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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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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올해의 판결] ‘인권·정의 최후의 보루’ 사명감 굳건히!

‘올해의 판결’ 심사평…
헌법적 혜안 보여준 ‘야간 옥외집회 참가자 무죄 선고’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왕중왕에
등록 2009-12-23 11:14 수정 2020-05-03 04:25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인 의 ‘올해의 판결’ 기획은 법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반가움이자 반성의 계기가 된다. 법률 전문가를 자처하면서도, 한 해 판결을 두루 살피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생각은 미처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각각의 자리에서 법의 다른 관점들에 천착해온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다른 생각을 교환하고, 그러면서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판결의 속살을 알아가는 일은 개인적으로 설레고 흥미진진한 작업이기도 했다.

두 차례 심사 거쳐 70여개 판결서 12개 뽑아

심사위원들과 몇몇 다른 전문가로부터 추천받은,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 판결은 7개 분야 70여 개에 이르렀는데, 온라인 사전 심사와 3시간이 넘는 열띤 오프라인 토론을 거쳐 다시 12개로 압축됐다. 중요성이나 의미가 큰 판결이 많아 그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내야 하는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판결을 중심으로 하되, 각 분야에 좀더 관심 있는 위원의 설명을 통해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판결을 뽑았다.
추천된 후보 판결 중 ‘집회·시위 및 표현·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판결이 많았다는 점이 큰 특징이었다. 이는 한 해 동안 사법권이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왔고, 그것이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와 위안이 컸음을 의미하는 것일 터다.
이 부문에서 모두 3개의 판결을 올해의 판결로 선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안기부 X파일 사건’ 무죄판결이 끝까지 경합을 벌이다 아쉽게 탈락했다. 서울중앙지법의 ‘미네르바 사건’ 판결(2009고단304)이 갖는 사회적·시대적 중요성에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약간 우세했기 때문이다. 삼보일배 행진의 ‘위법성 조각’을 밝힌 대법원 판결(2009도840)은 집회·시위의 자유와 관련해 대법원에서 전향적인 의견을 내놨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의 ‘야간 옥외집회 참가자 무죄 판결’(2009고정1140 등)은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2008헌가25)을 내리면서 2010년 6월까지는 잠정적으로 현행법을 적용하도록 했음에도 하급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그 헌법적 혜안과 결단이 지니는 의의로 인해 ‘최고의 판결’로 선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여성·가족’ 부문에서는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결정’(2008헌바58·2009헌바191 병합)이 선정됐다. 여성 인권 담론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의문이 없지는 않았지만, ‘여성 보호 담론의 의미와 함께 사생활에 형벌을 부과하는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의견을 내놓았다’는 상징성을 고려해 올해의 판결에 포함시켰다.
‘국가 상대 소송’ 부문에서는 병사의 자살 사유를 허위로 알린 국가가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건 권리남용이라고 판시한 서울고등법원 판결(2009나36588)이 선정됐다. 그 내용이나 법리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과거사 관련 사건에서 소멸시효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의 면책을 인정하는 일련의 판례에 대한 우려를 상기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미국산 쇠고기 검역 불합격 사유별 작업장을 공개하라는 서울행정법원 판결(2008구합45039)은 국민의 알 권리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많은 판결이 추천된 ‘노동’ 부문에서는 기존 판례와 달리 골프장 경기보조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인정한 수원지방법원 판결이 유력한 후보였으나 그에 대한 평가가 하나로 모아지지 못했고, 대신 정리해고 기준, 그중에서도 특히 ‘경영상 긴급한 필요’의 요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상세하게 논증한 인천지법의 ‘콜트 사건’ 판결(2008가합7082)을 선정했다. 악기 제조사 콜트의 근로자 해고의 정당성을 부인함으로써 경제위기를 빌미로 마구잡이로 벌이는 구조조정 관행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었다.
‘형사사법’ 부문에서는 압수수색영장 집행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영장주의가 갖는 의미를 탄탄하게 한 ‘김태환 제주지사 사건 판결’(2008도763)이 뽑혔다.
‘경제정의’나 ‘생활 속의 권리’ 부문에서는 계약법 원리에 제한을 가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원의 적극적 법 적용을 높이 평가해, 은행이 시장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대출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2007두24616)과 출입금지 요청된 도박 중독자를 출입시킨 강원랜드의 책임을 인정한 서울동부지법 판결(2008가합9332)을 선정하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10대 중과실’ 이외의 교통사고 가해자의 형사책임을 면책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2005헌마764·2008헌마118) 역시 교통사고 가해자·피해자에 대한 상반된 영향 때문에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자동차 중심 제도·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다소 우세했다.

