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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전선 이상 많다

[생명 OTL] 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 /

OECD 꼴찌, 부끄러운 응급의료 성적표…

정부 지정 응급의료기관 60% 부실에 행정체계 혼선까지 더해져
등록 2011-01-07 09:27 수정 2020-05-03 04:26

2009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하나 내놓았다. ‘OECD 건강지표’라는 이름의 보고서는 회원국의 보건의료 자료를 비교·분석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급성 심근경색에 의한 30일 사망률’을 비교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100명 가운데 30일 안에 사망한 사람이 8.1명이었다. 비교 대상이 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사망 비율이었다. OECD 평균(5.0명)보다 크게 높았고, 한국 다음으로 사망 비율이 높은 슬로바키아(7.6명)와도 격차가 컸다. 급성 심근경색은 심장에 산소를 공급하는 3개의 심장 동맥 중 하나 이상이 막히는 병으로, 흔히 호흡곤란이나 가슴통증 등 증상이 나타난 뒤 짧은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다. 신속한 응급조치가 사망률을 결정짓는 핵심적 요소다. 결국 OECD의 급성 심근경색 사망률 지표는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 전체에 매겨진 성적표였다.

한 병원의 응급실 이미지. 이 이미지는 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 병원의 응급실 이미지. 이 이미지는 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한겨레 자료 사진

OECD의 평가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 관련 자료를 보면, 인력과 인프라, 제도 모두 부실하다 못해 참담한 수준이다. 2010년 7월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2009년 전국 응급의료기관 평가결과’ 자료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내용을 보면, 정부가 지정한 전국 457개 응급의료기관 가운데 274곳이 핵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정한 응급의료기관 10곳 가운데 6곳이 시설이나 인력, 장비에서 기본을 갖추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본 갖춘 전문응급의료기관 0곳

정부는 2000년부터 응급의료센터의 역할을 나눠,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위독하고 시술이 어려운 환자를 치료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16개)와 전문응급의료센터(4개), 그리고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을 담당하는 지역응급의료센터(112개)와 지역응급의료기관(325개)을 지정해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규모 권역응급의료센터 16곳 가운데서도 ‘기본이 안 된’ 응급실이 무려 9곳(56%)이었다. 전문응급의료센터 가운데서는 기본 요건을 충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지역응급의료센터도 112곳 가운데 35곳(31%), 지역응급의료기관 325곳 가운데서는 무려 226곳(70%)이 ‘불량’ 응급실이었다.

특히 응급의료 인력이 기준에 못 미친 곳이 많았다. 시설이나 공간이 멀쩡해도 의사나 간호사가 없었다.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인력 기준을 충족한 의료기관은 237곳(52%)으로 절반을 간신히 넘겼다. 권역응급의료센터 가운데서도 인력 기준에 맞춘 곳은 10곳(63%)에 불과했다.

정부가 응급의료 분야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2010년 4월에 작성한 ‘응급의료의 현황과 미래’ 자료를 보면, 정부가 2003~2009년 응급의료 분야에 투입한 예산은 4200억원이었다. 전국 응급의료기관에 840억원을 지원하고, 낡은 119 구급차를 새로 구입하는 데 630억원, 구급 헬기를 지원하는 데 430억원을 투입했다. 결실도 있었다. 법정 기준을 충족하는 의료기관의 비율이 2004년 25.0%에 불과했지만, 2008년에는 40.8%까지 올랐다. 2008년에는 응급의료 법률을 개정해서 1900억원 규모의 응급의료 기금을 2012년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응급의료기관의 현대화를 위한 ‘실탄’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1339 전화하고 또 119 전화하고
» 전국 주요 응급실 가운데 정부 기준에 미달한 곳

» 전국 주요 응급실 가운데 정부 기준에 미달한 곳

하지만 정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비용 대비 효과가 적었다는 평가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반적이다. 응급의료 정책이 성과를 낳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응급의료 분야에 관한 권한이 보건복지부와 소방방재청,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서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그나마 손발도 안 맞았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2003년 보건복지부의 지역응급의료센터 평가에서 당시 전체의 약 40%에 해당하는 43곳이 지정 취소 판정을 받았다. 기본적인 인력과 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문패를 내린 지역응급의료센터는 한 곳도 없었다. 지역응급의료센터의 평가는 보건복지부가 했지만, 센터의 지정은 광역 혹은 기초 지방자치단체장이 맡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비호 속에서 부실한 응급실들이 지금까지 버젓이 ‘영업’을 해왔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현재 응급의료 서비스는 양적으로만 공급 과잉 상태고, 전반적인 질도 낮다. 중앙정부가 응급의료시설 가운데서 옥석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더 엄격하게 지원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료 취약 지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서 재정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국가응급의료이송정보 서비스도 부처 간에 손발이 안 맞는 대표적인 예다. 보건복지부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응급의료이송정보 서비스를 위해 40억원이 넘는 예산을 썼다. 일반인들도 1339번으로 병원 응급실에 남은 병상이 있는지, 가까운 응급의료 서비스 기관이 어디인지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렇지만 2010년 10월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119구급대가 구급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의 정보망을 제대로 사용하는 광역지방자치단체는 대구·광주·경기에 불과했다. 그나마 3곳에서도 전체 환자 이송 100건 가운데 보건복지부 전산망을 이용한 경우가 1%에 못 미쳤다. 경기 지역의 한 대형 병원 의사는 “보건복지부와 소방방재청이 협조를 하지 않는 사이에, 환자는 1339에 전화해서 병원 정보를 확인하고, 119에 전화해서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윤정 민주당 전문위원은 “중앙정부 안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소방방재청 사이에 소통이 없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도 네트워크가 전무할뿐더러, 정부와 민간 의료기관 사이에서도 역할 분담이 제대로 안 돼 그나마 희소한 응급의료 자원이 효율적으로 운용되지 않고 상승 효과는 전무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응급의료 정책을 보면 저소득층 관련 대책도 사실상 없다. 정부가 2009년 10월에 발표한 ‘응급의료 선진화 추진 계획’을 보면 저소득층 관련 내용은 ‘응급의료비용 대불제도’가 유일했다. 응급의료비용 대불제도란 돈이 없어서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을 위해 정부가 우선 비용을 대신 내주는 제도다. 2009년 정부 발표에서는 “의료보장 사각지대에 있는 내·외국인에 대한 대불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오락가락 정부의 지원정책

현실은 어떨까?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의 자료를 받았다. 2010년에는 10월15일까지 응급의료기관들이 정부에 요구한 대불금 신청 액수는 7584건(29억6400만원)이었다. 2009년 6216건(26억2800만원)보다 늘어난 수치였다. 의료기관들이 빈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국가에 손을 벌린 경우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정작 나라는 인색했다. 2009년에는 의료기관의 신청 내용을 심사해서 4698건(25억7300만원)에 대해 보상해줬다. 액수 기준으로는 90% 이상 수용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정부의 보상 수준은 2010년 들어 대폭 줄었다. 4618건(14억3900만원)으로 줄었다. 2009년의 절반 정도다. 어찌된 영문일까? 정부가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탓이 컸다. 정부는 대불금 제도 예산을 2009년 8억9천만원에서 2010년 4억5천만원으로 반토막을 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불금 제도 예산을 2011년에는 대폭 늘려서 23억원으로 책정했다”고 말했다.

신상도 서울대 교수(응급의학)는 “정부가 응급의료 시스템에서 배제되는 저소득층에 대한 기초 조사도 하지 않고 있으니 그에 대한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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