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여를 이어온 세습독재가 막을 내렸다. 떠났던 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사라진 이들은 주검으로 발견된다. 13년9개월째 내전을 이어온 시리아는 이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2024년 12월8일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하 하이아트)이 주도하는 반군세력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로 진입했다. 부자 세습 독재 정권을 이끌던 바샤르 아사드는 러시아로 도주했다. 족쇄에서 풀려난 시리아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기쁨이 서러운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2월12일 반정부 활동가 마젠 하마다(47)의 장례식이 열렸다. ‘아랍의 봄’이 다마스쿠스에 당도했던 2011년 하마다는 아사드 독재에 맞서 싸우다 체포됐다. 수감 상태로 장기간 모진 고문을 감내했던 그는 석방 뒤 2014년 네덜란드로 망명해 시리아의 참혹한 현실을 알리는 데 애썼다. 2020년 2월 하마다는 돌연 귀국길에 올랐다. 2021년 3월4일 독일 베를린 주재 시리아대사관 쪽이 그를 강압적으로 유인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그가 오랜 망명생활에 염증을 느껴 귀국을 원했다는 지적도 있다.
레바논 베이루트를 거쳐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체포된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에서 끝없이 벌어진 살풍경, 정보기관에 의한 ‘강제 실종’이었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다음날인 12월9일 하마다의 주검이 다마스쿠스 외곽 세드나야의 악명 높은 고문·구금시설에서 발견됐다. 주검엔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주검을 검안한 의료진의 말을 따 “다른 수감자와 마찬가지로 하마다 역시 아사드 정권 붕괴 직전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남부 이즈라를 비롯해 시리아 전역에서 아사드 정권에 희생된 이들이 아무렇게나 묻힌 집단매장지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모진 세월은 지났지만, 희망을 품기는 아직 일러 보인다. 하이아트의 지도자인 아부 무함마드 골라니(42)는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전권을 장악했다. 그는 미국 국무부의 테러범 현상수배 명단에 올라 있다. 현상금은 ‘최대 1천만달러’다. 군복을 입고 수도로 입성했던 골라니는 12월15일 양복 재킷 차림으로 게이르 페데르센 유엔 시리아 특사와 마주 앉았다. 이름도 달라졌다. 반군 시절 사용했던 가명 대신 본명인 ‘아흐메드 후세인 샤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그가 페데르센 특사에게 “시리아 재건을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시리아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페데르센 특사는 12월17일 다마스쿠스에서 화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샤라가 이끄는 반군세력 외에도 장기간에 걸친 내전 탓에 총을 든 무장세력이 시리아 각지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실제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족 중심의 시리아민주군(SDF)과 튀르키예가 배후인 시리아국민군(SNA)은 아사드 정권 붕괴 직후부터 알레포주 도시 만비즈 등 북동부 일대에서 격한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12월18일 최신 상황 보고서에서 “12월8일부터 시리아민주군과 시리아국민군 간 교전이 격화했다. 12월17일 미국 중재로 양쪽이 잠정 휴전에 들어갔지만, 만비즈와 아인알아랍 등지에서 산발적인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혼란’을 가만두지 않았다. 페데르센 특사는 안보리 회의에서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이스라엘이 최소한 350차례 이상 시리아에 공습을 가했다”며 “이미 피폐한 상태인 시리아 민간인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뿐 아니라 질서 있는 정치적 이행을 어렵게 만드는 행태”라고 말했다. 반면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12월17일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8일 만에 이스라엘군이 서부 지중해 연안도시 타르투스와 동부 유프라테스강 유역 데이르에즈조르 등 시리아 전역에서 방공망과 레이더 기지, 지대지 미사일 저장시설 등을 겨냥해 모두 600여 차례 공습을 가했다”고 전했다.
“시리아와 충돌하고 싶지 않다. 그저 잠재적 위협을 제거하고, 테러세력이 국경지대를 장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2월15일 성명을 내어 이렇게 말했다. 같은 날 이스라엘 정부는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 이후 불법 점령한 시리아 국경지대 골란고원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12월17일엔 네타냐후 총리가 직접 골란고원을 방문해 헤르몬산(아랍명 셰이크산)에 올라 “이스라엘군이 당분간 이곳에 주둔할 것”이라고 말했다. 헤르몬산은 시리아 쪽이 완충지대로 삼은 명백한 시리아 영토임에도 아사드 정권 붕괴 직후 이스라엘군이 장악한 상태다. 아사드는 떠났지만, 시리아는 여전히 전쟁터다.
“군사작전에 앞선 경고다. 즉각 대피하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도 전쟁은 변함없이 불을 뿜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12월18일 가자지구 중부 소도시 부레이즈 일대에 주민 소개령을 내리고, 20㎞ 남짓 떨어진 마와시를 이른바 ‘인도적 대피지역’으로 지정했다. 마와시에서도 12월4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주민 2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굶주림도 어김없이 계속된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12월18일 정례 브리핑에서 “인도적 구호품 공급을 위해 봉쇄된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 베이트라히야, 자발리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유엔 쪽 요청을 이스라엘이 오늘 또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들 지역이 외부로부터 차단된 것은 이미 70일을 넘어섰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439일째를 맞은 2024년 12월18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4만5097명이 숨지고, 10만724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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