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 때 중재에 나선 노무현 당시 의원. 연합
변호사 노무현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중반쯤이었다. 당시 나는 고 조영래 변호사께서 사무실 내에 설치한 시민공익법률상담소에서 노동상담 업무를 보고 있었다. 5공 시절인 어느 날, 후배인 정재성 변호사가 소개해 부산의 광안리 음식점에서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만났다. 소주도 한잔 하면서 노동문제에 대해 꽤 길게 얘기를 나눴는데, 솔직담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노무현 변호사도 자신의 사무실에 노동상담실을 설치하고 노동문제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변호사들의 처신과 달리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헌신해 마치 광야를 거침없이 달리는 야생마 같았다.
다음으로는 1988년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 노무현을 의원회관으로 찾아갔는데, 다른 의원 사무실과 달리 의원 방과 보좌관들 방이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국회의원 사무실은, 의원이 혼자 쓰는 방은 커다란 반면 여러 명의 보좌관이 함께 쓰는 방은 작은 구조였다. 국회의원 노무현은 의원활동을 시작하면서 다른 의원들과 다른 독특한 시도를 하게 된다. 노 의원은 정책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보좌관 수를 법정 수보다 거의 2배 정도로 늘리는 대신 자신의 세비와 보좌관 급여를 함께 나눠쓰는 공동체적 의원 사무실 운영을 했다. 그래서 늘어난 보좌관들이 일할 책상을 놓을 자리를 위해 넓은 의원 방과 보좌관 방을 바꾼 것이다.
당시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라서 노동운동도 활발했는데, 당연히 수많은 노동사건이 우리 상담소로 폭주했다. 그중 노동부나 관공서가 관련돼 있어서 국회의원의 도움이 필요한 사안은 의원회관으로 수시로 보냈다. 노 의원과 당시 이광재 보좌관 등이 불평 한마디 없이 도리어 고맙다며 그 많은 사건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또 기억나는 장면은 15살 어린 소년 고 문송면군이 온도계·압력계를 만드는 공장인 협성계공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을 때다. 16일간의 장례투쟁 과정에서 노 의원이 앞장서서 현장방문, 노동부 항의방문 등을 추진하면서 거침없이 상황을 타개해나갔는데, 당시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하면서 “너희 자식들 데려다가 죽여보란 말이야”라며 울부짖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인간 노무현은 묘하게 매력적인 데가 있었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반면 ‘대통령 노무현’은 그리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 대통령으로서 권위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와 나름대로 좋은 결과가 있음에도, 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서민적 개혁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마도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너무 크게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약자·소수자·서민의 편에 서서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했는데, 대통령으로서 각계각층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삼성의 프레임에 갇힌 탓인지, 신자유주의에 포로가 돼버린 탓인지, 관료들의 현란한 브리핑 솜씨에 휘둘린 탓인지, 대통령 노무현은 몇 가지 결정적인 역주행을 했다. 평택 미군부대 부지에 군대를 투입한 문제, 이른바 대연정 파동,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역주행 사례가 있었다.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던 서민 노무현, 개혁가 노무현이 결국 투신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되돌아보며 지금도 ‘억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특히 비주류 노무현의 성공을 자신들의 성공으로 감정이입해, 노무현 개혁의 성공을 갈망했던 수많은 민초의 억울함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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