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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노무현 키우는 건 국민”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말하는 노무현, 이 시대의 리더십, 그리고 6·2 지방선거
등록 2010-05-20 16:43 수정 2020-05-03 04:26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어려울 때 힘이 될 수 있어야 진짜 친구”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기보다 ‘영원한 친구’에 가깝다. 1980년대 초반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이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그리고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 전 대통령 곁을 지켰다.

언론에 소개된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을 보면 이따금 그가 등장한다. 초점이 맞지 않아 선명하지 않지만 입을 굳게 다문 채 엷은 미소를 짓는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의 든든한 배경이었다. 2004년 3월 탄핵사태가 터졌을 때,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됐을 때, 그리고 서거 직후에도 그는 가장 앞장서서 노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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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다가오자 경남 양산에 파묻혀 있던 그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 추모행사기획을 맡았다. 5월11일 문재인 전 비서실장에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과 ‘포스트 노무현’ 시대에 대한 생각, 그리고 다가올 6·2 지방선거 전망을 물었다. 인터뷰는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정치 지도자 노무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라 말할 수 있겠죠. 집권 5년간 단기적 인기나 성과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사심 없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쌓으려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의 진면목이 올바르게 평가되리라 봅니다.

-그 ‘원칙과 소신’이란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기 말에 남북 정상회담을 했어요. 사실 남북 정상회담은 참여정부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만남 자체를 업적으로 남기지 않겠다,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정상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죠. 정상회담은 6자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관한 합의가 이뤄진 뒤 비로소 추진됐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남북관계가 험악하기 짝이 없는데, 올 초 정부가 곧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처럼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위한 회담이었을까요. 어떤 진정성도 없는, 오로지 만나기 위한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500만 명의 조문객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개인의 죽음이 주는 슬픔도 있었겠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분노도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 뜨겁게 자리하고 있었을 겁니다. 단순한 추모라기보다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무엇,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나 바람도 담겨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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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으로 상징되는 무엇’가운데 정치적 유산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세 가지 정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우선 국민에게 탈권위주의, 권력기관의 자율화 및 정치적 중립과 같은 가치를 일깨웠습니다. 남북관계에서는 남북 간의 항구적 화해와 협력,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호혜적 협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좀더 진보적 관점에서 서민 복지의 확대를 추진했습니다.

-세 가지 모두 현 정부에서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권력기관의 자율화 및 정치적 중립’ 훼손에 대한 우려도 많습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검찰 개혁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많습니다.

=공감합니다. 우리는 검찰의 민주화, 검찰권의 민주적 통제장치 마련에 고심했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설립해 검찰의 기소 독점에서 비롯되는 폐해를 막고자했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통해 권력기관의 균형을 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둘 다 정치권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에요.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 에서 “지금 나를 지배하는 것은 성공과 영광의 기억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말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문 전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친구’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980년대 초반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문 전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친구’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 전 대통령은 많은 업적과 성과를 남겼지만 재임 기간에는 국민으로부터 가혹한 평가를 받았죠. 가치나 노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도 실패했고요. 민심을 얻지 못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개혁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실패했다, 하는 아쉬움을 당시 ‘실패’와 ‘좌절’로 표현하셨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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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노무현’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은 어떤 걸까요.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문화는 지나치게 상대방을 배제하고 부정하고 더 나아가 적대시했습니다. 도저히 인정하지 않는 거죠. 리더십도 그랬어요. 앞으로는 상대방을 포용하는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겠죠.

-서거 이후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정치인이 많이 나타났는데요, 이들 가운데 그런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있습니까.

=참 곤란한 질문입니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힘을 갖춘 분이 쉽게 눈에 띄지는 않죠. 지금은 민주정부 10년의 성과와 지향을 이어받기 위한 다양한 정치적 실험과 시도가 이뤄지는 시기라고 봅니다. 어떤 분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고 또 어떤 분은 민주당의 한계를 지적하며 창당을 선택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럽게 해답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민은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에 촛불로 맞섰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깨어 있는 시민’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진보·개혁 진영에는 이들의 기대를 모을 만한 인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엄혹한 현실을 살아야 하는 국민이 (촛불 집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늘 대의와 공공선에 우선적 가치를 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2007년 대선 때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좀 있어도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분위기까지 나아갔죠. 국민의 요구가 이렇다면 진보적이고 개혁적이고 도덕적인 정치인은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뿌리가 깊지 못해요. 국민이 이런 부분을 인지하고 민주주의에 우선적 가치를 둔다면 거기에 맞는 인물이 인정받게 될 겁니다. 국민이 지도자를 키워낸다고 봅니다.

