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7일 간통죄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탤런트 옥소리씨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혼인빙자간음죄가 제정 56년 만에 폐지됐다. 지난 11월26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혼인빙자간음죄를 규정한 형법 304조에 대해 재판관 6 대 3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즉각 효력을 상실했다.
애초 혼인빙자간음죄가 되입된 과정부터가 황당했다. 1953년에 만들어진 우리 형법은 ‘일본 개정형법 가안’(1940년)의 영향을 받았다. ‘가안’에는 혼인빙자간음죄가 포함돼 있었으나 일본은 논의 끝에 개정형법에서 해당 조항을 제외했다. 결국 혼인빙자간음죄는 ‘잘못된 베끼기’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이후 1992년 형법개정안을 만들 당시 폐지가 논의됐으나 막상 1995년 개정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2002년 헌법소원심판에서는 재판관 7 대 2로 합헌 결정이 났다.
이번 결정에서 헌재는 혼인빙자간음죄가 남성과 여성 모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남성의 경우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받는다. 이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헌법 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도 제한한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우리 형법이 혼전 성관계를 처벌하지 않는 이상 성관계를 유도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여성 역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다. 남성이 결혼을 약속했다고 해서 성관계를 맺은 여성이 훗날 자신의 착오였다며 국가에 남성의 처벌을 요구한다면 국가와 여성 모두가 여성을 ‘성적 결정 능력이 없는 존재’로 보는 셈이란 설명이다.
법 조항에 드러난 정조 관념도 문제다. 혼인빙자간음죄는 보호 대상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 즉 ‘불특정인을 상대로 성생활을 하는 습관이 없는 여성’으로 한정한다.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은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로 낙인찍어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다. 헌재는 이를 두고 “여성에 대한 고전적 정조 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도 이번 위헌 판정에 영향을 끼쳤다. 헌재는 “한 번의 혼전 성관계가 여성에게 곧 결혼을 의미하거나 정상적인 결혼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가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 한 혼인빙자간음을 법률이 보호할 필요성은 미미하다”고 밝혔다. 최근 5년간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된 경우도 연평균 30건 미만에 그친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받은 모든 사람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던 임아무개씨와 양아무개씨는 석방되거나 무죄판결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성행위에 국가가 개입하는 법 조항이 하나 더 남았다. ‘간통죄’다. 기혼자인 양씨의 경우 부인이 간통죄로 고소를 한다면 다시 법정에 서야 한다. 헌재는 간통죄에 대해 1990년, 1993년, 2001년, 2008년 네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에는 재판관 4대 5로 위헌 의견이 많았지만, 위헌 정족수인 재판관 3분의 2(6명)를 넘지 못해 합헌으로 결정났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성명에서 “혼인빙자간음죄와 동일한 문제를 갖는 간통죄 역시 정리되어야 할 역사적 유산”이라고 밝혔다.
사랑을 잃고 법을 찾는 이들을 향해 헌재 결정문은 이렇게 말한다. “법률이 도덕의 영역을 침범하면 그 사회는 법률 만능에 빠져서 품격 있는 사회 발전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성인이 어떤 종류의 성행위와 사랑을 하건 그것은 개인의 자유 영역이고 다만 명백히 사회에 해악을 끼칠 때만 규제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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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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