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10일 오전 9시30분. 김준철 충북 제천시 농민회 사무국장과 김남홍 제천시 농민회 봉양읍 지회장이 다른 농민회원 10여 명과 함께 봉양읍 주민자치센터 앞마당에 세워둔 승합차량에 올랐다. 이날 오후 3시 서울시청 앞에서 열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 참여하려고 서울로 향하던 길이었다. 이들의 발길을 순찰차와 경비 지프차를 앞세운 제천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막아섰다. 이 집회가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하다”는 등의 이유로 금지 통고를 받은 탓에, 경찰이 참석자들의 출발부터 저지하는 ‘원천봉쇄’에 나선 것이다.
2003년 6월 상경 시위를 하러 서울로 가던 농민들을 충남 서해안고속도로 송악 나들목 들머리에서 경찰이 막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30분 가까이 실랑이가 벌어졌다. 급기야 화가 난 김준철 사무국장이 순찰차의 펜더(흙받기) 부분을 발로 걷어찼다. 김남홍 지회장은 주민자치센터 앞마당 바닥에 있던 배수로 뚜껑을 지프차 뒷유리에 집어던져 유리창이 깨졌다. 각각 수리비 18만6450원, 27만원의 견적서가 나왔다. 검찰은 이들을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지프차에 타고 있던 김아무개 경장이 머리 뒤쪽에 깨진 유리 파편을 맞아 전치 2주의 찰과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김 지회장에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 혐의도 추가됐다. 김 경장의 치안질서 유지 업무 등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형사부(재판장 신용석, 배석판사 차영민·이세라)는 11월13일 김 지회장의 혐의에 무죄판결을 내렸다. 원천봉쇄 조처가 집회 예정 시간보다 5시간30분 전에, 집회 장소에서 150km나 떨어진 곳에서 이뤄진데다 ‘상경 행위’는 집회 참가 준비에 불과하므로,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의 범죄예방을 위한 경찰권 발동·행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해당 법 조항은 △범죄행위가 ‘목전’에서 행해지려 한다고 인정될 때나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만 범죄예방 조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각 지역마다 소규모 집회 참가자를 제지해 분산시키는 것이 (금지 통고된 집회를 막는 데)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효과적이라고 해도, 출발을 제지하는 원천봉쇄 조처는 ‘공무집행의 적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두 사람이 경찰 차량을 파손한 점만 인정해 김준철 사무국장에겐 벌금 100만원, 김남홍 지회장에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불법집회 원천봉쇄는 적법한 공무집행”이라며 즉각 항소했다. 2심을 맡은 대전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김상준, 배석판사 신동헌·손삼락)는 이를 받아들여 1심 판결을 깨고 김 지회장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김 지회장의 상고에 대법원(주심 차한성)은 2심 판결을 다시 뒤집어 대전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냄으로써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판결을 내린 신용석 재판장(현 수원지법 형사11부 부장판사)은 “집회를 원천봉쇄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과 법의 해석·적용은 엄격히 해야 한다는 원칙 사이에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며 “하지만 필요하다면 법을 제정해야지, 법과 집행이 따로 갈 수는 없다는 직업적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고 말했다.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인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은 “이 사건은 집회·시위에서 경찰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대표적 사례로, 경찰이 함부로 재량권을 남용할 수 없도록 쐐기를 박은 판결”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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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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