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6일 팔레스타인 라말라 인근에서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정착민들에 의해 훼손된 올리브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2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7만여 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군은 난민촌과 병원을 폭격하고 구호품 반입을 금지했으며 식량 배급을 받으려는 주민들에게 기관총을 쐈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소행을 ‘집단살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가자 주민들은 식민지배에 맞서 싸운다. 이 멀고도 가까운 가자의 이야기를 한국의 장르소설 작가들이 엽편소설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 묘목은 팔레스타인의 한 올리브나무 가지에서 자라났어.
가지를 잘라다 이쪽에 옮긴 건 비교적 최근이야. 원래의 나무는 아직도 팔레스타인에서 잘 자라고 있다고 해. 잘 보살피기도 어려운 조건에, 매년 올리브를 탐스럽게 매달아 모함마드의 가족을 웃음 짓게 하고 있지.
1978년 전쟁에서도, 2008년, 2014년 전쟁에서도, 두 차례의 인티파다에서도, 2025년 휴전 이후 이어진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건 그저 운이 좋아서 폭발에 휩쓸리지 않았거나 전차에 짓밟히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사람들이 물을 주었다는 거지. 학살 속에서도.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와중, 나무에 물을 주는 마음을 상상해본 적 있니?
가족이 폭살되고, 친척이, 친구가, 동료가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는 와중에.
어떤 마음으로 물을 주었을까, 이 나무에. 물을 주고 죽은 잎을 다듬어주며 생각해보지만 역시 헤아릴 수가 없어.
희망은 이어질 거야. 살아 있는 한.
*
레바논에 사는 누나로부터 그 편지를 받은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전자우편으로 소통해도 충분한 것을 굳이 손편지로 적어다가 시간이 걸리는 배편으로 부치는 건 누나의 오래된 취향이자 습관이었다. 마침 중동 지역의 영공이 통제되어 항공편도 드물어졌으니 잘된 일이 아니냐며 장난스럽게 적어올린 편지의 말미에는 작은 묘목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폴라로이드로 플래시를 터트려 찍은 나무 사진이었고, 폴라로이드 사용에 익숙지 않았던 탓인지 사진은 조금 흔들려 나는 나무의 형체를 겨우 알아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누나의 유해 수습을 위해 인천공항에 나와 있다. 얼마 전부터 중동 지역에 전운이 감돌았고 번져나간 전쟁의 불길은 레바논도 피할 수 없었다. 근 몇 년간 누나가 편지에서 몇 차례 폭격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겠지만 그런 건 잊은 지 오래였다. 누구나 그렇듯 전쟁은 남 얘기일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왔으니까. 인근 지역에 가족을 두고서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종군기자였던 누나가 주기적으로 어딘가에 후원금을 보내거나 방문해 봉사한다는 사실 정도는. 그걸 위해 레바논으로 이주했다는 것 역시도. 나는 그냥 좋은 일 하는 거라 생각하며 반대하는 부모님을 되레 설득했고 누나는 떠났다. 그게 몇 년 전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상세한 건 일부러 캐묻지 않았는데, 늘 여유롭고 자신감 있던 누나의 모습이 드물게 절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일에 피곤하게 끼어들고 싶지 않아 묻지 않았던 것을 나는 오늘에야 후회하고 있다. 누나를 실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내 손에 유해가 쥐어지고 나서도 멀게 느껴질 것이다. 고작 그 물음을 소리 내지 않고 삼켰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마 볼 수 없다며 공항에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오는 걸 맞이해야 하지 않겠느냐 말했지만, 그런 모습을 바란 적이 없었다며 우리는 반대하지 않았느냐며 한사코 거절했다. 기자는 기자인데 뭔 종군기자냐며 누나의 꿈을 반대한 것도 부모님이었다. 결국 누나가 집을 나가버리며 꿈을 이루고는 했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맴돈다. 학살은 전쟁의 얼굴을 하고 있어. 그러니 전쟁은 결코 힘겨루기가 아니야. 언제나 기울어져 있어. 나는 그걸 알리고 싶어.
