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6월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9일째 단식농성 중인 이태원참사 희생자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를, 세월호 참사 희생자 권순범군의 어머니 최지영씨가 끌어안고 있다. 단식 중인 최선미씨가 서울시청 앞 이태원참사 분향소를 출발해 국회 앞까지 걸어온 최지영씨에게 “너무 고생하셨다”고 하자 최지영씨는 “우리 함께 가요”라고 위로했다. 박승화 선임기자
‘참사와 참사는 어떻게 만나는가’를 주제로 한 수업을 왜 듣게 됐는지 물었을 때 지형(가명)은 다음과 같이 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형은 군 복무 중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하고 오랫동안 방황했다. 그가 근무하던 부대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새벽에 사이렌이 울려 밖으로 나가자 연병장 한쪽이 완전히 쓸려나가 있었다. 의경과 소방관들도 출동해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부대에서는 군인들에게 장화와 삽, 그리고 단단한 경고의 말 몇 마디를 줬다.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웃거나 장난치지 마라. 언론이 보고 있다.”
매몰자를 찾기 위해 삽으로 현장을 파고 또 파면서 거대한 산사태 앞에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인가 싶었다. 끝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교대로 쉬어가며 팠다. 잠시 쉬고 있는데 근처에서 소방관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찾았다!” 산사태에 묻혀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발견됐다. 당시 지형의 기억으로 그 얼굴은 평온했다. 살아 계신가 싶었지만 소방관과 주변 다른 사람들의 반응으로 직감했다. 돌아가셨구나. 짧은 시간에 온갖 생각이 다 스쳐갔다. 그중의 하나. ‘우리 어머니가 저기 계셨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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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있을 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형을 보고 선임이 괜찮냐고 물어봤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석탄재를 파고 또 팠다. 동료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파는 것이 매몰자를 발견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재난 앞에서 지형이 느낀 것은 무력감이었다. 인간은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존재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구나.
그리고 죄책감이 찾아왔다. “왜 이런 날에 죽어서 민폐냐”며 옆에서 핸드폰만 만지던 나이 든 소방관에게 아무 말도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재난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재난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인간에게는 한마디라도 해야 했다는 후회였다. 그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내가 잘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군 복무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재난에 관한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졌다. 세상이 혐오스러웠다. PTSD로 치료를 받았다.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힘든 일이 많지만 조금씩 회복됐다. 그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마주 대한 것, 그 늙은 소방관의 입을 보며 한마디도 못한 것 등 몇몇 장면에 국한되었던 기억에 다른 ‘이야기’가 보이고 들어왔다. 아버지가 면회 오셨을 때 중대장이 제 부은 손을 보며 아버지에게 “열심히 하더라. 그러니 손이 불어터지지”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괴로워하는 것 자체가 그 소방관처럼 안 좋은 말을 하던 사람들과 대비되었다. 적어도 지형 자신은 기억하려고 해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됐다.
또 다른 이야기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에 창작만화공모전 대상을 받은 ‘남김’이라는 만화였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무의미를 향한 기도를… 그리고 결국엔 마찬가지일 너와 나와 모든 우리를 위해 연민을”이라는 후기의 이 작품은 지형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서의 이야기의 힘을 보여줬다. 자기가 겪은 일은 PTSD가 아니라, 이야기로 제대로 마주 대하고 싶다는 욕망과 용기를 내게 했다. 그래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참사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증언을 듣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이 수업을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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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2025년 1월3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을 찾아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유족을 위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용희 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부모가 학생들을 만나러 온 날, 지형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부모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부모들의 답변이 놀라웠다. 보통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이들은 자신의 고통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부모들은 지형의 고통을 더 앞세웠다. 딸을 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당신들은 그 죽음의 현장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지형이 느끼는 무게감만큼의 트라우마를 경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가족분들에게 물어보고 이야기를 전해줘도 괜찮겠냐고 말씀했다.
