난봄부터 받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의 말이 우연은 아니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10년 4월2일부터 특수법인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2009년 3월 국회를 통과한 결과였다. 병원에 경영 자율권이 주어졌다. 쉽게 말해 국립중앙의료원이 공공 영역에서 시장으로 두어 발자국 옮겨갔다. 해마다 200억원 이상 적자를 내던 병원이었다. 병원은 2009년 10월 서울시내 모든 경찰서와 소방서에 행려환자 이송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곧 “공공의료를 포기한다”고 여론의 뭇매를 받았다. 이른바 특수법인화의 취지인 ‘경영 효율화’의 결과였다. 정작 비난을 받을 곳이 공공의료기관을 시장으로 떠민 국회인지, 떠밀린 병원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대목이다. 그나마 공공영역에 한 발을 담근 국립중앙의료원이 이렇다면, 다른 민간 병원에서 노숙인이나 빈곤층을 어떻게 대할지도 가늠하기 어렵지 않았다.

시립동부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밤 9시53분이었다. 다행이었다. 동부병원은 환자를 받았다. 병원 응급실에는 이미 노숙인으로 보이는 환자 2명이 누워 있었다. 김순관 수련의가 와서 환자의 상태를 점검했다. 일단 이씨를 재우기로 했다. 김 수련의는 “특별한 외상이나 질환으로 생기는 통증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병원의 응급실을 찾아헤매는 동안 1급 응급구조사와 함께 구급차에 탄 이한일씨는 그나마 운이 있었던 셈이다. 이씨를 태워온 한석종 소방사는 1급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소지했다. 119 구급차에는 1급 응급구조사가 탑승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구급대원 6409명 가운데 1급 구급사 혹은 간호사의 수는 1986명이었다. 소방방재청은 2010년 6월 ‘구조구급서비스 선진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1급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42쪽 기사 참조). 그 다음날 시립동부병원에 확인해보니, 이씨는 병원에 도착한 지 7시간 정도 지난 새벽 5시에 응급실을 떠났다. 별다른 외상이나 질환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 표1.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대상자의 한 해 응급실 방문 비율 / 표2.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대상자의 응급실 사망 비율 / 표3.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대상자의 입원 환자 사망 비율

» 표1.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대상자의 한 해 응급실 방문 비율 / 표2.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대상자의 응급실 사망 비율 / 표3.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대상자의 입원 환자 사망 비율

 

가난한 이들의 썩은 동아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지켜본 3일간의 저녁 시간 동안 모두 33명의 환자들이 오갔다. 이들의 병원비 지급 방법을 확인했다. 이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짚어보기 위해서였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은 이가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의료급여 대상자가 7명, 자동차보험을 통해 병원비를 낸 이가 3명이었다. 2명은 자비로 병원비를 냈다. 2명 가운데 1명은 중국 상인이었고, 1명은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신우준씨였다. 이한일씨는 응급실의 문턱마저 넘지 못했다.

33명만을 놓고 보면,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는 의료급여 대상자들의 방문 빈도가 매우 높았다. 이 병원만의 특징일까? 전국 통계를 살펴봤다. 신상도 서울대 교수(응급의학)의 도움을 받아 2009년 전국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의 통계(표 1·2·3 참조)를 뽑아봤다. 지난해 전 국민의 응급실 방문 횟수는 392만218건이었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 가입자의 방문 건수는 337만1734건이었고, 의료급여 대상자는 18만5574건이었다. 2009년 말 기준 건강보험 가입자(4861만 명)와 의료급여 대상자(168만 명)의 수를 감안하면 다음과 같은 통계가 나온다. 건강보험 가입자 100명당 2009년 응급실을 찾은 횟수는 7회이고, 의료급여 대상자 100명 가운데 응급실 방문 건수는 12회였다. 의료급여 대상자들이 더 자주 응급실을 드나들었다는 뜻이다.

이 통계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대상자들이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서 응급실을 찾는 비율이 높다. 둘째, 비급여 항목을 제외한 의료 서비스가 무료라서, 의료급여 대상자들이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말하자면, 저소득층의 이른바 ‘도덕적 해이’ 혹은 ‘공짜 의료 쇼핑’의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 현실에 가까울까? 이 부분의 답도 신 교수가 제공한 다른 통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09년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들의 통계를 보면, 건강보험 가입자 가운데 1만5002명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했거나 응급실에 도착한 뒤 세상을 떠났고, 의료급여 대상자 가운데서는 1626명이 같은 경로를 거쳐 사망했다. 앞선 통계와 합해 계산하면, 건강보험 가입자는 1천 번 응급실을 드나들 때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지만, 의료급여 대상자가 1천 번 응급실을 방문하면 8명의 사망자가 생긴다는 뜻이다. 통계를 종합하면, 빈곤층이 응급실에 드나드는 빈도도 높고, 응급실에서 사망할 확률도 높았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저소득층의 ‘공짜 의료 쇼핑’의 여지는 적어 보였다. 신상도 교수는 “일반적인 의료 혜택을 받을 만한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계층에게 응급의료 시스템은 건강이 많이 나빠진 다음에야 마지막으로 찾게 되는 ‘지푸라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마저도 제구실을 못해서 ‘썩은 동아줄’이 된다”고 말했다.

 

아직도 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
»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의 한쪽 끝에 마련된 격리실. 보통 노숙인 환자나 술 냄새가 많이 나는 취객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다.한겨레 정용일 기자

»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의 한쪽 끝에 마련된 격리실. 보통 노숙인 환자나 술 냄새가 많이 나는 취객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다.한겨레 정용일 기자

응급실에서 만났던 몇몇에게 지난 12월29일 다시 연락해보았다. 간경화 말기 상태에서 응급실을 찾았던 강세훈씨는 여전히 국립중앙의료원 외과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입원해 있었다. 병원 쪽에서는 “강씨의 건강이 계속 불안정하다”고 설명했다. 비용 때문에 CT 촬영을 포기했던 이수자씨의 남편 김정철씨와 통화했다. 그는 “아내가 회복했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 상태”라고 말했다. 따로 CT 촬영을 하거나 검사를 받지는 않았다고 했다.

‘리틀맘’을 둔 수현이는 입원한 지 4일 만인 11월25일에 퇴원했다. 젊은 엄마 이혜지씨는 “아이가 기관지염 때문에 아프다”고 말했다. 역시 비용 때문에 CT 촬영을 포기했던 신우준씨는 아직도 검사를 받지 않았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그는 “가슴에 아직 통증이 있지만 일단 돈을 모아야 검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숙인인 이재복·강세훈·이한일씨는 행방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픈 이들이 찾는 응급실 곳곳에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가난한 자들의 접근을 막는 걸림돌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강요하는 구조도 언뜻언뜻 보였다. 추운 겨울,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응급실에 오지 않도록, 그저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기를 당장에는 기원하는 수밖에 없다.

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