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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뛴 복지, 달라진 인식



사회복지사 임채휘씨… “지역 연계 프로그램 등 많은 변화 있었지만 체감 효과는 크지 않아”
등록 2010-05-21 18:32 수정 2020-05-03 04:26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사회복지에 적극적이었다. 2007년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기초노령연금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노년’ 사진전. 연합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사회복지에 적극적이었다. 2007년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기초노령연금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노년’ 사진전. 연합

지난해 5월23일 오전 9시께 사회복지사 임채휘(33)씨는 강화도 앞바다 석모도의 해안 도로를 따라 운전하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돈보스코아동복지센터의 동료 8명과 함께 1박2일 나들이를 온 이튿날이었다. 이들을 태운 9인승 승합차는 석모도 낙가산 자락 보문사를 향하는 길이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사람들은 모두 흥에 겨웠다. 누군가 즐거운 음악을 듣자고 했다. 라디오를 틀었다. 음악 대신 흘러나온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건강 이상’ 소식이었다. 목적지에 이를 즈음에는 자살 보도로 바뀌었다. “모두가 침울해져서 먼 산만 바라봤다.” 맥이 빠진 일행은 산을 오르지 못했다. 대신 등산로 초입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모두가 라디오 채널을 돌려가면서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그에게 우호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복지 예산 비약적 증가

현직 사회복지사가 본 노 전 대통령의 사회정책은 어떨까? 그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권 때부터 10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복지정책으로 현장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거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아동학대 사건이 생기면 경찰서에서 처리했다. 이제는 사회복지 영역에서 책임질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다. 사회복지사가 경찰뿐 아니라 이웃, 학교 등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지역 차원에서 사회복지 연계 프로그램이 생겨난 것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사회복지가 시혜나 동정이 아니라 권리라는 인식도 생겼다.

아쉬움도 크다. 사회복지사의 처우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다. 2000년대 초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의 초임은 한해 1600만원 수준이었고, 보육교사들의 초임은 1200만~1300만원 수준이었다. 임씨는 “사회복지 예산이 크게 늘었다지만 사회복지사들의 처우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이 의욕만 앞서 생겼던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사회복지 전달체계 개편이 그랬다. 보건복지사무소, 사회복지사무소, 사회복지협의회 등 정부는 여러 가지 실험을 했지만 부처 내부의 알력 등으로 좌초했다. 임씨는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여러 정책이 현장에서 체감되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사회복지에 적극적이었다. 무엇보다 복지 예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02년 전체 예산의 19.9% 정도이던 사회복지 예산 비율은 2007년에 27.9%까지 증가했다. 기획재정부의 2008년 자료를 보면, 노 전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사회복지·보건 분야 총지출은 해마다 11.3%씩 증가했다. 전체 예산 지출 증가율인 7%를 크게 웃돌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에서 “(사회복지에) 예산을 더 주고 싶었지만 관련 부처에서 사업을 빨리빨리 만들어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로 도입된 정책도 적지 않았다.

2007년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제도는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하위 70%를 대상으로 일정한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 들어 연금 액수는 1인당 월 최고 9만원까지 지급되고 있다. 보육 예산도 대폭 늘었다. 2002년 2500억원 수준이던 보육 예산은 2007년 1조3400억원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또 저소득층 근로자 가구를 대상으로 해마다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근로장려세제의 초석도 닦였다. 이 제도는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2008년 7월 시작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도 노무현 정권 때부터 다듬어진 작품이다. 이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환으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장기요양기관에서 간호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소득 재분배 늘려도 양극화 상쇄 못해

예산이 늘고 제도가 다듬어졌지만 노무현 정권의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않다. 무엇보다 사회복지가 확장했지만 여전히 거센 양극화의 흐름을 감당하지 못한 탓이 크다. 통계청이 지난해 2월 내놓은 가계동향 자료에 노무현 정권 사회복지 정책의 성적이 나와 있다. 조금 복잡하지만 자료를 따져보자.

2003년 2인 이상 도시가구 기준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0.295였으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282로 나타났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분배가 평등하게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가처분소득은 시장소득에 실업급여와 근로장려세 등 공적 이전소득을 더한 뒤 세금과 4대 보험료 등 공적 비소비 지출을 뺀 것으로, 가계가 실제 사용 가능한 금액이다.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와 시장소득 지니계수를 비교하면, 가처분소득 지니계수가 4.6% 정도 작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소득분배 개선율이라고 하며, 그만큼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이 소득 재분배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2008년의 지표를 보자.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0.325로 크게 늘었다. 5년 사이 시장에서 소득 양극화가 극심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해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298이었다. 시장소득 지니계수보다 9.1%가 작다. 그만큼 정부의 소득재분배 역할도 커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처분소득 지니계수 자체가 0.282에서 0.298로 커졌다는 것은 결국 정부가 조세 혹은 재정 정책을 통해 소득 재분배 역할을 크게 늘렸음에도 시장의 소득 양극화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개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6.2%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복지 정책만으로 실마리 풀기엔 역부족”

남찬섭 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김대중 정권이 전통적으로 골방에 처박혀 있던 복지와 분배의 문제를 안방으로 끌어냈다면, 노무현 정권은 안방으로 끌어낸 복지·분배를 경제·성장의 논리와 적절하게 관계를 맺게 하는 과제를 안았다”며 “그렇지만 탈산업화와 세계화, 양극화, 경기침체 등으로 안방의 구조가 뒤바뀌는 상황이라 사회복지 정책만으로 사회·경제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정책 기조부터 틀렸다는 지적도 있다.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무현 정권은 복지정책에서 ‘선별주의’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부조성 예산은 2003년 1조6천억원에서 2008년에는 2조94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보편적 서비스’에 해당하는 국민연금 급여액은 소득의 60% 수준에서 40%(2028년)까지 떨어지는 연금개혁안이 결정됐다. 백 교수는 “극빈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사회복지에 치중하면서 보편적 사회복지에는 소홀해 전반적으로 사회복지 정책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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