내 고통의 무게가 당신 고통의 무게만큼은 아니라고 참사 당사자가 말하기는 전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고통의 와중에도 상대의 비명이 들려야지만 가능한 말이다. 상대의 말에 귀를 열어놓아야지만 가능하며 자신의 고통을 절대화하는 심연에서 빠져나왔을 때나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가장 극심한 고통을 당한 분들이 귀를 열고 학생의 말을 듣는, 고통의 중심 자리를 비워놓는 모습은 그 자체로 놀라웠다. 고통의 절대적 무게로 인해 어긋날 수밖에 없는 참사와 참사가 만나는 그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만남을 주선한 사람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지형은 자신이 만화를 그려본 경험이 많지 않고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완성작을 만들지 못하고, 만든다고 하더라도 매우 서투른 작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수업을 함께하며 부족하지만, 시작해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꼭 대면해야 하는 삶의 문제이며 풀어야 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것을 마주할 용기는 이제 생겼고 마침 그 용기를 발현할 수 있는 교실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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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의 이야기는 교실은 어떤 장소여야 하는지에 대해 교실 문을 여는 사람으로서의 내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게 해줬다. 이야기꾼을 만드는 학교의 교실은 학생이 타고난 탁월한 역량이 있건 없건 자신의 주제의식과 지향성을 찾게 하는 장소다. 자기 자신의 진실을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타인의 이야기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물론 한편에서 학교는 기술적/표현적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일어나는 곳이며 이 가치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이야기꾼으로서 자기 매체와 장르에 대한 표현적/기술적 성장은 핵심적이다. 학습의 기초는 반복과 고쳐쓰기다. 반복하여 학습함으로써 역량은 머리에서 손으로 내려온다. 이 성장이 있어야지만 인류학자 리처드 세넷이 말하는 ‘생각하는 손’이 될 수 있다. 그 어떤 인문학적 언어로도 이것을 부인하거나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이야기꾼은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생각을 매체로 풀어내는 ‘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29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이태원 참사 2주기를 기억하는 행동독서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참사 2주기 구술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를 읽고 있다. 한겨레 고나린 기자
그러나 그 손은 역시 ‘생각하는’ 손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이건, 시대에 대한 진실이건 혹은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운명에 대한 진실이건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용기를 내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 이야기꾼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를 통해 어떤 진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 지향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탁월한 재능으로 천사의 손이 될 수도 있고 악마의 손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이야기꾼의 교실은 여러 만남이 교차하는 장소다. 먼저 이야기를 창작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만나는 만남이 필요하다. 이 만남을 통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고, 자기 이야기를 통해 진실을 만날 수 있는 용기를 내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기술적/표현적 역량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과 만나야 한다. 이야기와 손이 따로 놀면 그것은 ‘생각’이지 아직 ‘이야기’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 이야기를 가장 잘 풀어낼 방법, 즉 양식을 찾아야 한다.
이 만남에는 건너뛰기와 요약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체험으로서의 만남은 요약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체험을 곱씹고 곱씹어 경험, 즉 이야기로 풀어낼 때까지의 시간을 한편에서는 견디고 다른 한편에서는 음미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이것은 역추산 기법을 사용해 정답을 빠르게 찾는 것을 가르치는 학원은 할 수 없다. 아직은 느리게 가도 되는 학교‘만’이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인간에 대한 진실과 만나게 된다. 지형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인간의 진실이다. 인간이란 부끄러움을 느끼는 존재다. 내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느낄 때의 부끄러움, 지형의 경우처럼 몹쓸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한마디라도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진실이다. 고통은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운명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남은 이야기는 이 운명에 어떻게 맞서는가이다. 고통이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의 운명이기에 그저 체념하는, 혹은 아직은 내가 인간이라는 나르시시즘적 안도의 환각에 빠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운명으로서의 고통에 어떻게 맞서는가, 강조한다면 비록 다시 그 고통에 지더라도 그 운명에 어떻게 맞설지가 바로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야기란 운명에 맞서기 때문에 이야기이다.
지형이 이태원 참사의 부모들에게 한 ‘트라우마에 어떻게 맞서셨는지’에 대한 질문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타인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했는지에 대해 듣고 자기도 극복할 수 있는 ‘팁’을 얻고 싶은 그런 따위의 질문이 아니다. 이야기꾼으로서 ‘극복’의 이야기가 아니라 ‘맞선’ 이야기로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교실은 전혀 다른 두 장소에서, 전혀 다른 두 사건을 겪으며, 그러나 운명에 맞서던 두 인간의 만남을 그리는 이야기가 태어나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끄러움을 잊은 시대에, 만일 이 만남이 일어난다면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교실 문이 열리고 학기가 시작되었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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