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⑨]
“양키 고 홈!”
2005년 이라크전쟁 반대 촛불집회. 느닷없이 터져나온 이 말은 한 백인 여성을 향한 말이었다. 그는 당시 서울에서 진행 중이던 국제반전평화행사에 참가하며 촛불을 들었다. 하지만 “양키 고 홈”을 외치는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그 여성의 눈물도 진심을 전달하지 못했다. 전쟁을 일으킨 미국 정부와 미국민, 혹은 백인들은 모두 그에겐 ‘한통속’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여성은 영국인이었다.
“양키 고 홈!”
2008년 6월 촛불거리에서 다시 한 번 이 말이 터져나왔다. 경찰이 행진을 막아서며 팽팽한 긴장이 생기고 ‘두려움’이 촛불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사이 시민들 사이에선 논쟁이 일었다. 한 백인이 논쟁에 뛰어든 순간, 촛불의 암묵적인 연대는 깨지고 잠재됐던 적대가 드러나며 “양키 고 홈!”. 거기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당신이 뭘 안다고 끼어들어’라는 말이 숨어 있었다. 수많은 차이들 중에서 유독 피부색과 국적이 위계화된 차이를 만들어내며 ‘우리’와 ‘그들’ 사이의 차별로 드러났다.
촛불엔 어떠한 위계도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함께 외친 어떤 순간은, 확실히 감동적인 면이 있었다. 촛불은 모두 평등하게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선언했다. 정치권력이 우리 의사를 배반했을 때 우리는 ‘국민주권’을 외쳤다. 하지만 ‘국민주권’은 어느새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우리를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 정의했고, 어느 순간 우리를 ‘국민’과 ‘비국민’으로 갈라놓았다. ‘우리’를 ‘국민’으로 부르는 순간, 국적 혹은 외모에 따라서 ‘완전한 국민’이 될 수 없는 외국인·이주민들은 더 이상 ‘우리’가 될 수 없었다.
또 여성들과 청소년들이 밀려났다. 거의 동시에,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떳떳하게’ 완수한 ‘완전한 국민’으로 여겨지는 예비군들이 군복을 입고 누군가를 ‘보호’한다며 거리로 나왔고(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한다), 비장애, 이성애, 정상 가족 등 이른바 ‘정상’만이 일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국민’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장애인, 성소수자, HIV·에이즈 감염인 등 정치적 소수자들은 촛불을 함께 들기를 머뭇거렸다. 국가 정책의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못해 국가로부터 존재 자체를 인정받을 수 없었던 우리 사회 ‘비국민’들은 ‘국민’을 외치는 촛불집회에서 배제와 소외를 느끼며 돌아서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안의 균열을 발견한 순간, ‘동지’였던 촛불은 편견과 적대를 드러냈고 돌아서서 배제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된다면 누가 그걸 먹게 될까? ‘국민’뿐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의 촛불은 어느 순간 누군가를 배제하진 않았을까. ‘국민’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은, 그래서 중요하다. 더 큰 촛불이 되어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들고 있는 촛불을 되돌아봐야 한다. 이젠 ‘국민’을 넘어 더 우애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다른 구호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우리’를 갈라놓고, 우리 안의 차이를 위계화시키고, 차별과 배제를 통해 사회적 약자끼리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기존 지배 질서에 저항하는 촛불을 보고 싶다. 거기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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