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트럼프의 ‘장대한 패배’로 끝났다

전쟁 전과 똑같은 상황으로 되돌리는 합의… 기존 제재 풀어주는 선물까지 이란에 안겨
등록 2026-06-19 00:33 수정 2026-06-20 08:0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6월17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6월17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끝났는데 끝나지 않던 ‘좀비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80번째 생일을 맞은 2026년 6월14일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14개항의 양해각서에 합의했다. 전쟁 전, 이란엔 핵무기가 없었다. 하루 평균 120여 척의 세계 각국 선박이 호르무즈해협을 자유롭게 들고 났다. 106일에 걸친 전쟁 끝에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포기 선언과 호르무즈해협 개방이란 ‘성과’를 얻었다. 전쟁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쟁을 벌인 건가?

 

끝났는데 끝나지 않던 ‘좀비 전쟁’, 마침내

 

“미합중국과 이란이슬람공화국 및 양국의 동맹세력은 이 양해각서에 서명함으로써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즉각적이고 항구적인 군사작전 종결을 선언한다. 또한 지금부터 상대방을 겨냥한 전쟁 또는 군사작전을 개시하거나 무력 사용 또는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도 하지 않을 것이며, 레바논의 주권과 영토를 보장할 것이다. 최종 합의안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영구 종결을 확인할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6월17일 전자서명해 공개한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 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레바논’이 세 차례나 등장하는 건 막판까지 종전 양해각서 합의를 깨려 했던 이스라엘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침공을 함께 시작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이미 여러 차례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 헤즈볼라의 위협을 침공 명분으로 내세운다. 양해각서 체결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겨냥한 군사작전을 지속한다면, 이란은 미국을 압박할 것이다.

2026년 6월15일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한 남성이 최고지도자 모습을 담은 대형 광고판 앞을 지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6월15일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한 남성이 최고지도자 모습을 담은 대형 광고판 앞을 지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은 상호 주권과 영토를 존중할 것이며, 상대방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양해각서 2항) 언뜻 국제관계의 ‘기본’을 나열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을 전후로 한 미국의 대이란 정책을 되새긴다면 의미가 작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당국이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던 2026년 1월13일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이란의 애국자들이여, 시위를 지속하라. 정부기관을 점령하라”고 부추겼다. 또 이란 침공 당일인 2월28일엔 반정부 시위대 유혈 진압을 침공의 명분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전쟁으로 이란에선 군부와 강경파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졌는데, 전쟁 전 ‘이란 인권’을 강조했던 미국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제 와 ‘내정 불간섭’을 선언한 게다.

 

핵무기 개발 계획, 애초 없었다

 

“미국과 이란은 최대 60일 안에 최종 합의를 위한 후속 협상에 임할 것이다. 협상 시한은 상호 합의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양해각서 3항) 후속 협상의 핵심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초기인 2025년 3월26일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은 하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2003년 자신이 중단시킨 핵무기 개발 계획 재개를 허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2025년 6월 이른바 ‘12일 전쟁'을 벌인 직후 미국 의회조사국은 보고서를 내어 “이란이 핵무기 개발 또는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란 핵’은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허깨비다.

“양해각서 서명과 함께 미국은 즉각 해상봉쇄를 포함해 이란을 겨냥한 각종 장애물 제거에 착수한다. 해상봉쇄는 30일 안에 완전히 끝낸다. 이 기간에 이란 쪽은 전쟁 이전 수준으로 선박 통항을 회복시킨다. 미국은 최종 합의가 이뤄진 날로부터 30일 안에 이란 주변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시킨다.”(양해각서 4항)

미국과 이란은 4월7일 파키스탄의 중재로 2주간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4월11일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대면 종전 협상을 벌였다. 회담은 결렬됐다. 미국은 곧바로 호르무즈해협 밖에서 이란 국적선 및 이란 항구를 경유한 선박에 대한 해상봉쇄에 들어갔다. 양해각서에 따라 해상봉쇄가 풀리면 이란은 다시 자국산 원유를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생필품 수입도 가능해진다.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이란 경제에 숨통이 트이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6월17일 “해상봉쇄는 미국의 협상 지렛대였다. 봉쇄 해제로 이란 쪽은 후속 협상에 여유 있게 임할 수 있게 됐다”고 짚었다. 후속 협상이 길고 지루하게, 때로 위태롭게 진행될 것이란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왼쪽)이 80번째 생일을 맞은 2026년 6월14일 백악관 앞마당에 가설한 이종격투기(UFC)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왼쪽)이 80번째 생일을 맞은 2026년 6월14일 백악관 앞마당에 가설한 이종격투기(UFC)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양해각서 서명과 함께 이란은 향후 60일 동안 아무런 비용 없이 페르시아만과 오만해에서 상업용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상업용 선박의 통항은 즉각 개시해야 하며, 이란은 통항에 대한 기술적·군사적 장애물과 기뢰 제거에 나서야 한다. 이란은 오만 쪽과 향후 호르무즈해협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대화에 나서고, 관련 국제법과 연안 각국의 주권 보장을 위해 걸프 연안국과 협의한다.”(양해각서 5항)

세계 원유 천연가스 해상 물동량의 20%를 점하는 호르무즈해협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이란의 ‘최종 병기'가 됐다. 이란 쪽은 개전 초기부터 호르무즈해협 통제 관리를 위해 ‘통행료’를 징수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미국 쪽은 ‘호르무즈해협 원상 복귀’를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주장했다. 양해각서는 해협 ‘무상 통과’를 ‘향후 60일’로 못박았다. 이후 이란 쪽은 원하면 얼마든지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재건 자금 3천억달러… 청구서는 걸프국가에?

