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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노빠’가 되겠습니다



한번도 공개적으로 ‘지지’를 밝히지 못했다는 독자의 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바꾼 생활
등록 2010-05-21 21:40 수정 2020-05-03 04:26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 유품 그림 전시회.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 유품 그림 전시회.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노무현은 이제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씨앗은 수많은 노무현으로 피어나고 있다. 농촌의 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던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는 모내기를 앞두고 땅갈이가 한창이다. 그의 철학을 좇아 일상을 살아가고, 기업을 끌어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들이 모두 노무현이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노무현은 우리 마음 한자락을 차지할 것이다. 거기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렇게 무한대에 가까운 ‘n개의 노무현’이 이 땅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은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노무현과 나’를 주제로 독자와 시민의 글을 받았다. 학생, 주부, 직장인, 기업체 임원 등 100여 명이 귀한 글을 보내왔다. 해외에서 날아온 글도 많았다. 이 가운데 일부를 선정하고 또 다른 기고와 기자들의 기사를 묶어 표지이야기를 만들었다. ‘n개의 노무현’을 그려본다. 그를 다시 기억하면서, 그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생각하고, 노무현 너머 우리가 꿈꾸는 진보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함이다. 지면 사정으로 더 많은 글을 싣지 못하는 점, 투고해준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빈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지난해 오월 이후로 저는 가끔 소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파란 하늘에 가슴이 먹먹하고, 햇빛 좋은 날에도 가끔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 가슴에는 아무리 울어도 풀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가득 차버린 것 같습니다. 가끔 이렇게 혼자 편지를 쓰다가 내팽개쳐버리곤 했는데, 오늘은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이 처음 대선에 출마하셨을 때 저는 아직 투표권도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이제는 제법 어른이 되었지만, 그때는 제가 생각해도 참 어렸습니다. 아마 어른들이 보시기에 정치는 쥐뿔도 모르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었겠지요.

대통령님을 처음 좋아하게 되었던 건, 우연히 대통령님의 연설을 듣고서였습니다.

“결코 굽히지 않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이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가슴으로 토해내는 그 연설에 저는 그만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당당하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치는 사람. ‘정직한 성공’이라는 소박하지만 실현되지 않는 꿈을 간직한 사람. 저런 멋진 정치인이 있다니!

당신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힘을 보태주고 싶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정치는 그저 어른들의 세계라고 생각했던 제가 대통령님 덕분에 새롭게 국민의 한 사람이 되었더랬죠.

지금에야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저는 노무현 지지자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노사모를 ‘노빠’로 보는 사회의 색안경 때문에 젊은 여성의 지지가 오히려 대통령님께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실은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언론과 보수 세력이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보같이도, 그런 공격들이 무섭고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마음속으로만 대통령님을 응원했습니다. 그 대가로 지난해 5월23일이 지난 뒤 저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눈이 퉁퉁 붓고 입안이 다 해지도록 그렇게 울었습니다.

한 번도 대놓고 지지한다 말하지 않은 것이 한스러워 저는 혼자서 봉하마을에 찾아갔습니다. 친구들이 여자 혼자 어떻게 찾아가느냐고 말릴 때 저는 처음으로 큰소리를 쳤습니다. “내가 네티즌이야? 댓글이나 달고 있게. 난 생각할 줄도 알지만 행동도 할 줄 알아!” 그 전날 밤 출발해, 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봉하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눈물을 질질 짜고, 콧물을 훌쩍이면서, 땀 범벅이 되어 봉화산을 올랐습니다. 정토원에서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내 울었습니다. 그 꼴이 가관이 아니었을 텐데, 사람들이 휴지를 갖다주고 토닥여줬습니다. 그것이 또 그것대로 서러워 더 엉엉 울었습니다. 아방궁이라던 봉하마을이 너무 초라해서, 출입 금지된 부엉이바위가 너무 쓸쓸해 보여서,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그렇게 울었습니다.

대통령님 있잖아요. 저는 대통령님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대통령님은 제가 처음으로 지지한 대통령이었고, 대통령님은 노무현을 버리라 했지만, 저는 마지막까지 당신의 지지자였습니다. 많이 죄송합니다.

제가 이제 와서 어떻게 무얼 하면 좋겠느냐고 여쭤봐도 대답이 없으시겠지요. 그날 이후로 저는 실생활에서도 조금씩 정치 견해를 밝히려 노력합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크게 맘 상하지 않을 정도의 논쟁은 피하지 않고 내 의견을 말하고, 어느새 어른들께도 조곤조곤 침착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액이나마 노무현재단이나 좋은 사회단체에 후원도 하고요. 아무리 어지럽히고 정치 환멸을 조장해도 절대 무관심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의 주권을 꼭 행사하겠습니다.

언론이나 미디어가 제 기억을 방해하고 해치려 해도 자녀에게 꼭 제대로 된 근현대사를 가르치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역사의 평가에 대통령님 서거가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하나의 증거가 되게 하겠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님 보고 싶습니다.

2010년 5월 김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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