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인 그는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그는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8년 전 선거 당시, 비주류가 계속 집권해야 나라의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재벌 개혁을 추진한다면서 출자총액제한제 등 규제를 강화할 때도 큰 거부감은 없었다. 내심 서민과 가진 자의 차이를 좁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니꼬운 게 있어도 맞춰가는 것” 말고 대기업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는“위정자에게 찍히면 안 되니까 기업들도 시늉은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막상 실력이 드러난 노무현 정권은 생각보다 무기력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재벌 규제의 핵심은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구조를 깨야 했다. 그렇지만 그의 눈에 노 정권은 ‘평지풍파’만 일으키는 것으로 보였다. 재벌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좌우 대립만 격해졌다”.
“후원금 투명화, 기업들이 고마워해야”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을 때, 새삼스러운 얘기라고 생각했다. 권력은 벌써부터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삼성의 힘이 너무 세다”고 말했다. “다른 재벌은 재벌도 아니다. 과거에는 현대라는 경쟁자라도 있었는데, 현대그룹이 쪼개진 뒤로는 상대가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서“삼성의 독주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노 정권이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재벌 개혁을 “밀어붙였어야” 했다. 그렇지만 “분란만 일으키고” 정작 한 일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갈수록 힘이 부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거의 유일하게 노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 있다. 정치인에 대한 후원금을 투명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기업인과 권력의 관계를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끊었다. 대기업 총수와의 독대를 피했고, 만날 일이 있어도 참모들을 배석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2004년 열린 17대 총선은 해방 이후 가장 깨끗한 선거라는 평가도 나왔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던 불법 정치자금 논란은 거의 사라졌다. “기업체들도 정치인에게 함부로 후원금을 줬다가는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그 부분에서는 기업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망이 커서였을까. 지난해 서거 소식을 들을 때도 그는 무덤덤했다. “노 전 대통령이 ‘안됐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지 않더라”는 것의 그의 솔직한 말이었다. 그는 “대통령답게 마지막까지 저렇게 헤쳐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삼성 봐주기 논란 낳은 금산법2002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노무현 후보는 “재벌을 개혁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호기로운 선언은 재벌 개혁을 바라는 진보와 재벌의 체질 개선을 바라는 보수층 일부를 잡아끌었다. 노무현 정권 재벌 정책의 핵심은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융·산업자본의 분리(금산분리) 정책으로 요약됐다. 출자총액제한제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를 확장하는 것을 막는 규제를 뜻한다. 예를 들어 한 재벌의 ㄱ계열사가 ㄴ계열사에 출자하고 ㄴ계열사는 ㄷ계열사에, ㄷ계열사는 다시 ㄱ계열사에 출자하면 결국 재벌은 외형과 함께 총수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이런 방식의 자산 부풀리기와 부실한 자산 형성을 막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또 금산분리 정책은 재벌 소속 금융·보험회사가 계열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데 한도를 두는 제도다. 금융·보험계열사가 고객이 맡긴 돈을 써서 다른 계열사를 과도하게 지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였다.
재벌들은 대놓고 볼멘소리를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공연하게 출자총액제한제를 투자 저해의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삼성그룹은 2005년 금산분리 정책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이르러 이같은 재벌 규제는 완화되는 추세로 돌아섰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4월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폭 완화됐다. 개정법에서는 계열사 출자 한도가 순자산의 25%에서 40%로 대폭 올랐다. 출자총액제한제가 사실상 폐지됐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였다. 2006년 12월 개정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은 ‘삼성 봐주기’ 논란까지 낳았다. 이 법은 삼성카드가 불법적으로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20.64%를 처분하는 데 5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금산법은 재벌 소속 금융회사가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5% 이상 소유하면서 지배할 때는 감독당국의 승인을 얻도록 했지만, 삼성카드는 당국의 승인 없이 에버랜드의 주식을 25.64% 소유해왔다. 이렇게 5년의 시간을 번 삼성이 다음 정권의 향배에 따라 대안을 찾을 것이라는 평가가 당시 예언처럼 뒤따랐다. 노무현 정권 재벌 정책을 떠받친 두 개의 지주는 집권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기반이 흔들렸던 셈이다.
“재벌 규제는 사회적 권력 투쟁”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노 전 대통령이 진심으로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를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그의 재벌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취임 첫해부터 카드 대란 등으로 경제 환경이 악화돼 장기 정책 비전을 펼 여유가 없었고, 그와 참모들이 경제정책에서 전문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 결과 그는 삼성과 모피아(경제 관료 집단을 일컫는 말)들의 포로가 됐다”고 풀이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도 진보의 ‘무기력함’을 재벌 개혁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혹은 민주당이 안타까웠다”며 “당에서 박영선 의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재벌 문제에 관심을 두는 의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재벌 정책을 소신 있게 밀고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정당뿐 아니라 대통령을 둘러싼 전문가 인력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대통령은 결국 관료와 삼성경제연구소 등에 포위됐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유작 에서 재벌 규제 문제를 놓고 “아주 간단치 않다”라고 설명하면서 “(규제를) 풀고 또 풀고, 몇 백 개 풀고, 몇 천 개를 풀어도 (재벌은) 계속 규제 완화, 규제 완화 이런다”라면서 대기업과의 힘겨루기가 쉽지 않았다고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글의 끝에서 규제 문제의 핵심은 결국 “일종의 사회적 권력 투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야기를 종합하면, 노 전 대통령은 그가 말한 ‘사회적 권력 투쟁’에서 진보의 측면 사격을 받지 못했거나 이를 스스로 차단한 채 외로운 길을 걸었던 셈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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