 

“미국은 역내 각국과 협의해 최소 3천억달러 규모의 이란 재건 및 경제개발 자금 조성 계획을 마련한다. 자금 조성 계획은 향후 60일 안에 이뤄질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 기간 안에 확정 짓는다.”(양해각서 6항)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체결한 이란 핵합의(JCPOA)에 따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쪽에 현금자산 17억달러를 제공한 것을 두고 ‘퍼주기'라고 맹비난해왔다. 3천억달러 규모의 이란 재건자금 조성 계획은 이란 쪽이 요구해온 ‘전쟁 배상’을 사실상 수용한 셈이다. 다만 미국 쪽이 직접 자금을 내놓을 뜻은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17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폐막한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쟁으로) 미국이 이란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누군가는 이란을 도와야 한다. 미국이 이란에 뭔가를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란에 투자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걸프 연안 6개국은 이란의 보복공격에 시달렸다. 이제 그들이 미국을 대신해 이란에 ‘배상’해야 할 처지가 됐다.

“미국은 이란에 부과된 모든 종류의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조처에 나선다. 여기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이 부과한 일방적 제재 및 제3자 제재까지 포함된다. 제재 해제의 구체적인 시점은 최종 합의 과정에서 마련한다.”(양해각서 7항)

전쟁 피해 배상과 함께 이란 쪽이 협상 초기부터 강력하게 요구한 ‘제재 해제’도 일단 관철됐다. 후속 협상 과정에서 제재 해제 시점과 방식은 이란 쪽의 합의 이행과 연동될 전망이다. 양해각서 8항은 “이란은 핵무기를 구매·개발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이는 2015년 핵협상 때도 명시된 바 있다. 60% 이상 고농축된 무기급 우라늄 약 440㎏을 포함해 모두 11t 규모로 추정되는, 이란이 보유한 농축 우라늄은 ‘희석’해 핵발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쟁 직전까지 미국과 이란은 오만의 중재로 핵협상을 이어갔다. 협상을 중재했던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교장관은 전쟁 하루 전인 2월27일 미국 시비에스(CBS)와 한 인터뷰에서 “이란은 무기급 핵물질을 절대 보유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또 기존에 보유한 고농축우라늄도 최대한 농도를 낮춰 핵발전용으로 쓰기로 했으며,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사찰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해각서 8항은 전쟁 전 이미 합의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미국과 이란은 양해각서 9항에서 “현상 유지”에 합의했다. 이란은 핵프로그램의 ‘현상’에 변경을 가하지 않고, 미국은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와 중동 일대 추가 병력을 배치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 쪽에선 이란 핵프로그램의 ‘현상 유지’를 두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된 핵시설 복구와 파묻힌 핵물질을 채굴하면 안 된다는 뜻”이란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추가 병력 배치 불가’를 받아들인 건, 이란 쪽이 ‘걸프 연안국 주둔 미군 철수’라는 애초 요구를 접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6월14일 백악관 앞마당에 가설한 경기장에서 펼쳐진 이종격투기(UFC) 시합을 관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6월14일 백악관 앞마당에 가설한 경기장에서 펼쳐진 이종격투기(UFC) 시합을 관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란의 ‘장대한 승리’로 기록될 만

 

“미국은 양해각서 체결과 함께 이란에 부과한 제재가 모두 해제될 때까지 이란산 원유와 정유제품 및 그 부산물의 수출, 금융·보험·운송을 비롯한 국제거래 제한 조치 등 미국 재무부가 부과한 제재를 즉각 유예한다.”(양해각서 10항)

“미국은 양해각서 이행에 따라 (240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이란의 국외 동결 자산 전면 해제를 위한 조처를 한다. 미국과 이란은 후속 협상을 통해 상호 합의를 바탕으로 이들 자금의 동결 해제 절차를 결정한다.”(양해각서 11항)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도, 국외 동결 자산 해제도 받아들였다. 이어 12항에선 양해각서와 향후 타결될 최종 합의 이행을 감시 관리하기 위해 공동기구 구성에 합의했다. 13항에선 양해각서 체결과 함께 △1항(전쟁 중단) △4항(해상봉쇄 해제) △5항(호르무즈해협 통항) △10항(원유 수출 재개) △11항(국외 자산 동결 해제) 이행에 들어가는 한편,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14항에선 미국과 이란이 최종 합의에 이르면 이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지 결의를 낸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했다. 무자비한 전쟁을 버텨낸 이란의 ‘장대한 승리’로 기록될 만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