-문 전 비서실장에게 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 참여정부가 지향한 정책 방향이 계승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직접 ‘선수’가 되어 선거에 나설 수는 없다고 봐요. 정치적 자질이 있고 선거라는 과정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선수로 나서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저는 선수로서의 능력이나 자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6·2 지방선거가 다가왔습니다. 야권에서 ‘친노’로 불리는 후보가 대거 출마했습니다.

=지난 5년간 국정을 담당한 세력이니 그 가운데 훌륭한 인적 자원이나 선거에 나설 이들이 많다는 건 자연스런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선거를 ‘친노 대 반노’의 구도로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엄중히 평가하고 심판하는 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10년 동안 발전한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서민복지 분야가 현 정부에서 엄청난 퇴행을 보였습니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 세력과 그 실정을 심판하고 비판하는 세력 간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야권에서 특히 마음이 쓰이는 후보가 있습니까.

=우선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는 (검찰 수사 등으로) 상징적 존재가 됐죠. 현 정부의 실정과 사회 각 분야의 퇴행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야 할 시기라면 한 후보의 당선이 가장 강력한 경고가 될 것입니다. 진보신당까지 참여해 명실상부한 야권 단일후보가 된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도 상징성이 있다고 봅니다. 3당 합당에 반대할 때부터 노 전 대통령과 늘 정치적 선택을 함께 해온 김 후보의 부산시장 도전은 노 전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현 서울시장과 비교해 지지율이 뒤쳐져 있습니다.

=여론조사란 가변적인 것이니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직이 갖는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에 오 후보의 지지율이 다소 높게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꽤 오랫동안 좁혀지지 않는데요.

=지금까지 정부와 보수 언론이 천안함 침몰 사고를 ‘안보 장사’의 소재로 활용해오지 않았습니까. 천안함 사고 이후 선거 분위기가 가라앉았는데요, 이를 오래 끌고 갈 수는 없을 겁니다. 국민이 천안함 사고와 선거를 분리해 판단하게 될 것이고, 오히려 천안함 사고를 통해 드러난 현 정부의 안보 무능에 대해서도 적절한 평가를 할 것입니다. 선거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면 지지율은 금세 달라진다고 봅니다.



끊임없는 정치 권유
선택은 ‘명예’선대위원장


2009년 5월23일 오전 11시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하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나 그는 끝내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가장 비극적 순간에도 담담함을 ‘연기’했던 그에게 정치권은 그 이상의 역할을 요구했다. 정치였다.
“아, 그렇게 되면 아마 붙어볼 만할 낍니다. 진짜 남자 아입니까.”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부산에서 만난 40대 택시 기사는 “문재인이 대선에서 박근혜와 맞붙는다면 누구를 찍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적잖은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가 정치를 ‘할 뻔’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4월 총선 때였다. 창당 이후 처음 치르는 전국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최대 목표는 안정 의석 확보였다. 당시 청와대에 있던 문재인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에 대한 출마 압박이 거셌다. 출마를 고사하는 두 사람을 향해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고고한 척하지 말라”는 비난도 했다. 직접 ‘출마하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노 전 대통령도 두 사람의 출마를 바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정 수석이 (노 전 대통령에게) ‘출마는 하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문 수석과 지역 교차 출마를 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노 대통령도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며 반색했는데 탄핵 국면에 접어들면서 그 이야기는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저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광주에서 출마한다면 (지역 특성상) 당선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정 수석의 경우 부산에서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웠거든요.”
2009년 10월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때도 민주당은 문 전 실장의 출마를 강력히 희망했다. 그가 마지못해 선택한 자리는 송인배 민주당 후보 선대위원장이었다. 물론 이름만 걸어놓았을 뿐 직접 유세에 나서지는 않았다.
다가오는 6·2 지방선거에서도 부산시장 선거에 나서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의 선택은 김정길 민주당 후보의 ‘명예’선대위원장을 맡는 것이었다.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상, 실제 선거는 단일화에 합의한 민병렬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나 김석준 진보신당 예비후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김민석 최고위원 등이 힘을 모아 치르는 것이 맞고요, 저는 그런 역할까지 맡을 처지가 아니니 명예선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6·2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주 화요일 딱 하루만 서울을 찾는다. 자신을 정치와 연관짓는 이런저런 억측과 전망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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