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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생각에 음표를 달리라



추모 앨범과 콘서트에 참여하는 가수 이한철… “음악으로 시선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등록 2010-05-21 20:51 수정 2020-05-03 04:26
지난 5월8일 서울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에 참여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한철.
한겨레 이종근 기자

지난 5월8일 서울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에 참여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한철. 한겨레 이종근 기자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했듯이 나에게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다가온 것은 그가 1988년 5공 청문회로 일약 스타 정치인이 되었을 때다. 무서운(?) 군인 아저씨 대통령을 호되게 질책하던 정치인 노무현의 패기는 나를 포함한 모두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어떻게 하면 랜디 로즈, 조지 린치처럼 일렉트릭 기타를 멋지게 연주해서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훨씬 먼저였다.

음악과 밴드와 히트곡이 먼저이던 때

그러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다시금 익숙해진 것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때였다. 사실 정치에 크게 관심 없던 나였지만, 그즈음 대의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어도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투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통령 후보자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그중 기호 2번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피할 수 없이 주어지는 권력을 적어도 권력적으로 남용하지 않을 것 같은, 청렴한 대통령이 될 것 같은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자미로콰이나 인코그니토 같은 영국의 애시드 재즈밴드 음악을 내가 하는 밴드 ‘불독맨션’으로 재현하고 싶은 욕심이 좀더 먼저였다.

드디어 정치인 노무현은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많은 관심 속에 임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기존 정치의 벽을 번번이 넘지 못하고 힘겹게 임기를 이어가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점점 남루하고 초라해져갔다. 마음으로는 그 누구보다 믿고 지지했지만, 2005년 밴드가 해체되고 외롭게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나에게는 히트곡(이를테면 같은)이 절실했고 그러한 고민이 앞섰다. 또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노래를 하고,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단했던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노무현 대통령은 고단한 삶마저 정리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절망과 슬픔을 안겨주었고, 나에게는 그것이 비록 자기연민에서 시작된 것일지 모르지만 스스로의 음악과 삶에 대한 생각까지 달라지게 했다. 이후 세상과 내 음악을 따로 떼놓고 볼 수 없었다. 이 땅에서 발붙이고 음악을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세상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행동하는 시민의 양심으로 똑바로 세상을 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물로 만든 내 음악과 주파수를 같이하는 어떤 이의 세상 보는 각도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이겠는가?

지금은 비록 대책 없는 희망가지만

그런 이유로 시민의 손으로 제작된 노무현 대통령 추모 앨범에 순수한 목적과 과정을 통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한 달 동안 진행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 내 음악의 대부분은 막연하고 대책 없는 희망가일 뿐이지만, 옳고 곧은 생각과 말 위에 음표를 달아 원칙을 지키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겠다.

이한철 가수 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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