알리고 싶다는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무엇이기에 누나를 결국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누나가 말하고 싶었던 가치는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
누나는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 갇힌 적이 있었다. 기자와 의사를 비롯한 사람은 물론이고 의약품부터 식량, 심지어 물까지도 통제받는 시기에 누나가 그곳으로 향했다고 했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누나가 어떻게 그곳에 잠입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어떻게든 이뤄내는 사람이었으니 거기까진 수백 번을 양보해서 그러려니 싶었다. 문제는 통제의 목적이었다. 기적적으로 당시의 가자에서 빠져나온 누나는 편지에서 당시 상황을 요약해 언급했다. 가둬놓고 죽이는 거라고. 그러고는 자신이 죽을 뻔한 이야기를, 듣는 이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모험담처럼 부풀려 풀어내던 것이, 그 과장과 해학이라든가 꾸며낸 익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무리 웃기게 적어봤자 누나가 살해당할 뻔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누나의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폭살됐고, 그게 고작 보도 몇 줄로 축약됐다는 사실조차도.
그 과정에서 레바논은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인 여러 형태로 팔레스타인을 지원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폭격을 가했다고, 언젠가 누나가 보도를 적어내던 언론의 뉴스가 공항 맞이방의 티브이(TV)를 통해 말했다. 아무리 누나가 편지로 적어냈다고 한들 제삼자의 시선으로 그 모든 걸 바라보던 나로서는 저 뉴스가 조작됐는지 편향됐는지 구별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바뀐 헤드라인은 곧 적지 않은 민간인 사망자 수를 논했다. 그 숫자 몇 자리 중 1에 속하는 누나의 한마디가 스치는 것 같았다. 학살이 전쟁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이 모든 건 무엇을 위해 벌어지는 학살일까. 과연 학살을 정당화할 명문이랄 게 세상에는 있을까.
*
‘희망은 이어질 거야, 살아 있는 한.’
어떤 희망을 잇고 싶었는지 나는 답장으로 물었다. 누나가 그 편지를 확인했는지, 답을 적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누나가 좇던 것을 생각하고 있다. 누나가 종군기자가 되었던 이유, 레바논으로 향했던 이유, 팔레스타인으로, 가자로 향했던 이유, 전쟁에 눈 돌리지 않았던 이유, 학살을 직시하고 알리고 싶었던 이유….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저 문장 하나에 압축돼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누나는 이제 없다. 살아 있는 한, 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입가에 맴돌았다. 누나는 죽음만이 가득한 땅에서 삶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과수원을 뛰놀며 영글어가는 생명이, 찬란하게 부서지는 강과 바다의 윤슬 속에 삶이 있다고. 그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전쟁 속에 붉은 피를 가지고 숨 쉬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사관으로부터 울리는 전화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하염없이 서성이며 네, 네네. 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이런 따위의 말들을 건조한 입에 올렸다. 긴장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자마자 운구를 맡은 장례업체의 전화가 이어졌다. 30분 뒤 착륙하면 검역과 통관을 마친 후에 바로 장례식장으로 옮겨질 겁니다. 검역과 통관. 생명이 떠난 몸이 고작 물건처럼 다뤄지는 현실에 쓴입은 다시 같은 말을 올릴 뿐이었다. 네.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일을 하셨다며, 적극적이었던 레바논 정부의 인도로 누나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누나가 사진을 찍었던 수많은 시신, 그 학살의 유해들은 과연 가족의 품으로 전부 돌아갔을까. 돌아가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그 한은 또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 차마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떠나가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 슬픔 사이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으로 자라난 나무. 나는 품속에 넣어뒀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다시금 꺼내 보았다. 흐릿한 모습으로 찍혔지만 그 형태는 삶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는 듯했다.
*
어느덧 붉어진 눈시울에 고개를 돌리자 공항 유리창에 부서지는 햇살이 말끔한 바닥을 빛냈다. 누나의 말마따나 그런 상황에서 나무에 물을 주는 마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전쟁터로 향해 참상을 보도하며 타인을 구하다가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무의 가지를 꺾어다가 이국땅에서라도 생을 이어가다오 돌보던 누나의 마음도 알지 못한다. 다만 이제 한 가지는 바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비어버린 누나의 집 발코니. 거기에 있는 작은 올리브 묘목. 그 어린나무에 누군가가 물을 주고 있길 바란다.
이하진 SF 소설가

2015년 2월7일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헤브론 남쪽 베이트아인 인근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토지 몰수에 항의하며 올리브 묘목을 심는 것으로 시위하고 있다. 그 주변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서 있다. EPA 연합뉴스

2024년 10월14일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지구 나블루스 인근에서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올리브를 수확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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