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 한겨레21인권위원·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④]
16살 겨울에, 스스로 ‘난 다 자랐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때 성장한 인격과 교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머지 20여 년은 풍파에 시달린 경험에 의한 덧붙임 정도 되겠다. 그래서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라고 확신하는 어른들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청소년들이 뭘 알겠냐고 무시해버리는 그 입으로 쏟아내는 게 고작 주식 정보와 아파트 분양권 이야기인 것을 보면, ‘차라리 자라지 말지…’라는 측은지심마저 불러일으킨다.
다른 의미로 요즘 아이들이 불쌍해서 죽겠다. 인권교육을 하려고 찾아간 중·고등학교 강당과 교실. 풀기조차 없이 축 늘어져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아이들과 눈을 맞추면, 인권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산이나 들로 뛰어나가면 딱 좋겠다, 싶다. 성공이라는 잔인한 가치를 위해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모두 유보당하는 청소년들. ‘현재 행복하지 않은데, 미래에는 행복해질까?’라고 아이들에게 되물어보지만, 이미 행복의 척도를 경쟁과 이윤에 둬 버린 천박한 대한민국의 어른 주제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자괴감의 늪에 빠지고는 한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듣는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잠도 못 자게 후려치더니, 이제는 위험한 걸 먹으라니, 그게 말이 되니?” 나도 깜짝 놀라고, 국민도 깜짝 놀랐다. 졸던 잠이 휙 달아났다. 촛불행사에 참여해 똑 부러지게 광우병 이야기를 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자면, 깔깔깔 후련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혹자들은 논술 학습의 효과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모르시는 말씀. 예전부터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 길을 낼 때, 맨 앞에는 늘 청소년이 있었다. 일제시대의 광주 학생운동, 군사독재 시대의 민주항쟁을 기억해보라. 어려울 것 없다. 유관순 언니가 17살 청소년인 것을 생각해보면 되겠다.
깜짝 놀란 건, 경찰이나 교육당국도 물론인가 보다. 청소년 사이에 동맹휴업을 제안한 문자가 돌자, ‘광우병 괴담’ 운운하더니, 배후에 전교조가 있다는 헛소리로 광우병 증세를 일찌감치 보이는 분이 나타나지를 않나, 사생활이 뭔지도 모르는 경찰은 무작위로 문자를 모조리 뒤지고, 심지어 집회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수업 중인 학생을 불러내 조사했다(언제부터 집회 신고가 범죄행위가 되었나? 경찰은 물론 조사를 방조한 학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촛불행사장에는 사찰 암행을 나온 교육 ‘꼰대’들이 즐비하고 학교 방송에선 ‘촛불행사장에 가면 죽는다’는 엄포가 연일이다. 심지어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마치 미축산업체 홍보자료 같은 것이 교육 자료로 배포되기에 이르렀다. 맙소사, 정말 깜짝 놀라셨군.
깜짝 놀라신 분들, 이른바 청소년 보호를 위해 촛불행사장에 어슬렁거리시는 검은 양복들을 위해서 청소년을 대신해, 16살에 인격을 완성한 아직도 마음은 청소년인 한 아줌마가 말해주겠다. “우리가 입시 때문에 약 먹고 아파트에서 떨어질 때 당신들 뭐했어?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때, 뭐했냐고. 학교자율화 조처? 영어 몰입 교육? 광우병 쇠고기 수입? 당신들이 무능하고 잔인하니까, 우리가 나설 거야. 왜냐, 우리도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자유와 권리를 가진 시민이거든. 그리고 이건 우리 문제거든. 우리가 당신들의 미래와 건강까지 지켜줄게. 고마우면 그냥 고맙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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