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당시 나는 제법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빠른 승진으로 회사의 중요한 직급에 오른 지 몇 달째. 고속 승진은 내가 지켜온 원칙과 상식을 버린 결과였다. 현실과 타협했다. 회사의 체질 개선과 개혁을 줄기차게 요청했으나 외면당했고, 그 대신 승진이라는 당근이 주어졌다. 부끄럽고 비겁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정도 있고 고객도 있는 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지내고만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지고 있었다, 세상과 현실에.
겉으로는 중립을 말하면서도 부당하게 권력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했던 이들은 모두 멀쩡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을 도와달라는 말 때문에 탄핵을 당했다. 사과만 했어도 탄핵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굽히지 않아 승리자가 됐다. 그날 밤 술을 마시며 다시 배우고 깨달았다.
사표를 썼다. 다음날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한번 어긋난 곳에서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나 자신에게, 노무현에게 부끄러운 일이었다. 사표를 내면서 일말의 두려움이나 후회는 없었다. 기뻤다. 한 달 뒤 나는 내 회사를 만들어 내가 타협했던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보기로 했다.
굽히지 않았기에 승리자
원칙과 상식, 노무현의 철학으로 사업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편법을 쓰지 않고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해보자. 그 원칙과 상식을 버리게 될 때는 접자. 우리 회사의 ‘원칙과 상식’은 단순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 내 이득을 취하지 않을 것, 거짓말하지 않을 것,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할 것, 바르다면 굽히지 말 것…. 원칙을 지키고 상식을 고집하는 노무현이 만들어갈 세상은 그래야 할 것이고 나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있었다. 행복한 출발이었다.
노무현이 옳았다. 그의 철학을 좇은 나도 옳았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7년이 지난 오늘, 우리 회사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직원 10여 명의 작은 회사지만 업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100%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는다. 불합리한 거래도 하지 않는다. 서로 믿고 노력하는 모습으로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 그가 내게 심어준 철학이 내 인생의 길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늘 고맙다.
그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난다. 지난해 봄, 사무실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며칠을 울어도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다. 봉하마을로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행여 내 슬픔이 일에 방해가 될까 직원들 몰래 눈물을 훔치고 또 훔치며 슬퍼했다.
며칠 뒤 직원들과 저녁을 먹는데 누군가 말했다. “저… 봉하에 다녀왔어요.” 순간 나는 내 주변에 얼마나 원칙과 상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지, 얼마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노무현주의자가 넘쳐나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에는 또다시 그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났다. 그의 죽음은 또 일상에 묻힌다. 하지만 문득 그의 그 소탈한 ‘노짱, 노간지’의 모습과 웃음을 떠올리면서 나는 느낀다. 그가 남긴 정신이 어느덧 내 속에, 아니 우리 속에 뜨거운 피가 되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을.
사업을 잘할 것이다. 더욱 성장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좋은 기업을 만들겠다. 좋은 기업이 만든 좋은 가치들이 우리를 위해 쓰이게 하겠다. 소외받는 사람, 힘없는 사람, 권력도 학벌도 변변치 않은 사람, 그러나 ‘희망·우리·함께’의 힘을 믿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그리고 당당히 말하겠다. 이 모든 가치와 힘은 노무현에게서 나왔다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노무현주의자이며 그를 마음에서 늘 만나고 있다고.
그의 영면을 다시 한번 기원한다. 그런데…. 여전히 너무도 그가 그립다.
한 중견 기업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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