공동체의 삶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들

특히 올해에는 용산 참사에서 보이듯 재개발사업과 관련한 사회적 분쟁이 많았는데, 법원에서도 웬만큼 위법한 사업 진행에는 눈감아오던 태도에서 벗어난 모습이 보였다. 조합원 비용 부담 내역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합원 부담금이 상승하는 경우에는 조합 설립 때와 똑같은 수준의 조합원 결의를 거치도록 한 서울고법 판례(2008나38341) 등 재개발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요구하는 판례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총평을 쓰는 이 순간 다시 봐도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 많은 것을 보니, 사법권이 그 판결을 통해 공동체의 삶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게 된다. 지연되는 정의는 정의의 거부이다. 신중이란 미명 아래 시대의 담론이나 이슈에 대해 해답을 미루기보다는 가급적이면 빨리 바로 그 시대에 판결을 내려주는 하급심 법관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면서 아울러 분발을 당부하고 싶다
김진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변호사




심사위원들 한마디
“묵묵히 일한 법조인들 빛나” “시민도 법에 관심을”


김동건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김동건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김동건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위원장)
심사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망설였다. 영광이기도 하지만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왔다. 위원들과 논의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잘 조화해냈다고 자부한다. ‘사법과잉시대’이긴 하지만 그 시대의 해결책을 좀더 빨리 판결해주는 용기를 법관들에게 당부드리고 싶다.


금태섭 변호사

금태섭 변호사

금태섭 변호사
후보 판결 가운데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들이 많은 게 눈에 띈다. 기본권이 위축될 수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제동을 걸어준 것은 고맙지만,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줬더라면…. 압수수색의 적법절차에 관한 판결은 형사 변호사 입장에서는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김남근 변호사

김남근 변호사

김남근 변호사
후보로 집회 및 표현의 자유에 관한 판결이 많이 뽑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다. 이런 상황에서 사명을 다하려는 법관들의 고민과 노력도 많이 보였다. 최후까지 법원이 이를 견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승환 전북대 법대 교수

김승환 전북대 법대 교수

김승환 전북대 법대 교수
판결의 생명인 공정성은 재판관들의 직업적 탁마와 긴장을 통해 높아진다. 심사 과정에서 하급심 판결과 상급심 판결, 그리고 법원의 판결과 헌재 결정 사이의 긴장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사법권의 판단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 아닐까.


김제완 고려대 법대 교수

김제완 고려대 법대 교수

김제완 고려대 법대 교수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봄을 느끼듯이, 여러 가지로 어렵고 각박한 여건에서 힘없고 억울한 시민의 눈물을 닦아준 좋은 판결들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본다. 한편으로는 사법부를 통해서도 구제받지 못한, 더 억울한 사연이 얼마나 더 많을지…. 그 사람들에게 빚을 진 느낌이다.


김진 변호사

김진 변호사

김진 변호사
올해도 민변이 솔선하지 못하고 기획에 업혀가게 돼 부끄럽다. 각각의 판결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되었고, 내년에는 심사위원보다는 ‘올해의 판결’을 만들어내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발칙한 소망도 감히 가져본다.


김영진 변호사

김영진 변호사

김영진 변호사
심사 대상이 된 70여 개의 판결을 살펴보면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이 다수 있었다. 심사 과정에서 간과한 부분을 다른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들으며 새삼 깨닫게 되어 인식의 폭을 넓히는 좋은 자리였다.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
변호사 현업에서 떠난 지 9년 만에 올해의 판결들을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게 되니 새로웠다. 법은 사회의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일 텐데, 과연 그 역할을 다했는지 많은 회의가 들었다. 또한 그렇기에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일부 법조인들의 노력이 더욱 빛났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정치도 대화도 타협도 모조리 실종됐고, 법률주의적 해법만이 판치는 게 현실이다. 국회에서 몸싸움을 해도, 평화적인 일체의 저항도 법원으로 간다. 대통령마저 화난 얼굴로 법질서를 말하는 법 만능의 시대다. 그럴수록 법에 관심을 갖는 일반 시민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최강욱 변호사

최강욱 변호사

최강욱 변호사
국민은 억울한 상황에서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은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권력의 눈치를 보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 못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일깨워준 소중한 성과가 있었다는 점은 다행이다.

김진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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