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때였다. 기나긴 겨울을 갓 벗어나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오는 봄이 반가워서였을까.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 포털을 가득 채운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소식들. 잠이 덜 깨 헛것이 보이는 것으로 여겨 눈을 다시금 감았다 뜬다.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치 보복. 하지만 솔직히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왜였을까.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더니…
그와의 첫 인연은 고1 일반사회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각자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말해보라고 했다. 부모님, 박정희, 세종대왕, 이순신… 서태지까지. 생각보다 그리 다양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좋아하던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생각에 그동안 언급되지 않은 인물을 생각해내려 애를 썼다. 결국 지난밤 뉴스에서 본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기억해내는 데 성공했다. 총선을 앞두고 당선이 유력한 ‘정치 1번지’를 버리고 부산에 내려간 그의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생이 된 뒤 2002년 11월 군에 입대해 부재자투표를 하게 됐다. 맘이 맞는 동기 몇 명과 노무현 당선을 바랐고 를 통해 뒤늦게 당선 소식을 읽고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군복무가 줄어드는 덤도 얻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자주적이고 서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그였기에 더욱 기뻤던 것 같다. 훈련소가 다 그렇지만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겨울, 그날은 참 따뜻했다.
이듬해 5월에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인 학교 선배를 검거하겠다고 난리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보인 모습은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던 그의 후보 시절 언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마 하던 배신의 신호탄이었을까. 이후 기대했던 그의 모습은 조금씩 실망으로 절망으로, 결국 적으로 변해갔다.
일은 2006년 5월에 터지고 말았다. 매해 5월에는 큰일들이 많았다. 하긴 한국 사회의 삶은 고단함의 연속이다. 그해 5월 초 벌어진 평택 미군기지 강제집행은 노무현 정권의 굴욕적 대미정책의 완결판인 셈이었다. 수백 명이 연행돼 10여 명이 구속됐다. 그중에 나도 포함됐다. ‘513번’이라는 번호를 받고 2개월의 수감 생활을 한 뒤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래서 그의 서거 소식에 슬프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마음이 동요하는 걸 느꼈다. 그에 대한 편린들이 하나둘 스쳐지나갔다. 전임자에 대한 아주 ‘특별한 예우’를 철저히 한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늦은 시각임에도 근처 마트에서 싸구려 와인 한 병을 사왔다. 을 부르는 김광석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가슴속 깊이까지 후벼파고 들어왔다. 유난히도 긴 밤이었다.
자유로 중립을 완성한다 생각했던 이그의 죽음 이후 그에 대한 진지한 평가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듯해 반갑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사심이 없고 솔직하고 ‘순수’한 지도자였다고 생각한다. 검찰을 장악하지 않고 놓아버림으로써,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으로 검찰 중립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순수했던 이로 말이다.
이일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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